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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5:13-26/ 자유와 그 책임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21:21   read : 163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五․十三)

    갈라디아서는 성경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하는 서신이올시다. 그것은 이 서신 가운데서 사도 바울이 믿는 사람들은 과거 구약 시대의 여러 가지 의식적인 율법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진리를 분명하게 우리에게 선포하여 주신 까닭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자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라고 하는 말은 어제나 오해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마지막 두 장 특별히 5장에 있어서는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령한 자유도 그렇고 정치적인 자유도 그렇습니다.

    바로 내일로 우리는 제二十一회 해방 기념일을 맞게 되겠습니다. 二十一년 전에 우리 민족은 일본의 지배 아래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 자유와 그 책임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자유를 얻을 사람들은 그 자유를 옳게 쓸 책임이 있습니다.
    자유를 남용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선용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물론 종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왜? 종은 주인의 명령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이 되면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것은 자유인은 어떠한 행동이든지 자기 의사에 의지해서 결행할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자유는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칼과 비슷합니다. 칼은 매우 필요합니다.

    바로 쓰면 얼마나 유익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칼을 잘못 쓰면 내 손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는 불과도 비슷합니다. 불이 얼마나 귀한 것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불을 잘못 쓰면 내 집을 사루어서 없이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어린이들은 아직도 자유를 바로 쓸만한 지력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정신병자들에게 온전한 자유를 줄 수는 없습니다. 정신병자는 자유를 바로 쓸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 교정에서 찰스 휘트맨이라는 학생이 정신병에 걸려서 총을 가지고 二十七층이나 되는 높은 탑에 올라가서 아래로 향해 지나가는 사람을 모조리 쏘아서 十五명이 죽고 三十여 명이 부상을 당한 참혹한 뉴스를 우리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가 귀하나 자유에는 위험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자유로 하여금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는 말은 그 뜻입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소욕(所欲)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하나님 주신 법안에서 사용될 때에만 온전하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지으시고 자연계를 다스리시기 위해서 자연의 법칙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계에서 우리 육신을 가지고 사는 한, 우리의 자유는 자연 법칙 아래에서 사용될 때에만 그 자유가 우리에게 유익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상호간에 고귀한 도덕의 법칙을 주신 것입니다. 이 법칙 아래에서 우리의 자유가 사용될 때에만 그자유가 내 자신과 우리 자유에 축복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느 국가의 국민이 되었다고 할 것이면 그 국가의 법 아래에서 나의 자유가 행사될 때에 우리가 다 같이 안전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유로 범죄의 기회를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바로 쓸 줄 알지 못하면 결국은 그 자유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부득이 감방에 감금하여야 양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가 있는 것을 우리는 다 상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자유인은 그 자유를 옳게 쓸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둘째 자유에는 장성과 발전의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반드시 자유를 가져야 합니까? 왜 인간에게 자유가 필요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간에게 자유를 부여하셨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자유가 있어야 인간으로서 장성할 수가 있고 발전할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독수리를 조롱 속에 그냥 기르면 독수리의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호랑이를 어렸을 적부터 우리 속에 가두어 기르면 호랑이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간을 구속한 가운데 두면 이간 내재의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왜 여성도 해방되어야 합니까? 해방되어야 여성에 내재한 모든 아름다운 역량을 발전시킬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왜 우리가 학원에는 연구의 자유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까? 학문의 자유가 없이는 학문이 올바르게 발전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그렇고, 어떤 조류의 자유든지 다 그렇습니다.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학정 아래에서 해방시켜 자유민을 만들어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민이 되어야 선민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二十一년 전에 우리 민족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도 우리가 자유가 있어야 한국 민족으로서의 발전이 가능하고 따라서 우리 민족으로서의 세계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얻은 이는 이 장성과 발전의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방면에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물론 백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거기 가면 유력한 두 종족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 종족은 본래 미 대륙의 본토인입니다. 인디언이라고 하는 종족입니다.

    또 한 종족은 아프리카에서 본래 노예로 잡아온 종족인데 약 백 년 전 남북전쟁 이후에 해방 얻은 흑인종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종족을 비교해 보면 똑같은 미 대륙에서 똑같은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흑인들은 그래도 장성하고 발전하는 중에 있어서 그 가운데 인물도 나고 각방면에 위대한 사람이 종종 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잇습니다.

    그러나 본토인은 별로 이 자성과 발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본토인은 점점 자멸하는 운명에 잇는 것을 우리가 목도할 수가 있습니다.

    자유인은 장성과 발전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솔직히 우리 민족 자체를 반성해 보세요. 우리 민족이 해방을 받은 후 二十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어마나 모든 방면에 있어서 장성하고 발전하였는가? 정계는 얼마나 성장하였는가?

    경제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문화는 얼마나 진보 되였는가? 사회는 얼마나 발전 되였는가? 우리 남한에 있어서는 온전한 신교 자유가 있는데 이런 정세 아래서 남한의 교회가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물론 이 모든 방면에 다소간 발전과 장성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은 우리가 왜 좀 더 장성하고 좀 더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 가운데 자유를 바로 쓰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고, 자유는 장성과 발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한 이가 적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라고 우리는 솔직히 반성할 수밖에 없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 한국 민족 안에 있는 내재적 능력을 발휘하고 장성하고,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였다 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자유에는 봉사의 책임이 따르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자유가 이기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곧 자유를 가지고 봉사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는 거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얻어서 장성하며 발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장성하고 발전한 것을 가자고 무슨 목적에 쓰려고 합니까? 오직 내 자신의 편리, 내 자신의 향락을 위해서 씁니까?

    혹은 다른 이들을 봉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우방 미국이 오늘날 이처럼 위대한 나라가 된 것은 그들이 약 200년 전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 계속해서 각방면으로 장성하고 발전하였습니다,

    과학 방면, 예술 방면, 철학 방면, 종교 방면, 모든 방면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미국 사람들은 자기가 발전시킨 것을 가지고 세계의 다른 민족, 다른 나라들을 봉사하기에 힘쓴 것입니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에 미국의 후원으로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여러 나라가 독립을 하였습니다. 세계 二차대전 후에도 미국의 후원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많은 나라가 독립을 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만 후원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각 방면으로 그들을 위해서 봉사한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의 위대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가 오늘날까지 축복을 받는 면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물론 온전한 신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 자유를 바로 써서 각 교회가 발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발전된 다음에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세계적으로 봉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목사들을 보내고, 교사들을 보내고, 의사들을 보내고, 사회사업가를 보내고, 각방면의 사람들을 파송(派送)해서 지금도 온 세계를 봉사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미국의 교회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우리가 二十년 동안 해방의 생활을 했는데, 자유의 생활을 했는데 우리가 얼마나 장성했으며, 우리가 어마나 발전했으며,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가 무슨 봉사한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이번 남미를 다녀오는 길에 피츠버그에서 한 주일 머물면서 어떤 조그마한 상점에 가 보니 거기 여러 샤츠를 파는데 한국에서 만든 샤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아주 마음이 기뻐요. 왜 그런고 하니 이제는 한국 사람도 물품을 세계 시장에 내보낸다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들으니까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이 140여 가지란 말도 들었습니다. 미국 뿐 아니고 다른 나라에도 이제는 한국에서 만든 물품이 나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발전이요, 어떤 의미에서 혹 봉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간에도 우리 교회 의사 한 분이 말레이시아에 갔지마는, 작년과 금년에 말레이시아와 아프리카에 우리 한국 의사가 여러 분 나갔습니다.

    이것도 우리 한국 의학계를 위해서 경하할 만한 일이고, 말하자면 우리의 세계적 봉사라고 볼 수 잇는 것입니다. 그러나 별로 봉사가 많지는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한국에 있는 여러 단체 가운데 해방 이후에 적은 규모지만 제일 먼저 세계적 봉사에 나선 단체는 우리 교회입니다. 우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제일 먼저 벌써 10년 전에 태국에 선교사를 보내고 목사와 의사를 보내고 복음을 전파하는 중에 있습니다.

    三, 四년 전부터 감리교회에서 파키스탄에 三, 四인의 선교사를 보내서 전도를 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월급을 거기 가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여비를 주고 우리가 월급을 주어서 완전히 봉사하기 위하여 그곳에 보낸 것입니다.

    여러분, 외국 선교가 적은 것 같지마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민족이 세계 민족의 반열에 같이 앉아서 부끄럽지 아니한 민족이 되려고 할 것이면 우리가 이 자유의 기회를 바로 사용하고 우리가 발전하고 장성해서 우리 나라자체가 잘 살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온 세계를 봉사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사회는 자유 사회로서 기업의 자유가 잇습니다. 그러므로 역량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성공할 기회도 잇습니다. 성공한 이들도 잇는 줄 압니다. 그 성공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합니까? 내 집이나 잘 짓고 나의 향락이나 위하여 사용합니까?

    혹은 남을 위해서 봉사를 합니까? 사실 해방 이후에 한국의 여성이 온전히 해방된 줄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기회나 사업하는 기회나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게 별로 다름이 없이 기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리 한국의 여성들이 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합니까? 공부한 그 지식, 배운 그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합니까? 그저 내 자신, 내 자신의 향락, 내 자신의 사치를 위해서만 씁니까? 마음대로 다닐 자유가 있으니 댄스 홀이나 다니지는 않습니까? 자유에는 봉사가 따르는 것입니다.

    개인도 이 진리를 기억해야 하고 교회도 기억해야 하고, 민족과 국가도 이 진리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봉사의 책임을 잊어버리고 자유를 이기적 목적으로 각각 쓰게 되면 그 자유 사회는 자연히 싸움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제가 전에도 얘기를 하였지만 이번에 미국을 다시 지내오면서 사실 제 중심에 미국 사회의 위험 신호를 느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 민족들이 지금까지 과연 발전도 하였고, 봉사도 잘 하였지마는 오늘날에 일어나는 현상을 볼 것이면 그 사회 가운데 이 자유를 점점 이기적 목적으로 쓰려고 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아니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현상은 도처에 스트라익이 너무 많습니다. 동맹파업이 너무 많습니다. 다섯 비행기 회사가 동맹파업을 하여 아직까지 해결 안 됐다고 합니다. 과자 만드는 회사에서도 동맹파업을 했습니다.

    피츠버그의 조그만 마을에서는 쓰레기 모아 가는 사람들이 동맹파업을 했습니다. 시카고에서는 병원의 간호원들이 동맹파업을 했습니다. 환자들을 다 어떻게 합니까? 전사회의 복리를 생각하는 것보다도 내 자신, 내가 속하는 어떤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를 쓰는 이런 계층이 점점 많아지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를 가만히 볼 것이면 법률도 점점 높아갑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사회에 자유를 잘못 쓰는 사람의 수효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에 멸망할까 조심하라. 우리가 이기적 목적으로 각각 쓰게 되면 사회는 물고 먹는 싸움밖에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서 또 분명하게 배울 수 잇는 것입니다. 우리는 헬라 문화가 고도로 발전되었을 때의 헬라 사회를 잘 공부했습니다. 그때의 헬라 도에는 여러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자유 국가들이 많았습니다.

    이 자유 국가가 다 독립했습니다. 자유로이 연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유로 발표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유로 선의의 경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이 사회에서 과학이 발전되고 각방면에 찬란한 헬라 문화가 형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역사를 보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시지요? 이 작은 도시 나라들을 중심으로 해서 점점 이 자유를 자기 나라만 위해서 쓰는 정신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 자유나라 가운데 피차에 충돌이 되고 서로간에 싸움이 일게 되었습니다.

    소위 페로포네소스 전쟁이라는 전쟁이 이 적은 반도에서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헬라 문화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동양사를 읽을 때도 그런 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여러분이 기억하시는지요? 주나라 말기에 제국의 정부가 약해지니까 여러 지구의 성 전부가 독립을 했습니다. 여섯 나라, 일곱 나라, 여덟 나라, 열 아문 나라로 다 독립해서 다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독립국이 되어서는 각각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고 어떤 정치가가 여기서 등용되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있고 여기서 말못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말할 수도 있고 이렇게 되어 여러 독립국이 있게 되니 오히려 중원에 자유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문화가 발전되었습니다. 철인이 일어나고 문인이 일어나고 성인들도 일어났습니다. 노자 같은 이, 공자 같은 이도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일어난 성현입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 압니까? 이 국가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진나라에게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독재 정권이 들어올 때에 문화는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자유가 잇는 곳에 성장과 발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이기적 목적으로 쓰려는 정신이 들어올 때에 결국 잘못하면 망합니다. 자유인은 봉사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유를 가지고 피차에 봉사해서 종노릇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자유는 수호되어야 합니다.
    자유인은 언제나 자유 수호의 책임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五장 一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 캐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물론 이 말씀은 신령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다시 죄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정욕의 종이 되지 말아라. 다시 술의 종이 되지 말아라. 다시 수전노가 되지 말아라. 돈의 종이 되지 말아라. 그러나 이 권면은 다른 방면의 자유에도 꼭 같은 권면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든지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와 신교의 자유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이 자유를 수호하려고 하는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자유를 빼앗는 원수는 좌우 편에 다 잇습니다. 물론 좌편에 잇는 원수를 우리가 압니다. 공산주의 독재사상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편에도 있습니다. 우익 독재도 결국은 자유를 빼앗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 경계하고 여기 좌우 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우리 자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굳은 결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아시아, 한 걸음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공산 세력이올시다.

    이 세력은 일찍이 六․二五사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사변 때문에 아직까지 이 땅에 삼팔선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세력은 지금 월남에서 터져서 지금 아시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잇는 것입니다. 오늘날이야말로 세계의 모든 자유민이 결합해서 이 공산 세력을 극복하고 자유를 확보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군 파월(派越)의 깊은 뜻이 잇는 줄 생각합니다. 바로 어제 저녁 신문에서 월남에서 싸우는 우리 국군의 어느 대위가 수류탄(手榴彈)이 잘못 던져지는 것을 보고 자기가 엎드려져서 자기는 산화되고 자기 부하는 건졌다고 하는 장렬한 기사를 우리가 다 읽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젊은 사람들이 그 땅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배후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우리가 이 해방기념주일을 당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도와야 될 줄 압니다. 자유는 수호되어야 합니다.

    이 해방기념주일에 자유와 그 책임을 우리가 깊이 기억하십시다. 첫째는 자유를 바로 쓸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둘째로 자유를 얻은 우리는 힘써 공부하고 노력해서 장성하고 발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셋째는 이것을 가지고 국내 국외에서 봉사할 책임이 있습니다. 넷째는 자유를 수호할 책임이 우리에게 다같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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