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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김기홍 설교학(전체리스트)

    15. 사다리모양 설교
    2024-06-18 07:43:16   read : 100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필립스 부룩스는 설교자는 설교자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연 그렇다. 설교자 정신을 가지고 산다면 항상 설교 준비할 것이요 설교자로 외칠 것이요 설교자로 살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로 죽을 것이다. 카루소는 노래부르다 죽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다가 죽기 원할 정도로 설교를 좋아하라.

    설교자 정신이란

    설교자정신은 다음과 같다. 부룩스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첫째. 설교자는 사람들의 종으로 자처하기를 기뻐하라. “그저 그런 모양만 내지 말고 진심으로 자신을 깨우쳐 그들의 종이 되십시오.” 그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와 끝까지 섬겼다. 목사는 섬김을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

    둘째 자신의 일과 자신을 동등시하지 말라. 이것은 앞의 말과 연결된다. 내가 설교자로서 됐다는 느낌이 들면 큰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일을 자신과 동등시 말라는 말도 된다. 조금만 커지면 대접을 받으려 하 는게 인간이다. 설교자는 섬기는 사람임을 명심하라.

    셋째 절대로 정직하라. 강단에서나 사석에서나 설교자는 남에게 발라 맞추기 쉽다. 또한 항상 과장을 하게 된다. 전문적인 간증가나 오래된 부흥사 중에 과장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것은 거짓이다. 차라리 말의 범위를 줄이라. 그것이 장차 할 말에 열배의 힘을 공급해 준다는 것이다.

    넷째 생명력을 가지라. “죽어있지 말고 살아 있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활력을 최대한 발휘하십시오. 육신적 활력도 무시 마십시오. 우리나라에서 가장 튀는 설교자 하나는 그 힘을 몸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활력으로 넘치는 인상을 주고 물리적 자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설교자에게 요구되는 말이다. “끓는 피로 몸을 채우십시오. 마음속에 정직과 진리를 가지십시오. 심령 가득히 주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넘치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당신의 목회에 대해 성공 또는 실패의 점수를 붙여도 개의치 마십시오. 당신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 항상 확신이 넘치는 게 아니다. 누구건 자기가 믿는 것과 하는 일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더 이상 능력도 없는 것 같이 보인다. 거룩한 사람 엘리아도 다윗도 그랬다. 엘리아는 로뎀 나무 아래서 기진맥진했었다. 다윗은 자기 영혼에게 왜 낙망하느냐고 자주 말했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가 마음을 풀 수 있는 게 설교자가 아니다. 설교자는 복음으로 스스로 마음을 잡아야 한다. 하나님 밖에 잡을 대상이 없는 게 목사 아닌가. 그렇다면 확실하게 잡는 수밖에는 없다. 다시 복음의 요소들을 확인해 보라. 그리고 그 내용을 믿고 자기 영혼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라. 몸을 일으키라.

    엘리아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일어나 은거하는 굴로 갔다. 다윗은 자기 영혼에게 힘을 내라고 명령한다.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영으로 채운다. 믿음으로 몸 안에 주를 향한 사랑과 감사와 확신이 넘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에 설교를 만들고 외치라.

    주제가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게 한 다음에 설교를 작성해야 한다. 자신에게 애매하거나 자신이 없는 것은 절대로 청중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주께서 내게 해 주신 일, 그래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나 스스로 느끼고 감사할 때 설교는 시작된다. 그 내용의 한 부분을 감동 속에 외치는 게 복음적 설교이다.

    사다리식 설교

    하나씩 덧붙여 나가는 것이다. 물론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수준으로 또는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 순서로 한다.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쌓아 올리는 것이다.

    먼저 이해하기 쉽거나 하기 쉬운 것부터 말한다. 1) 사람들의 종됨을 기뻐하라. 2) 하는 일과 자신을 동등하게 생각지 말라. 3) 절대로 정직하라. 4) 생명력을 가지라. 갈수록 어렵고 수준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앞의 내용들이 있을 때 뒤의 것이 쉽게 이어진다. 바로 “생명력을 가지라”고 하면 훨씬 어려울 것이다.

    쉬운 것이나 잘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다리꼴의 설교란 말 자체가 보여주듯, 하나씩 하나씩 얹어가는 모양이다. 이해가 쉬운 것이나 잘 아는 것에서 또는 흥미가 많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들에서 시작되어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져 가야 한다. 그러니까 설교의 목적은 뒤의 내용에 있는 셈이다. 한 단계씩 설명하라.

    세상에서 늘 경험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신앙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것은 초신자를 향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앙의 원리에서 시작해서 세상의 활동으로 나갈 수도 있다. 이것은 오래 믿은 신자들을 상대로 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서 신앙의 원리를 적용하게 하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도 봉사나 선행은 안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을 위해 설교할 때 구원으로부터 시작해 봉사와 헌신까지 이끌어줄 수 있다. 하나씩 시작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관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것 저것 말하는 게 아니라 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해야 논지가 바로 선다.

    몇 가지 예를 보자.

    1. 누가 땅의 소유자인가? (시 24:1)

    1) 어떤 사람은 땅이 마귀의 것이라고 한다.
    2) 어떤 사람은 땅이 땅의 것이라고 한다
    3) 어떤 사람은 땅이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
    4) 우리는 땅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한다.

    2. 신앙과 의심 (막 9:24)

    1) 누구나 때때로 의심한다
    2) 누구나 무언가를 믿는다
    3) 신앙과 의심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절정을 이룬다.
    (이상 조지 버트릭)

    3. 최고의 은사

    1) 성령 받았음을 확인하라
    2) 그러면 성령의 은사도 있다
    3) 받은 은사를 더욱 개발하라
    4) 주의 사랑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라


    사다리꼴 설교의 실례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그 능력을 삶 전체에 적용시켜본다. 신자라면 누구나 이 부활의 힘을 속에 가지고 있다.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달걀 속에 생명이 주어져야 하는 것과 같다. 이 부활의 생명을 인격과 성품에 적용시키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향해 사용하게 해보자.


    1 단계

    제목: 부활의 그리스도
    논지: 그리스도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1) 그는 영혼을 부활시킨다.
    2) 그는 육신을 부활시킨다.
    3) 그는 인격과 성품을 부활시킨다.
    4) 그는 사회의 부활을 위해 일하게 한다.

    2 단계:

    1) 그는 영혼을 부활시킨다: 그냥 영혼이 계속 살아있는 게 아니다. 기쁨과 영광 속에 영원히 산다

    2) 그는 육신을 부활시킨다: 몸이 다시 사는 정도가 아니다. 신령한 몸으로 죽음을 초월한 몸으로 산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3) 그는 인격과 성품을 부활시킨다: 부활의 씨가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중생한 이의 성품이 변해간다. 부활의 생명과 능력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4) 그는 사회의 부활을 위해 일하게 한다: 부활의 이 능력이 우리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시고 도우신다.

    3 단계:

    부활의 그리스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오늘 우리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을 교회나 성경이 설명해 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부활에 의해서 설명되고 부활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도 성경도 없었을 것입니다.

    거룩한 금요일에 예수는 외형적으로 볼 때 완전한 실패자로 죽었습니다. 따르던 자들은 다 흩어졌고 하던 일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납니다. 따르던 자들은 다시 모였고 그의 운동은 일어나 중단되지 않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창조 사건입니다....

    본래 예수는 자신에 관해 말했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것은 그가 자신에 관해 말한 중요한 내용 중 하나입니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 중 그 누구도 자신에 대해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가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예수를 단순히 선한 인간으로 부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예수가 선한 인간일 뿐이라 한다면 오히려 전혀 선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 관해 한 진술들이 분명한 사실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거짓이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선한 인간일 뿐이라면 “부활이요 생명”은 거짓이 됩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생각해 예수가 한 인간으로 최고 수준이 되어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까? 그 반대입니다. 그는 자비를 가지고 인간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부활이요 생명”임을 증명해주었습니다. 그가 “부활이요 생명”임은 네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그는 “인간 영혼의 부활”입니다. 불멸에 대한 믿음은 특별히 기독교적이랄 게 없습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종교가 영혼의 불멸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되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래부터 거의 자연적인 본능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후에도 존속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불멸은 그런 게 아닙니다. 개인적 불멸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예수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이라는 그의 고무적인 말을 의지합니다. 그가 바로 이 길을 우리를 위해서 개척해 주신 것입니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적 불멸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외롭고 고아된 영이 땅과 하늘 사이 여기저기 떠다니며 정처없이 방황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와 그리고 서로서로가 교제를 나누며 기쁨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 것입니다. 그이 부활은 영혼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2. 그러나 그것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육신의 부활”을 발견합니다.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라는 조목에 있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게 무엇입니까? 현재 몸을 구성하고 있고 언젠가 티끌과 먼지로 분해될 입자들이 다시 모여 지금과 똑같은 몸을 다시 형성하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전 15:50)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신령한 몸”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냥 순수한 영이 아니라 신령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육의 몸과 정확히 똑같지는 않아도 영보다는 육의 몸을 더 닮았습니다.

    이 믿음의 근거는 주의 부활한 몸입니다. 복음서의 부활 기사를 읽어 보세요. 어떤 때는 제자들이 그를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렸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금세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육체적으로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닫힌 문으로 들어왔고 생선도 먹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우리가 지금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물질적이거나 육체적인 어떤 것입니다. 아마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리 큰 물질이라도 한 부분을 보면 작은 입자가 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작은 우주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에 의해 보장된 영혼의 부활과 육신의 부활 둘 다 죽음의 체험 다른 편에 존재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생겼습니다. 성경에서 그것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가 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죽음에서 일어나심으로 멸망시킨 것입니다.

    현생에서 맨 처음 멸망 받을 원수는 죄입니다. 사람들 속의 죄와 사회의 죄, 바로 여기 우리 고난의 근원이 있습니다. 죄를 처치하는 방법을 찾기까지는 우리 삶의 해결책도 사회를 위해 해결책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타락시키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타락시키는 상태에서 부활입니다.

    3. 이것은 중생을 통해 “인격과 성품의 부활”로 나타납니다. 부활의 주를 보기 위해 모였던 11명의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시골사람들이었고 대다수가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과 행동에 이끌렸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인격, 곧 생명과 진리의 반응으로 자기 삶의 죄악성에서 탈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에게는 회심이 들쭉날쭉한 긴 과정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소의 사울에게는 갑작스러운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둘 다 주에 의해서 정복되고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회심의 신비입니다. 인격과 성품이 변화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마음 착하고 적응 잘하는 여자 교인이 있었습니다. 자기 신앙이 열정적이지 않음을 알고 활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발견한 것은 자기 속에 두 자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이 늘 싸우고 있었습니다. 설교 듣다가 그 중의 하나가 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깊이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급한 자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주로부터 새 삶을 받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살아있는 신앙을 누립니다. 어느날 아주 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회복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그 신앙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 젊은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신앙을 거부해왔습니다. 모든 게 잘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늘 누워있었고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이 싫어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결혼한 아내도 늘 아프다고 말하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유명한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사람의 책을 읽었습니다. 우주에는 사람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이 힘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그에게 권했습니다. 기도가 바로 그 힘을 제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기도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그 힘을 주십시오. 내 안에 들어와서 힘이 되어주십시오.” 이렇게 하면서 그의 건강은 차츰 좋아졌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확신이 일어났습니다. 가정도 바로 잡혀갔습니다. 그는 이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더 누려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유명한 대학에서 학위를 네 개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죄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대학이 나 같은 기형적 존재나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삶에서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그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었습니다.

    4. 이제 더 나아가서 “전체 사회의 부활”이 요구됩니다. 얼마 전에 나는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거기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철학과 신앙이 담겨져 있습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에 활기와 선의가 퍼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협력 정신이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우리가 향유하는 축복이 기독교신앙의 결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회를 이끌어갈 양심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그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활동의 기준이 되는 생명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전체에 대한 전능자의 승인을 다시 얻어야 합니다. 또한 그의 통찰력 있는 임재를 다시 찾아야만 합니다.

    속여서 사업하는 이들, 정치적 모리배들,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임금 인상만 요구하는 노동자들, 서류를 조작해 엄청난 탈세를 하는 사업가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악행을 고통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사리를 앞세우는 것은 악한 일인 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에 거룩한 삶과 하나님 사랑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일어나려면 교회를 통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함께 노력하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밤이 닥쳐올 것입니다.” 나는 이 편지가 방방곡곡의 가정에 깊숙히 파고들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 속에 영적 부활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주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능자의 승인을 다시 얻어야 하고 그의 통찰력 있는 임재”를 되찾아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이기적이고 일시적인 이익”을 기꺼이 물리치고 있습니까? 이 사람처럼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도 거룩한 삶과 하나님 사랑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일은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습니까? 교회가 여러분을 믿고 기대를 걸 수 있을까요? 이 위대한 부흥이 우리에게서 시작되게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밤이 닥쳐올 것입니다.”

    깊어가는 밤의 암흑입니까? 아니면, 삶에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비치는 그리스도 부활의 빛입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의 부활이 우리를 그의 안의 새 삶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오늘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읍시다. 그 부활의 능력이 지금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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