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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예화
    2024-06-18 07:48:08   read : 11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화는 설교를 효과적으로 만든다. 자연스럽게 예화가 포함되면 설교는 대단히 듣기가 부드러워진다. 어떤 예화는 짧아서 “뜨겁다”로 그치는가 하면 천로역정만큼이나 길다. 이솝이나 단테 같은 거장들은 항상 예화를 통해서 가르쳤다. 인간의 덕이나 영적인 이야기는 추상적인 언어보다 실제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1. 예화의 효과

    뇌의 양쪽을 사용하는 설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설교는 왼쪽 뇌를 기능하게 만든다. 반면에 감정적이거나 상상력을 많이 요구하는 설교는 오른쪽 뇌를 왕성하게 한다. 한 쪽 뇌만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양쪽을 다 사용하게 하는 것이 훨씬 청취나 이해, 공감에 유익할 것이다.

    여기서 예화가 하는 일이 바로 오른쪽 두뇌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설교를 듣기보다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화를 들으면서 청중은 자신의 경험에 그 내용을 연결시킨다. 또는 상상을 통해서 어떤 그림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설교의 내용을 그림으로 기억하게 된다. 더 감정적인 힘을 가진다.

    어떤 설교자는 예화를 안 쓰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겠지만 논리적인 설교 내용은 왼쪽의 뇌만을 사용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왼쪽의 뇌가 발달한 신자를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감정적인 부분을 상당히 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분위기도 실생활도 대단히 냉냉하게 된다.

    오늘날 공감을 받지 못하는 많은 설교자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내용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큰 문제는 감정적인 부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너무 논리적으로 언어적으로 설교를 진행하려고 한다. 자기 설교는 내용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중이 공감을 느껴야만 내용이 받아들여진다.

    예화는 반드시 무슨 이야기만이 아니다. 눈으로 보거나 가슴에 와 닿거나 하는 언어를 사용하면 이미 예화라고 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색깔의 옷”보다는 “날렵한 레이스 달린 연분홍의 드레스”가 훨씬 눈으로 보는 느낌이다. “추운 새벽” 보다는 “뼈속까지 찬 기운이 도는 새벽기도 시간”이 훨씬 감각적이다.

    예화는 청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천 마디 설명보다는 그림 하나 보여주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건 볼 수 있게 설명하면 훌륭한 예화이다. 예화는 청중이 분명한 그림을 가지는데 도움을 준다. 그 그림을 통해서 설교의 내용을 기억하거나 느끼는 것이 쉽다. 오른쪽 뇌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예화는 설교를 재미있게 만든다. 아랍의 격언이 있다. “최고의 연사는 귀를 눈으로 만든다.” 예화 없는 설교는 심하면 그림이 안나오는 텔리비젼과 같다. 메마르고 지루한 설교에 알맞는 예화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생기를 준다. 딱딱하고 형태 없는 논리가 그림으로 나타나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설교의 내용을 기억되게 만든다. 기억 속에 그림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단 나타났던 내용들은 오래 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특별히 그때 받은 분위기나 인상은 더욱 오래 가는 것이다. 예화로 잘 전달된 사상의 내용은 이렇게 들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 마음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듣는 이의 감정은 예화를 통해서 잘 움직인다. 눈물을 흘리거나 큰 소리로 웃는 것은 대개 예화를 통해서이다. 복된 소식을 전하면서 감정 없이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청중은 상상 속에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 그래서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설교 속에 참여하고 그것을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되게 한다.

    설교 예화는 그 효과를 낼만큼만 길어야 한다. 많은 설교자들은 예화를 길게 해서 설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가 되게 한다. 하지만 예화는 언제나 주 역할이 아니라 보조역할이다. 설교의 분위기가 달라질 정도로 예화를 몰고 가서도 안 된다. 또한 예화는 반드시 설교 논지에 맞추어 손질을 해야 한다.

    2. 예화의 사용법

    어떤 예화는 길고 내용이 많다. 그걸 다 말하면 주제를 벗어난다.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분명치 않게 된다. 그러므로 예화의 모든 자세한 내용을 다 말하려고 하지 말라. 흥미를 유지하면서 주제에 관련되는 부분만 정리하라. 절대로 예화 자체가 건물이 되게 하지 말라. 주제라는 뼈대에 부쳐진 한 부분이어야 한다.

    어떤 이는 예화를 창문과 같다고 말한다. 너무 많으면 집이 약해지고 너무 적으면 통풍도 채광도 안 된다. 그 안에 살면 너무도 답답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교에 예화는 설교를 빛나고 아름답게 한다. 하지만 너무 예화를 많이 하면 설교는 약해지고 만다. 집을 세우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된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많은 종류의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 두 가지로 족하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예화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는다. 왜? 어느 하나도 적합하지 않거나 모두다 너무 좋아서 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딱 들어맞는 예화는 여러 개를 하는 것보다 몇 배 강한 효과를 준다.

    예화 몇 개를 연결해서 설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어떤 분은 설교가 거의 대부분이 예화로 연결되어 있다. 만약 설교의 논지가 먼저 잡혔다면 예화는 그 방향을 향해서 각색될 것이다. 하지만 예화가 처음 떠오르고 설교를 거기에 맞추어 작성한다면 이것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잘못 되었다.

    설교자가 자기 설교에 아주 적합한 예화를 얻을 수 있다면 큰 축복이다. 그래서 그 한 예화가 전체 설교의 내용을 생생하게 그리고 강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예화는 이야기나 시나 인용을 포함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피, 문둥병, 불 양 같은 소재들이다.

    예화가 의미하는 요점이 유리처럼 분명해야 한다. 듣는 사람들이 다 그 요점을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화에 대한 설명이 예화를 말하기 전이나 후에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논지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설명해 준다. 물론 그것을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예화의 내용을 논지와 연관시키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이 엄청난 사고를 면하는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불구가 되고 슬픔을 당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서 빠져 나왔다. 여기서 차칫 잘못하면 불행 당한 많은 사람들은 저주를 받은 것처럼 부각된다. 그러므로 그 불행을 피한 사람만 너무 부각시킬 때 오해의 여지도 있다.

    다른 종교인들을 마구 멸시하고 욕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설교자의 인격에 대해서 의심이 일어날 수 있다. 적어도 남의 인격은 어느 쪽이나 모독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립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논지를 잘 부각시켜주어야 한다.

    만든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하지 말라. 예화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명백히 해야 한다. 만약 허구를 사실처럼 말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청중들에게 신뢰를 잃을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설교자가 나의 설교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나의 경험을 자기가 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교인들의 신뢰를 잃으면 안 된다. 설교자는 남의 경험도 자기 것으로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이 쌓이면 회복할 수 없다. 인격적 신뢰를 받지 못하면 설교의 내용은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듣는 도중에 “저건 사실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출처를 밝혀 신뢰를 얻으라.

    무엇보다도 자기 경험에 대한 예화는 진실해야 한다. 이것이 특별히 부흥사나 전문적 간증인이 조심해야 할 내용이다. 자꾸 하다보면 과장이 된다. 과장이 반복되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순진한 신자들을 오도한다. 자신도 설교에서 거짓말하는 죄를 범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말해야 한다.

    정직한 경험이라도 복음적으로 평가되고 전달되어야 한다. 무당의 경험도 종교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복음적으로 비판을 한 다음 말해야 한다. 또한 차칫 잘못하면 자기 자랑이 된다. 부흥사들 중에 자기 자랑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본다. 예화는 논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기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설교자는 자기가 인격적으로 잘한 내용을 예화에 쓰지 않아야 한다. 자기 덕이나 모범이 자랑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부담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목사가 가장 사랑이 넘치고 진실하고 검소하고 영웅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아야 한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교인들은 너무도 쉽게 목사에 대해 실망한다.

    믿을 수 없는 예화는 피해야 한다. 설교자중 이것을 좋아하는 이가 많다. 기적의 이야기는 제한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출처를 분명히 해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 신앙에는 기적이 포함된다. 그러나 평상시에도 언제나 기적을 기다리는 신앙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훈련, 성실, 인내가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다.

    3. 이야기에 첨가한 예화의 자료

    예화는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설교의 뼈대를 보조하는 모든 것들이 다 예화로 설명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이야기 말고도 자연과학, 비유, 찬송, 금언, 속담, 뉴스거리등 모든 것이 다 예화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다. 흥미나 관심을 일으키지 못하면 예화 구실을 못한다.

    반복: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회상과 반복이다. 특히 중요한 점에 관한 반복은 놀랍도록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똑같은 단어의 반복이 아니라 의미의 반복이라는 점이다. 물론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의미를 반복해서 기억시킨다.

    다음의 “산을 움직이는 법”이란 설교 중에 이 반복법의 사용을 보라. 여기서 같은 내용이 반복되지만 같은 단어나 문장의 반복이 아님을 볼 수 있다. 즉 예화에서는 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라 다른 표현의 반복이다. 유능한 설교자는 같은 내용이라도 서로 다른 표현으로 반복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주일학교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작은 접시들에 새겨진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읽었을 것입니다. 강단에서도 되풀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을 믿으시니까? 정말로 정직하게 기도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냐는 것입니다.

    통계나 실예: 통계자료는 많은 사실을 단 시간에 볼 수 있게 한다. 현대인들은 숫자에 관심이 많다. 어려서부터 숫자를 믿도록 훈련되어 왔다. 그러기에 이러한 통계를 제시하면 설교의 내용을 강하게 뒷받침해 준다. 어떤 내용은 다른 어느 말보다 통계를 사용함으로 가장 충격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에베소에 있던 다이아나 신전의 크기를 말해보자. “폭이 60미터 길이가 120미터였고 높이가 18미터 되는 기둥들로 세워졌습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 “동대문 축구장보다 더 넓었고 5층 빌딩보다 높았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다른 예를 보자. “만약 전자를 사과만큼 크게 하는 비율로 사람이 커진다고 생각합시다. 그러면 태양계 전체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인용: 인용은 아름답고, 강하고,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단어나 문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은 잘 알려진 중요한 사람들의 말이어야 한다. 그러한 거장들의 말은 그 자체로 권위가 있기에 그들을 빙자하면 말이 강화된다. 그래서 설교자는 자신의 말을 보강하기 위해서 종종 인용을 한다.

    인용이 많으면 설교의 깊이가 덜해진다. 외국 사람을 인용할 때는 설명을 붙이는게 좋다. 함축된 말이거나 모르는 인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번역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인용의 연속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설교자가 실력 좋다는 느낌은 갈지 모르지만 이해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많이 인용해야 한다. 성경처럼 권위 있고 정확한 표현도 없다. 사람들의 말을 많이 인용해도 성경을 별로 말하지 않으면 설교가 될 수 없다. 영혼에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이 필요하다. 어느 경우에는 직접인용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설명과 함께 인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원죄에 대해서 말할 때 다음의 인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네소타주 범죄 위원회의 보고서이다.

    모든 유아들은 작은 야만인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그들은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우유병이나, 엄마의 관심이나, 친구의 장난감이나, 아저씨의 시계나 무엇을 막론하고 원하는 것은 원하는 그 순간에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만약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와 미움으로 날뛴다.

    만약 이들에게 힘만 있다면 그 결과는 살인적일 것이다. 유아들은 더러울 뿐 아니라 도덕도 지식도 기술도 없다. 이는 유아중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타고난 범죄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만약 누군가 유아시절 그대로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자라게 해 보라. 그들은 모두가 범죄자, 도둑, 살인자, 강간범들이 되고 말 것이다.

    시: 시는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영감을 줄 수 있다. 아름다움을 가져오고 사랑을 깨우며 연민이나 흥분을 일으킨다. 언어의 역사만큼이나 시도 인간과 삶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시이며 시로만 된 책도 있다. 시편의 시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좋다. 성경적인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영감이 풍부한 시는 듣는 이에게 영감을 준다. 그러나 불신자의 시는 불신앙적인 영감을 일으킨다. 재대로 된 시라면 반드시 영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떤 설교자는 힌두교 성인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 아름다울지는 모르지만 불신앙적인 영감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기도 하다.

    예배가 시문학 강의 시간이 아니다. 시는 설교의 목적에 맞아야 한다. 단지 아름답거나 분위기에 도움된다고 사용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논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는 시를 선택해야 한다. 또한 시는 산문보다 듣고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읽기 전에 시를 읽을 것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

    4. 예화를 어디서 얻는가

    설교자의 예화는 교인들간의 접촉에서 가장 많이 얻어진다. 잘못된 신앙의 교정, 훌륭한 신앙의 예와 그 열매들이 대단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서 개인의 비밀이 들어 나거나 신뢰가 배신을 당해서는 안 된다. 마구 사생활이 공개되는 느낌을 청중은 좋아하지 않는다. 잘 생각하고 예화를 사용해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질문은 이것이리라. “내가 그렇게 했을 때 사람들이 아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어떤 설교자는 예화를 개인 공격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되면 듣는 이들 전체가 상처를 받는다. 남들도 감싸주고 보호해 주면서 말해야 한다. 상처받을 말들은 예화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주로 많이 말하는 예화는 삼가야 한다. 특히 그들에 대한 농담은 조심해야 한다. 다른 종교의 신자나 교역자들, 흑인, 우리 주위의 나라들 특히 일본이나 중국인, 지역 감정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주제에 해당하는 그 많은 설교의 예화를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

    가장 좋은 자료는 역시 성경이다. 성경과 설교는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성경은 풍부한 예화의 보고이다. 구약의 이야기들은 살아있다. 시편과 예언서에서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갈등과 감격이 나온다. 예수의 비유와 교훈들은 복음서의 여러 사건들과 함께 모두가 예화이다. 그것으로 청중은 저절로 성경공부도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성경 내용을 사서삼경이나 현대문학보다 더 잘 알고 사용해야 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을 항상 말하고 있다. 그것보다는 성경을 더 많이 말하는 게 교인들에게는 더 유익하다. 그 예화들은 단지 예화로 그치는 게 아니다. 좀 더 성경을 잘 알고 성경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예화사전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너무 낡은 예화나 권선징악 식의 이야기들이 많다. 예화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성이다. 현실감이 결여된 예화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옛날 호랑이 담배 먹는 이야기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또한 예화집은 편집자의 취향대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좋은 예화의 수집은 설교자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항상 수첩을 가지고 예화 거리를 찾고 있어야 한다. 만약 설교의 주제가 일찍 결정된다면 시간을 두고 찾아낼 수도 있다. 토요일 밤에 만드는 설교로는 오랜 시간을 두고 적합한 예화를 찾을 수 없다. 삶 전체가 다 예화 거리이다. 찾는 훈련만 하면 된다.

    신문 잡지 텔리비젼을 볼 때, 소설, 전기, 과학의 모든 분야의 독서를 할 때 사람을 만날 때, 하다못해 길을 걸을 때, 언제나 모든 것을 주시해서 보아야 한다. 특별히 상담할 때, 성령이 역사하는 경우가 많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떠오르면 그것을 빨리 수첩에 적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잊고 만다.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집도 좋은 예화를 제공해 준다. 설교집은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를 연구하게 만들어준다. 설교의 예화만 찾으려하지 말고 다른 설교자의 설교 방법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예화를 빌렸으면 출처를 말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 청중은 설교자의 정직과 정확성을 믿게 된다.

    5. 예화사용의 기술

    예화를 전개해 나가면서 기술적으로 할 일이 있다. 가능하면 단문 그리고 직접용법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감이 없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하는 형식으로 예화를 진행하지 말라. 다 식어버린 밥과 국을 먹는 맛이다. 그림을 그리듯이 말하라. 다시 말하지만 오른쪽 뇌도 사용해서 듣게 만들라.

    아래는 학생의 예화를 고쳐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문으로 말한 것과 필요한 부분을 더 첨가해 본 것이다. 절대로 긴 문장으로 말하지 말라. 모든 내용을 긴 문장으로 연결시키지 말라. 앞의 내용을 읽어 보라. 그리고 다시 고친 내용을 잘 읽어 보라. 자기가 읽는 내용을 들어 보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가?

    <학생의 예화>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이 세계를 가리켜 “만인의 만에 대한 투쟁”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개인과 개인간의 벌어지는 전쟁과 싸움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는 죽음과 절망, 질병과 가난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전쟁을 켤코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고쳐본 내용>

    영국에 토마스 홉스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책 리바이어던에서 이 세계를 가리켜 심각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세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장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끊임없이 싸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개인과 개인간의 싸움은 무서운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모든 인류는 죽음과 절망, 질병과 가난에 대항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멸망합니다.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겠습니까?

    다음의 내용을 고친 것을 비교해 보라. 이야기를 하면서 미리 다 말해 버리면 듣는 이들이 흥미를 잃게 된다. 문장이 길어도 말은 생기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듣지 않게 만든다. 덧붙여 상황을 보듯이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짧게 써야 하며 계속 흥미를 일으키도록 조금씩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학생의 예화>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바로의 대군대의 추격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바로왕이 대 군대를 거느리고 도망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오기 위해 급히 추격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고쳐본 내용>

    출애굽기 14장에 해결책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해 나왔습니다. 홍해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천둥치듯 말발굽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왕의 대군대가 추격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오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부녀자들과 노약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가축들도 많았습니다. 무기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싸울 준비는 전혀 없었습니다. 여자들의 비명이 울리고 아이들은 울었습니다. (여기까지 급하게 말하고 조금 쉰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있으라.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다음의 내용은 간접용법을 직접용법으로 고쳐본 것이다. 여기서 “라고 말했습니다”라든지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같은 설명을 빼고 직접 성우처럼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설교자는 어느 예화이건 말하기 전에 여러번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동감을 주어야 한다.

    <학생의 예화>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출신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마음의 불안과 공포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시골길에서 한 농부를 만났는데 그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편안할 수 있느냐고 비결을 묻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모든 불안과 공포가 사라져 보람있는 삶으로 유명한 작품을 냈다고 합니다.

    <고친 내용>

    톨스토이는 귀족출신이요 부자였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도 불안과 공포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시골길에서 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농부의 얼굴은 너무도 평안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물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편안할 수 있습니까?” “제가 뭐 가진 게 있습니까? 그저 하나님만 의지해야지요. 그래서 평안한 모양입니다.” 톨스토이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나는 신자인데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구나. 돈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했다. 그게 평안에 아무 도움도 없는데. 이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겠다.” 그후부터 불안과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유명한 작품은 그때부터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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