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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4:17- 창15:1-/ 나는 너의 방패요 /조용기 목사
    2014-09-09 09:04:54   read : 1305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 팔레스타인 땅에는 히틀러와 같은 포악한 독재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그돌라오멜 왕이었습니다. 그돌라오멜 왕은 주변의 모든 왕국을 다 정복하고, 속국으로 삼고 무서운 압제를 가한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 왕을 섬기다가 제 13년에 배반했었습니다. 그러자 제 14년에 그돌라오멜 왕이 그 동맹한 왕들과 함께 이 배반한 다섯 왕을 멸하기 위해서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전쟁은 싯딤 골짜기에서 벌어졌는데 배반한 다섯 왕의 연합군이 대패하여 뿔뿔이 도망치매, 그돌라오멜 왕은 그들 왕국에 들어가서 모든 물건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다 포로로 잡아가는 중에 소돔 땅에도 들어가서 소돔과 고모라를 완전히 늑탈하고 그 곳에 있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 가족과 그 재산도 하나 없이 다 탈취해서 다 빼앗아 간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분도 막심해서 집에서 기른 318인을 거느리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야음을 타서 이 그돌라오멜 왕 뒤를 쫓았습니다.
    그들은 전쟁에 이기고 난 다음 실컷 먹고 마시고 대취해서 방심하여 깊이 잠이 들었는데, 아브라함의 가신들 318명과 아브라함이 두 떼로 나누어서 그들을 포위해서 공격하매, 혼비백산해서 달아납니다.

    이것을 따라가서 끝까지 승리합니다. 그들이 포로로 잡은 모든 백성들과 재산을 다 도로 빼앗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고 의기양양해서 모든 백성과 재물을 갖고서 롯과 그 가족들도 데리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험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 속에 들어가는 신비한 체험을 했었습니다. 바로 이 아브라함의 체험은 오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마귀를 물리치고 신앙의 승리로써 ?? 앞에 나올 때 얻을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반갑게 아브라함을 맞이하고 떡과 포도주를 들게 하고 그 다음 손을 들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멜기세덱이란 누구입니까? 누구이길래 감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고 손을 들어 하나님 앞에 축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1절로 3절로 보면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살렘 왕, 멜기세덱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양을 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왕이요, 그는 평화의 왕이요, 그는 시작도 끝도 없고 족보도 없이 이름만 덜렁 나왔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님이시며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렘 왕 멜기세덱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와서 떡과 포도주를 주고 복을 빌어준 것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승리해서 나오는 우리들을 복내려 주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빔을 받고 난 다음에 멜기세덱이 주는 떡과 포도주를 받아먹었습니다. 이 떡과 포도주는 오늘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워 회개하고 이기고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믿고 돌아오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 떡과 포도주인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저 안에 거한다고 예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떡과 포도주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올 때 주님께서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주는 것은 용서와 의의 언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제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았다는 언약을 받는 것이며, 화해와 성령 충만의 언약을 받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된 담이 다 무너지고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충만히 선물로 받으리라는 언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의 언약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주실 때는 이를 통해서 우리 연약함과 병을 다 제하시고 우리에게 치료를 베풀겟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그 속에 포함하는 것이며, 축복의 언약입니다. 이를 통해서 모든 우리 삶의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고,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겠다는 언약의 표시인 것이며, 영생부활의 언약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었다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죽어도 살고, 영원히 부활해서 천국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그의 살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주셔서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언약을 맺게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간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오직 원수된 관계 밖에 없고 심판의 관계 밖에 없습니다만,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와 같은 놀라운 언약 관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떡과 포도주를 받아서 먹고 마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언약관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복을 하나님이 빌어주는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받은 아브라함을 위해서 멜기세덱은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창세기 14장 19절로 20절에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오늘날 우리도 성찬을 받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아브라함이 복을 빈 멜기세덱인 우리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 손을 들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뭐라고 복을 주실 까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준 축복은 또 오늘날 우리의 멜기세덱인 예수께서 요한 3서 2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총괄적으로 주시는 복과 같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고 우리가 범사에 잘되고 우리가 범사에 강건하기를 주님께서 원해서 복 빌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축복에 대한 신앙고백을 우리가 한 번 보십시다.

    그가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이 큰 복을 받고 난 다음 이 복을 난 확실히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신앙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언약이 되요. "나 이렇게 해줄게. 그럼 나도 이렇게 해줄게요"
    두 사람의 쌍방간의 언약이 돼야지,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은 안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언약을 받고 난 다음에 그 언약에 대한 아브라함 쪽의 응답을 보십시다. 여기에 아브라함은 십일조의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20절에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오늘날 십일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을 빌었을 때 그 복을 나는 믿음을 받아들였다는 언약관계에 들어가는 신앙의 고백으로써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십일조는 드려도 좋고, 안 드려도 그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잘못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복을 주었을 때 그 것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확실한 내 쪽의 신앙고백인, 바로 십일조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일조를 우리가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복을 빌어 주셨어도 그것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내 쪽의 신앙고백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인 것이 되고 나와는 관계가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일조란 단지 우리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예물 조로 드린다는 그 것보다 훨씬 의미가 깊습니다.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그 멜기세덱에게 자기의 모든 십일조를 아브라함은 다 드리므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준 그 복이 확실히 아브라함 것이 되었다는 믿음의 고백을 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멜기세덱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우리에게 복주실 때 이것이 확실히 내 것이요, 나는 이 것을 믿습니다.

    신앙고백으로써 행동으로써 우리의 십일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우리의 수입 중에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멜기세덱인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복 빌어준 것이 내 것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하나님 앞에서 확인하고 신앙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말라기 3장 10절로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이 십일조는 신앙의 고백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나의 것으로 받아드렸다는 신앙의 강력한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의 반응이 없이는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에게는 실천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십일조는 드려도 좋고, 안 드려도 좋다. 이것은 중대한 잘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하고 믿을 때 용서해주고, 구원해 주시지만, 축복의 언약은 반드시 십일조의 언약이 따라야 축복의 언약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예수 교인들이 왔다갔다하면서 수많은 하나님의 언약을 자기의 생애 속에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왜 그러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의 고백인 십일조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난 다음에 확실한 신앙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복의 근원으로 삼는다는 이와 같은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14장 21절로 23절에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보십시오. 강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소돔 왕이야 마땅히 그렇겠죠. 자기가 전쟁에 져서 잃어버린 모든 백성을 찾아주었으니 감사하고 재물은 수고했으니 아브라함이 가져가도 좋다고 하는데, 아브라함이 하는 말이

    "웃기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내가 이미 부자 집안이 더 큰 부자가 되었을 때, 우리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서 더 큰 부자가 되었다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잘 살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나의 축복의 원천이 되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삶의 자원이 되신 아브라함은 손을 들어 하나님 앞에서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사기도 치고, 남의 물건도 훔쳐 빼앗고, 이렇게 해서 나중에 잘 살게 되고 "아 하나님 복을 받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수평적인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직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는 복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이 형통하여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삶의 근원으로 삼고, 하나님을 우리 축복의 근원으로 삼지. 이 세상에서 오는 것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우린 잘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 신앙고백을 분명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이 짧아 우리를 못 도와주시겠습니까? 귀가 둔하여서 우리의 기도를 못 들어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이 없어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의 축복의 언약관계에 들어가서 확실히 언약 받은 신앙고백을 하고 그 다음 입술을 통해서 나는 만 군의 야훼 하나님이 나의 삶의 근원이요. 나의 축복의 근원이요.
    나의 삶의 자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 하셨으니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만 의지한다. 십자가만 의지한다.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 들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놀라운 신앙 고백입니다. 이것을 나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의만 먼저 구합니다. 그 다음 일은 하나님이 돌봐주신다는 담대한 신앙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요한복음 10장 10절 같은 것도 담대한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단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들어갔으면 우리의 신앙 고백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담대하게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늘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나는 안돼요. 나는 못해요. 나는 죽어요. 나는 실패해요. 나는 패배자예요. 나는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못해요. 이러면서 돌아다니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언약관계에 들어가시면 이제는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은 여러분의 것이라는 것을 죽어도 타협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십시오.

    그러자 곧장 하나님께서 밤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의 그 신앙 고백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을 턱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한 신앙 고백을 하게 될 때 아브라함에게 주신대로 여러분과 저에게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가장 중대한 문제가 두려움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소외될까 두렵고, 실패할까 두렵고, 가난할까 두렵고, 사고날까 두렵고, 질병이 걸릴까 두렵고, 원수에게 억압당할까 두렵고, 죽을까 두렵고, 이 세상에 두려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서 해방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환경과 운명으로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련 때문에 두려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말씀하기를 "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 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갈 때 우리는 마음속에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두려워말라고 했을까요?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그것은 나는 너의 방패라고 말한 것입니다. 방패란 무엇입니까?

    방패란 전쟁 때 내려치는 원수의 칼, 쏘는 활, 찌르는 검을 막는 기구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에게 너를 보호해주고 막아주겠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갔을 때, 아람 왕이 군대를 보내서 밤새도록 도단성을 포위하고 아침에 엘리사를 포로로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일찍 나가보니깐 도단성이 첩첩이 아람 군대에 둘러싸였습니다.

    아람 군대의 깃발과 창검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종이 벌벌 떨며 들어가서 "선생이여, 우리는 큰 일 났습니다. 아람 군대가 우리를 첩첩이 둘러쌌습니다. 이제 우리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그 종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종이 눈을 열어보니 도단성 주위에 첩첩이 둘러싸여 있는 아람 군대와 엘리사 그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하게 둘러 진쳐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 눈에만 보이는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하늘 나라 군대가 와서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 보이고, 영안이 뜨이면 볼 수 있는 하늘 나라 군대를 보내셔서 우리의 방패가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길에서 지켜주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에 깨닫고 이것을 믿고 안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고,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24시간 하나님께로부터 보호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될 때,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굉장히 큰 상급인지 압니다. 지위가 큰 상급이다. 명예가 큰 상급이다. 세상에 부귀, 영화가 큰 상급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큰 상급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 이겨서 나올 때 그 탈취한 물건들이 굉장히 큰 상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금도 많고, 은도 많고, 보석도 많으니 이건 내 상급이다. 이걸 내가 가지고 가야지. 그렇게 해야되는데, 아브라함은 그것을 티끌도 먼지 보듯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지 아니하는 것, 나는 취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그 신앙은 놀랍습니다. 탈취해온 재물보다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명예를 나는 더 소중히 여긴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 내가 취해 놓으면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거 하나님이 복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물건 가지고 가서 잘살게 되었다 이렇게 될까 두려우므로 나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 취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큰 상급으로 삼는 신앙, 이것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기를 네가 너의 방패요,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먼저 우리가 간절히 찾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우리의 보배로 삼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우리가 간절히 구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꼬 하는 모든 것은 그냥 따라 오겠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대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사람이 그 결혼한 상대인 남편은 보지 아니하고 그 남편 집의 재물을 보고, "햐~ 그 다이아몬드 햐~ 그 황금반지 햐~ 그 사람이 사는 좋은 집, 야~ 그 사람이 타는 좋은 자동차. 저게 내 것이다. "

    이렇게 한다면 그 남편이 그것을 알 때, 얼마나 마음이 섭섭하겠습니까? 또 그 부인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까? 남편을 내 것으로 삼으면 남편이 가진 것은 자동적으로 다 내 것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시시하게 저 자동차 주세요, 저 집 내게 주세요, 저 다이아 주세요. 그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저 주인인 남편이 내 것이 되면 그 전체는 다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아버지요.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내가 그 안에 살면 그 다음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필요할 때는 내 것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큰 상급이다. 나를 먼저 받아들여라. 내가 너의 상급이다. 내가 너의 부귀요. 내가 너의 영화요. 내가 너의 재산이요. 내가 너의 명예요. 내가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다. 내가 너의 상급이 되어 주마.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있으면 그 다음 다른 모든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주 아버지,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구하지. 선물을 구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구하지 않고, 자꾸만 선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섭섭해지는 것입니다.

    나를 구하면 선물은 따라 올 것인데, 왜 나를 구하지 아니하고 선물만 달라고 그라느냐. 왜냐! 선물만 받으면 똘똘 말아서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려고! 그러니 하나님이 속아넘어갑니까? 하나님이 절대로 안 속아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돌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용서가 되시고, 의가 되시고, 우리에게 화해가 되시고, 성령 충만이 되시고, 우리에게 병 치료가 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되시고 영생이 되시고 부활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증거로써 우리는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고 입술로 담대한 신앙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두려워 말라. 걱정할 것 없다. 세상 사람 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살지만 너는 걱정할 것 없다. 두려워할 것 없다. 내가 너의 방패가 되고 내가 너의 상급이 되어주마" 얼마나 좋은 일인 것입니까?

    그런데 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우리들이 반드시 이와 같이 응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배운 바대로 십일조의 응답, 신앙 고백의 응답을 바르게 함으로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큰 축복에 여러분이 참여하게 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전쟁에 이기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아들 모양인 멜기세덱이 나와서 떡과 포도주를 주고 복을 빌어 주었는데 아브라함이 이 복을 받은 증거로써 십일조를 드리고 신앙 고백을 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셔서 이젠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고 내가 너의 상급이 되어 주마 하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우리 믿음의 조상이요. 우리 신앙의 상징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멜기세덱인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고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의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아브라함이 행한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멜기세덱 앞에 행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십일조 도둑질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긍정적인 신앙고백을 부인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긍정적인 신앙고백을 단호하게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럴 때 하나님은 오늘날도 두려워 말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켜주마, 내가 너의 상급이 되어 주마 라고 말씀하고 계시오니 이 가운데서 평안하게 큰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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