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6:10-20/ 신앙생활과 기도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24:19 read : 185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6장 18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읽은 에베소서 6장에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정신무장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원수를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옛날 로마 군인의 무장을 연상하면서 우리 신자들에게 진리의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으로 준비한 신을 신으며,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그리고 성령의 검인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18절입니다. 곧 기도에 대한 말씀이올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구하기를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한 특별히 자기 자신 곧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부탁이 있습니다.
정신무장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유혹과 시험을 이기며 세상을 이깁니다. 기도를 통하여 승리적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오직 기도를 통하여 큰 문제도 해결하고, 역경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아주 중요한 신앙생활과 기도에 대해서 잠깐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같이 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쓴 사도 바울은 문자 그대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중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부터는 곧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으신 분입니다. 주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를 불러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실 때에, 저는 지금 기도하는 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그때부터 그 일생이 기도하는 중에 사신 것입니다. 아라비아에 가서 조용히 3년을 지낸 것도 역시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쓴 서신은 언제나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칩니다. 그는 자기가 행하는 대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 기도생활은 사실 주님께 배운 줄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도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하심으로 그의 전도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셨고, 또 저녁 늦게까지 기도하신 적이 많습니다. 중요한 일, 가령 12제자를 부르시기 전날 밤에는 밤새도록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변화산에도 기도하시려고 올라가셨고, 기도하시는 중에 그 용모가 햇빛같이 변한 것입니다. 그는 다락방에서도 기도하였습니다. 최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홀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제일 먼저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씀도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일생은 언제나 아버지와 교통하는 기도의 생활이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의 생활이 이와 같이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면이 있습니다.
기도는 첫째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처럼 신령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자비하심과 긍휼하심과 말하자면,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의 심령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뿐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나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듣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지는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는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음성은 늘 듣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게을리하는 때가 많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는 간구입니다.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기도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되고, 그의 뜻과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며, 우리의 필요한 일용한 양식과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간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나 성도의 생활에 필요한 것은 영적, 육적 모든 방면에서 솔직히 간구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간구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는 주님께 맡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구하여야 될는지 항상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원하는 것을 주의 뜻에 맡기면서 구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언제나 최선임을 기억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는 뜻은 아마 이 뜻입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유익하며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이 자랍니다. 강건하여집니다. 풀이 햇빛을 바라볼 때에 자라듯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자랍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여집니다. 더 아름다워집니다. 마치 꽃이 햇빛을 볼 때에 더 붉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더 든든하여집니다. 마음 속에 평화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이 충만하게 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큰 능력을 받습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역경도 돌파할 수 있는 능력, 슬픔도 참을 수 있는 능력, 병도 고칠 수 있는 능력, 모든 능력을 받습니다. 우리 심령 속에 기도를 통하여 생명수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 생활에 있어서도 우리가 몇 가지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가령 첫째는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령 교회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 머리는 숙였지만, 다른 생각을 할 때는 없습니까? 주기도를 입술로 외우기는 외우지만 그 뜻을 잊어버릴 때가 없습니까? 기도의 모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형식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기도를 열심으로 드릴 때 주의할 것이 또한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가운데 자기 최면에 걸려서 혹은 정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경계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 주의하지 아니하므로 혹 기도하다가 정당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이도 있고, 소위 입신한다고 하는 변태적인 현상에 빠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는 아닙니다. 부주의한 기도생활의 파생적인 변태적 심리 현상입니다. 이런 것을 소위 광신주의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경계해야 합니다.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무슨 제단이니 무슨 제단이니 해서 사사로이 모이는 집회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운동은 언제든지 교회를 중심해서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기도회로 모인다고 함부로 따라다니다가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언제든지 특별 기도회 모임을 가지려면 교회와 연락해서 지도를 받아서 할 것입니다. 또 그리고 우리가 다 병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 기도를 통해서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꼭 성경대로 정당히 기도만 할 것입니다.
제가 들으니 어떤 이들은 기도한다 하면서 기도보다도 만지고, 주무르고, 무슨 쥐어뜯고, 혹은 때리기까지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비성서적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지 아니했습니다. 병이 낫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는 것이지 주물러서 낫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안마마찰법이올시다. 비성서적입니다.
이런 데에, 이런 실수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기적을 구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무슨 특별한 이적을 구하고자 하는 심리는 건전하지 못한 심리입니다. 언제나 이런 것을 경계하면서 기도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도에 대한 성서적 교훈은 어떠한가? 어떤 기도가 응답되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전심으로 곧 간절히, 온 정성을 모두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자가 자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껏 기도했는가 생각해 보세요.
셋째는,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로,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해서 그대로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서, 계명도 지키지 아니하면서 욕심대로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기억하십시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을 통해서 우리가 대기와 접촉하고 생명의 유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접촉하고 우리의 생명이 유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데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오해하지는 맙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산에 가서 기도만 하라고 하는 뜻은 아닙니다. 이 뜻은 우리가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탈 때나 방을 소제할 때나 기도는 언제나 마음으로 잠재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은 일정한 기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아침에 일어나서와 저녁에 자기 전에는 기도할 시간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남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성가대원이 되어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누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누구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병나서 자리에 누워서 다른 건 할 수 없어도 누워서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어떤 교회에서 어떤 분이 중풍을 만나서 반신불수가 되어서 교회는 전혀 나오지 못하지만, 그분이 언제나 교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결국은 그 온 교회가 부흥이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도를 열심으로 하는 교인들이 많은 교회는 자연히 부흥이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120명이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으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을 받아서 큰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번 우리 산상기도회 때에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 볼 것이면, 24장로들이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하나님께 바치는 광경이 보이는데, 그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하였습니다. 본 영락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많이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몇 가지 꼭 기억하십시다.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꼭 배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는 꼭 그렇게 하세요. 둘째는, 무시로 기도하는 습관을 배양하셔야 합니다. 셋째는 기도 생활은 언제나 교회를 중심하여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본 교회에서 매일 아침 5시에 새벽기도회를 모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본 교회 새벽기도에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닙니다. 삼일기도회나 언제든지 이런 특별한 산상기도회나 특별한 모임에 반드시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특별히 기도실이 저기 있는데, 기념관에 있는데, 이 기도실도 무시로 여러분께서 사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세요. 기도하는 장로, 기도하는 권사, 기도하는 집사, 기도하는 교인이 되세요. 기도가 없는 교인은 결국은 그 생명은 메마르게 됩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서, 노인들은 청년들을 위해서, 청년들은 노인들을 위해서, 교역자들은 교우들을 위해서, 교우들은 교역자들을 위해서, 친구와 친구끼리, 친척과 친척끼리 서로 기도하세요.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 성도들이 서로 기도로 연락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때에 기도를 힘쓰지 아니하리오마는,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세계가 급변하는 이러한 정세 하에 있어서는, 특별히 한국의 교회와 우리 조국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의 안보를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의 정화를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38선을 지니고 사는 우리는 북한의 동포들과 성도를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우리 가운데 혹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이 자리에 앉은 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혹은 무슨 사업에 실패하신 이가 계십니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이가 있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큰 슬픔을 당한 이가 계십니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생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일만으로도 부족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다해야 됩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께 내 사정을 다 알리며 주님께 나의 필요한 것을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피차에 기도하는 저희들, 이런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산상기도회에 특별히 큰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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