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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대조적 주제설교
    2024-06-18 07:37:30   read : 9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두 대조적 주제설교는 두 개의 상충되는 주제를 가지고 서로 비교나 대조 또는 변증법적으로 대화를 시킴으로 논리를 진행한다.

    두 대조적 주제는 서로 간에 보완할 수도 견제할 수도 있다. 옛 것과 새 것의 예를 들어보자. 옛사람과 새사람은 서로 견제되는 개념이다. 옛사람은 육에 속하였고 새사람은 영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혜”와 “은혜 위의 은혜”는 다르다. 앞에 것보다 뒤의 것은 더 발전한 개념이 된다.

    그러나 두 대조적인 개념을 대조 비교하면서 바라는 목표로 이끌어 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먼저 한 쪽을 설명하고 다음으로 다른 쪽을 설명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쪽을 설명하고 다른 쪽을 설명하고 다시 한 쪽 다시 다른 쪽 식으로 나갈 수도 있다. 변증법적인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여하간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이끌어간다.

    두 편의 설교를 실었다. 바울의 이야기로 둘 다 비슷한 주제이다. 그의 육신적인 한계와 하나님에게 잡힌 새로운 모습을 그려보려고 하였다. 복음적 설교는 항상 인간의 약함을 말한다. 동시에 그 약한 인간이 하나님에게 잡혀 강해짐을 말한다. 여기 예화만 붙이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

    두 설교 모두 두 가지 주제를 대조시켰다. 앞의 것은 옛 사람을 먼저 말하고 나중에 새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뒤의 것은 옛사람과 새사람을 비교 대조하면서 진행한다. 앞의 것은 전기 설교의 형태 역시 취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인간의 훌륭함이 아니라 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잡혀 훌륭해 짐이다. 믿음으로 즉각 훌륭해지고 믿음으로 더욱 훌륭해진다.

    설교 1: 먼저는 스스로 크지만 작은 자를 말하고 다음으로는 작다고 생각 할 때 정말로 커지는 자를 말한다

    제목: 큰 자와 작은자
    본문: 행 9:1-9
    논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큰자는 작아지고 작은자는 커진다.
    1. 사울은 본래 큰자였다.
    2. 그리스도를 만나자 작은자가 된다.
    3. 그리스도를 영접해 진짜 큰자가 된다
    4. 스스로 작은자는 그의 은혜로 위대한자로 살아진다.

    큰 자와 작은 자
    행전 9:1-9

    오늘의 주인공은 바울이란 사나이다. 그의 본명은 사울이었다. 큰 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 맞도록 세상에서 그는 큰 자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유대인 중에서도 최고인 바리새인이었다. 훌륭한 가문과 교육은 그를 교양인으로 또 지식인으로 키웠다. 이미 젊은 나이에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완전히 바뀐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당당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는 자기 이름을 바울이라고 바꾸었다. 작은 자라는 뜻이다. 오 이 작은 자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의 삶을 온통 뒤바꾸어 놓았던가? 그의 삶은 영욕으로 뒤섞였고 긴장과 감격과 권능과 수치로 채워졌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그처럼 큰 자가 될 수 있다면!

    1. 큰자 . 사실 바울은 세상에서 볼 때 모든 면에서 갖추어진 사람이었다. 원한다면 국가의 지도력을 잡을 수 있었다. 자기가 믿는 신앙의 기준으로도 흠이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율법대로 철저하게 이행하여 완전한 이였다. 대제사장조차 인정한 촉망받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예수를 믿는 이단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이 이단을 박멸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그 이단에 빠진 스데반이라는 청년이 잡혔다. 분노한 군중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 얼굴을 보았다. 천사가 보인다면 그 모습이었으리라. 그 얼굴은 사랑과 확신으로 빛났다.
    스데반은 그들 앞에서 성경으로 설교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 계신다.” 그는 그들이 율법을 외형적으로만 지키고 마음으로는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그러기에 우리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 이제 우리는 조상보다 더 심하여 메시아를 못 박아 죽였다. 그러면서도 율법을 지켰다고 주장하는가!”

    듣던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이를 갈았다. 바른 설교가 주어져 양심이 괴로우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고 회개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모두 회개하는 사람이 되기를. 스데반은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선 것이 안 보이는가!”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 계시는 사람들에게 거부되었다. 돌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스데반의 얼굴은 부서지고 선혈은 흘러내렸다. 그는 손을 모았다. 마지막 힘을 다하여 기도하였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외쳤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돌무더기 속에서 잠들었다. 이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가 거짓으로 그랬다면 어찌 자기 죽음을 볼모로 장난을 할 수 있었겠는가.

    청년 사울을 이 린치 장면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열심은 이 신앙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유대교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편 스데반의 죽음은 너무나 이상한 것이었다. 어째서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그렇게 초개처럼 던질 수 있는가? 그 당당함은 어디서 왔을까?

    사울은 괴로웠다. 열심으로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속에는 언제나 한 다른 법이 있어서 그를 죄의 법 아래 끌고 가고 있었다. 겉으로 기도와 금식과 여러 의식으로 완벽한 신자였다. 그러나 내면에는 육신의 욕심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은 쾌락을 원했고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는 그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었다. 삶에는 기쁨이 없었다. 평안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투쟁하고 있었고 언제나 인간적일 뿐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완벽한 예배를 하지만 내면으로는 육신의 기쁨을 원하였다. 입으로는 선행과 사랑과 금욕을 말했지만 마음은 그 반대의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다른 율법주의자들처럼 그도 엄격한 겉모습만을 가질 뿐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럴수록 더 열심히 율법을 지켜야지. 경지에 이르면 완전한 선행을 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수준에 도달하리라. 그러니 열심을 내어 예수쟁이들을 잡아내어야지. 다메섹에 가서 더욱 많은 이단들을 잡아오리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잡으리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리라.

    다메섹으로 달려가던 길에서 그는 말에서 떨어진다. 큰 빛이 비췬 것이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가운데 큰 음성이 들렸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괴롭히느냐?” “주여 뉘시나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놀랐다. 자기가 핍박하는 예수가 그렇게 추구하던 하나님이라니. 그리고 자기가 열심을 낼수록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되다니!

    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한다. 회개한다. 바른 계시의 지식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이 하는 방법과 자기 생각만을 따라서 믿었던 것을.(롬10:2) 자기가 열심 낼수록 육신의 생각이 판을 치고 그렇게 함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성령 받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에서도 가렸던 장막이 벗겨짐을 알았다. 이제 진리가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2. 작은자. 그는 과거의 자랑을 이제 모두 버렸다. 전에 그렇게 추구하고 자랑하던 것들을 이제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 거기 의지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알려준다. 거기 길과 진리와 생명이 있다. 하나님 광채가 빛나고 있다. 거기 비해 육신적 자랑거리들은 배설물이었다. 이제 그는 생의 원리를 바로 보고 있었다.

    깨달았다. “나는 그가 만드신 물건이요 생명의 근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육신뿐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리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도우려 하시건만 나는 그 힘을 외면하였었다. 그리고 내가 육신이 행한 대가를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를 확실히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겼다. 그것들은 그리스도를 얻는데 도움이 될 때만 소용이 있다. 내 잘난 것이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서게 하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은 배설물이다.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내 잘남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 내 이름은 더 이상 사울이 아니다. 그렇다 가장 작은자인 바울이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고 싶어 했다. 안그러면 아담 안에서, 육신 안에서 발견된다. 누구나 그렇다. 아담 안에서 보는 나는 늘 불안하고 매사에 불만이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우울하다. 죄인의 삶이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교만하고 자랑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써왔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받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다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큰자가 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노력을 포기하였다. 이미 예수께서 그 일들을 완벽하게 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내 죄를 없애는 것,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받는 것, 참된 자유인으로 사는 것, 모두 다 예수가 나를 위해서 해주셨다!

    3. 진짜 큰자 . 너무도 쉬운 그러나 확실한 진리였다. 그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져 자녀가 되었다. 그의 속에 유대인 혈통과는 비교가 안 되는 하나님의 생명이 부어졌다. 세상의 지혜와 능력과는 상대도 안 되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으로 채워졌다. 이 모든 것은 노력해서 조금씩 얻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행한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즉시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왔던 성경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무력함, 천지창조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모든 말씀들은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그에게 임해왔다. 그는 말씀대로 행동하였다. 마치 그리스도가 된 것처럼 말씀의 내용대로 움직였다. 그 말씀은 그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처럼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처럼 두려워하던 안 보이는 세상이 말씀을 통해 경험되기 시작하였다. 귀신이 굴복하고 병이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 모든 죽어 가는 영혼을 향해 민망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외쳤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그는 이 소식 전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기로 하였다.

    4. 스스로 작은자 . 그는 더 이상 편안히 안주하며 살 수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복된 소식을 전하느라 그의 껍데기인 몸은 전혀 쉬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스스로 나섰다. 그러면서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소란한 것 잠 못 자고 먹지 못하는 각종 수고 속에 살게 되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6:8-10) 평생을 그렇게 움직였다.

    산 넘고 바다를 건너 세상 끝까지 복음 들고 다닌다. 하나님이 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고 보는 자신의 모습에 구애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정의해 주신 자신을 믿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을 따라 힘을 다해서 수고하노라.”(골 1:29) 그의 꿈과 능력은 한이 없었다.

    그는 인생은 로마의 감옥에서 마쳐진다. 그의 늙은 몸은 사형수의 도끼로 두 토막이 되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오 위대한 삶이여!



    설교 2:

    제목: 자랑할 것 두 가지
    본문: 고후 12:1-10
    논지: 신자는 자신의 약함과 그리스도로 인해서 강해짐을 자랑한다
    1. 신자는 약함을 자랑한다.
    2. 약하므로 하나님을 의지해 강해진다.
    3. 약한 나와 강한 나를 자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약함을 부끄러워한다.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신자는 그 약함을 하나님 앞에 드러낸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한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의지한다. 결과는 하나님의 강함으로 나타난다. 그럴수록 인간의 약함을 절실히 본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해 더욱 강해진다.

    이러한 내용을 변증법적으로 대화를 시켜보자. 1번과 2번은 서로 대조되는 상황이다. 청중은 평면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보다는 자꾸 바뀌어나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다. 그러므로 1번과 2번을 번갈아 가면서 대조 시켜보았다. 다르게 하려면 1번에 해당하는 것만 모아 말한 뒤에 다시 2번에 해당되는 것만 모아서 할 수도 있다.


    1. 인간의 기본 욕구: 자랑하고 싶은 마음
    2. 신자의 자랑거리: 약함

    1. 인간적인 자랑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2. 하지만 약함은 하나님을 추구하게 한다.

    1. 하나님을 추구할수록 더욱 약한 자신을 본다.
    2.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1. 그럴수록 더욱 약해지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한다.
    2. 그러므로 인간적인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은 동시에 나타난다.

    1. 약한 바울에게 하나님은 3층천까지 경험하게 하신다.
    2. 신자는 자신의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을 동시에 자랑한다.


    자랑할 것 두 가지
    고후 12:1-10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무엇일까? 자랑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처럼 실제적이고 강렬한 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 자체이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고 솟아오르는 가장 강한 욕망이다. 연약한 사람들일수록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하기만 하다.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된 이유가 어디 있는가? 스스로 하나님 되어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도움으로만 살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하나님 도움 없이 살려 한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였다. 이 무서운 착각 곧 교만이 타락의 원인이었다. 교만은 곧 인간 자체였다.

    세상의 모든 길은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학문을 하고 재산과 명예와 권세를 가지려는 목적은 단지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좋은 차를 산다. 집을 사고 땅을 산다.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킨다. 이 모두 자신을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강함은 곧장 자기 자랑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하나님 경배까지도 자신을 강하게 하는 목적일 뿐이다. 자신이 건강하고 평안하고 번영하려는 마음 아닌가. 기도하는 내용도 항상 자기와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되는 게 아닌가. 그대로 잘된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랑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이다.

    신앙을 가지면 자랑의 방법이 바뀐다. 전에 자랑하던 것은 수치가 되고 전의 수치가 자랑이 된다. 무슨 소리인지? 기독교는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든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면 볼수록 자신의 약점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은혜를 알수록 자신은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약하기만 하고 자랑할 거리가 도무지 없다. 자기 속을 들여다보라. 너무도 치사하고 너무도 불안한 존재 아닌가. 하나님의 빛 아래 보는 자신은 너무도 추하고 악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오지 않으려고 한다.

    1. 하지만 신자는 약함을 자랑한다. 약해야만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 약함을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강함으로 대치시켜 주시지 않는가. 약한자만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찍어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주어 하나님처럼 살게 하신다. 그러니 약함을 자랑할 수밖에.

    바울이 그러한 자랑을 하였다. 본문에 그 방법이 그려져 있다. 그는 두 가지를 자랑했다. 그것도 따로 따로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대치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간격이 많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신자들 속에 있어서 신자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기를 삼인칭으로 설명하며 자랑했다. 그는 하늘의 능력과 신비를 맛보며 가히 인간이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말을 하고 들었다.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만을 자랑한다. 자기 몸에 사단의 사자가 와 있다. 그래서 너무도 약하고 고통스러웠다.

    모두가 자기 강한 것만을 자랑하는데 그는 왜 약한 것들을 자랑해야만 하는가? 그것이 왜 자랑거리인가? 세상적으로 볼 때 그에게는 육신적 자랑거리가 너무 많았다. 유대인 중에서도 유대인이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학교에서 세계적인 스승에게서 배웠다.

    인간적으로 가장 상류층인 바리새인이요 부요한 자요 엘리트였다. 신앙적인 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완전하게 율법대로 살았다.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는 흠이 없고 존경받는 대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사람들이 자랑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자랑거리들은 의지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진다. 사람을 강하게 하여 하나님이 필요 없게 한다. 그에게는 이 점이 가장 두려웠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저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의지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건 자랑거리가 아니고 수치거리다. 그래서 배설물이라고까지 한 것이다.

    유능한 원숭이 즉 가장 아름답고 사람 흉내를 완벽하게 하는 원숭이가 있다고 하자. 그래도 그는 사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자랑거리가 많디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난 것이나 장점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강해서 자기 힘으로 서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 의지가 약해서 의롭게 올바르게 살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약한 것만 자랑했다. 약한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수치거리다. 모두 감추고 숨기려 한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운 것과 실수를 자랑하였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너무도 솔직하였다. 그는 약하여 두려워 떨었다고 했다. 자기 몸에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와 있다고 고백하였다. 그 사자가 너희들을 시험하는 바로 그 존재라고 했다. 그에게는 전혀 허세가 없었다. 위선도 없었다. 그저 약하고 부족한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였다.

    신앙의 경지가 깊어지고 하나님을 더 이해할수록 더 부족한 느낌만 강해진다. 하나님 앞에 서서보면 자신의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일 뿐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악한 마음이요 욕심뿐이다. 자신의 상태는 무능이요 무력이요 주책뿐이다. 정확히 보면 자신에게는 절대로 자랑할 것이 없다.

    2. 그러므로 약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신앙이 깊어지면 하나님을 더 잘 보게 된다. 동시에 자기의 죄성도 더 분명히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의지는 절대적으로 된다. 결국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니 약함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된다.

    바울은 자기 몸에 주어진 사단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였다. 대답은 단지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진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그는 위대한 진리를 발견한다. 즉 약함은 최대의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약하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의지할수록 강해진다.

    하나님은 약한 자의 하나님이다. 약한 자는 모든 자기의 수단을 포기한다. 어차피 약하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마귀를 이기고 문제들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인간이다. 그걸 알면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그 만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대로 행동할 때 하나님의 강함을 누리게 된다!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고 목회를 못한다고 한다. 불신앙이다. 돈이 넉넉해서 사업도 잘 하고 목회도 잘 한다고 하다. 역시 불신앙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만 의지한다. 돈뿐 아니라 자신의 강한 모든 것이 그러하다. 혹시 세상적으로 잘 되고 높아져도 순전히 육신일뿐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그는 우리의 대표이다.(고후 13:4)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한다. 약해야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나님을 의지해서 강해짐을 시범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그가 용서했다는 말씀만 의지한다. 나는 아무 의로운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의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을 믿고 의지한다. 그의 의가 곧 내 의라는 사실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나의 무능을 감추지 않으리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졌음을 자랑하리라.

    나는 연약과 병듦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의지할 것은 나의 경험이나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고치셨다는 말씀이다. 나는 두렵고 불안하고 자신이 없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내 안에 계셔서 나를 기쁨으로 평안으로 능력으로 만들었음을 철저히 주장한다.

    3. 결국 두 자랑은 동시적이다. 자기 약함을 자랑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강함을 자랑한다. 자기의 약함만을 자랑하면 열등감과 좌절에 빠진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 잡힌 자신을 자랑한다면 전혀 분위기는 달라진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을 믿기에 강해진 자신도 믿을 수밖에 없다.

    바울은 약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잡힌 자신을 자랑하였다. 자신의 인간적 훌륭함을 자랑하지 않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었다.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 아무 것도 없고 자신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고 행동하였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삶도 그러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자랑하였다. 그 사람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힘은 항상 그의 안에 머물었고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였다. 그가 설교할 때 그리스도는 그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가 안수할 때 그리스도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함께 얹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다. 거기서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고 말하였다. 참으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경험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자신의 약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들뿐이었다. 하나님은 의지하는 약한 자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세상의 잘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1:27-31) 자기 잘난 것을 자랑하는 이는 그것을 의지하고 뽐낸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자기 못난 것을 자랑했다.

    위대한 대통령 링컨과 위대한 부흥사 무디는 초둥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자랑할 때 새 삶은 시작되었다. 누구든 자신 속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믿고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다. 도대체 이보다 더 위대한 삶을 살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약함은 모두가 유익이 될 수 있다. 약함이 곧 축복이라는 게 아니다. 그걸 유익으로 이용하라는 말이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경험하는 약함은 은혜이다. 자기 못난 것 깨닫는 것이 은혜의 중요한 단계이다. 나를 자랑할수록 그리고 자랑할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은 그 속에 없다.

    약하기만 해서 하나님 도움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설 수 없음을 알고 고백하는 것이 복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함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 속에 넘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는 자랑하리라.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자랑하리라. 그리스도의 강함이 나의 약함을 통해 쏟아져 나오게 하리라.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라.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먼저 그리고 더욱 자랑하리라. 내 안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을 자랑하리라. 그것이 내 약함을 어떻게 덮어주고 나를 아름답게 하는 의복인지 쉬지 않고 자랑하리라. 그리고 이 자랑들이 날로 깊어지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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