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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칠도, 선교 칠도, 신앙 오도, 복음 삼도
    2023-07-03 00:05:27   read : 479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김명혁 목사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五道)의 귀중한 삶

    장소: 광주 보배교회
    일시: 2023. 7. 2
    본문: 막 1:14,15, 요 14:1-3, 롬 12:1,2

    ▲김명혁 목사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크투 DB

    저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인생 칠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신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신앙 오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복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복음 삼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선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선교 칠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 즉 신앙 생활을 올바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먼저 전파하신 말씀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성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의롭다 함도 영생도 천국도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성자 예수님께서는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고 히브리서는 지적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보배 교회”가 어떤 교회와 삶 인지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회개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회개”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시면서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는 말씀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파한 말씀도 “회개하라”(행 2:38)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교회는 “회개” 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회개”는 “신앙 생활”의 입문이고 과정이고 출구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것인데 “회개”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의롭다 함도 영생도 천국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회개”는 한 번 크게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을 “참회”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와 “참회”를 계속해서 가장 많이 가장 처절하게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밤낮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셨나이다”(시 51:5).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시 51:9).

    사도 바울도 다윗의 뒤를 이어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평생토록 계속해서 드렸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결국 다윗과 사도 바울의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삶을 본 받아 성 어거스틴과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도 “회개”와 “참회”의 삶을 평생 살면서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저는 6. 25 피난 시절 대구에서 중학생 때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회개”의 중요성을 가슴과 몸에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 갑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는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는데 새벽기도회 때마다 매일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라는 찬송을 부르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김치선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회개”의 중요성을 평생토록 몸과 가슴에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던 산 기도와 부흥회에 거의 모두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곤 했는데 대구 주암산 기도회까지 참석해서 울면서 회개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올바른 “믿음의 본이 되는 삶” 이란 “회개”하고 “참회” 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회개”와 “참회”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위선적인 믿음이고 거짓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회개”와 “참회”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시 51:17).

    자기 주장과 고집이 센 사람은 “회개”와 “참회”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너무 성공해서 유명해진 사람도 “회개”와 “참회”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의인 의식을 지닌 사람은 “회개”와 “참회”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근심 걱정 원망 불평이 많은 사람도 “회개”와 “참회”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날마다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는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올바로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2. 예배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23).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주일 날 부활하시고 주일 날 아침과 저녁에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면서 주일 성수의 예배를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죄인들이 제일 먼저 우선적으로 하여야 할 일이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사도 바울은 주일 날 종일 밤 늦게까지 예배 드리면서 설교하고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행 20장).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다 쏟아서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데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출애굽의 목적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에 있다고 출 3장부터 10장까지 열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사실 기독교는 “제사”와 “예배”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셨고, 신약 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종일 “예배” 드리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안식 후 첫날인 주일 날 아침부터 밤까지 드린 예배의 모습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0:7-11). 청교도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면서 강조한 것은 “주일 성수”와 “예배” 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 성수”와 “예배”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 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여행도 매식도 금하고 오직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점점 주일 성수의 영적인 유산을 모두 저버리고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가 너무 많은데 이것은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주일 예배를 감소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올바른 “신앙 생활” 이란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3. 사랑과 섬김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지니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함께 “사랑과 섬김”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용서)할 찌니라”(마 18:22).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2:7).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성자 예수님께서는 또한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삶이 바로 주님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라고 강조하면서 천국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사도 바울도 믿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함께 “사랑과 섬김”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

    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함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 3:12-14).

    요사이 한국교회가 “회개”와 “예배”와 함께 “사랑과 섬김”을 소홀히 하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회개”와 “예배”와 함께 “사랑과 섬김”에 전력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면서 기뻐하시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모험심과 담력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6-58).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사 41:10).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 5: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 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담대하게” 달려가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갈 것을 잘 알면서도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단 6:10). 그리고 “담력”을 지니고 사자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게 붙잡혀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옥 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사도 바울은 나중에 로마 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지만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지니는 대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담대하게” 막 뚫고 나아가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 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담대하게 쓴 빌립보서에서 “기쁨” 이란 고백을 17번이나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담대하게” 달려가면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믿음”을 몸에 지니고 살면서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여유로움을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달려가면서” 한 평생을 즐겁고 기쁘고 담대하고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한으로 온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이별의 슬픔을 몸에 지니고 살았지만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았고 그리고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마음껏 했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여러 신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면서 살았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목회와 교수와 선교 사역에 전력을 다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 몇 년 뒤에 주일 성수를 방해하는 박정희 군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이튿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고 권면하고 충고한 일과 잠깐 쉬는 시간에 설교 준비까지 한 일은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2월 굳게 닫힌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캄캄한 밤에 뛰어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아프간 무라취드에 세운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일은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여유로움과 함께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담대하게 달려가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고 또 베풀어 주셔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어떤 일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당당함”과 “여유로움”과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5. 천국 소망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쁘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첫째 복과 여덟 번째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라는 복이었고 팔 복의 결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1,2).

    성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요 17:1).

    사도 바울의 마음과 눈은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사도 요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계 5: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계 10: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계 12:1).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계 18: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 19: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 2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 21:1).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목표는 새 하늘과 천국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세상의 본향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1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밤의 한 경점”(시 90:4) 같고 “아침에 돋는 풀”(사 90:5) 같고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게”(약 4:14) 같다고 성경 말씀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늘 집을 바라보고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라나타”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라나타”라는 말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시면서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시면서 한 평생을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사셨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시곤 하셨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12번이나 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부르시면서 하늘을 쳐다보시곤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천국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유행에 정신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천국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제가 유치원 아이일 때 신의주 제이 교회에 다녔는데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알타반 박사에 대한 연국을 했는데 저는 그 연극을 보면서 천국을 사모하고 또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 이란 제목의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쏟으면서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 듯이 나도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님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붙잡고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싶다” 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두 손과 두 팔과 온 몸을 안겨드리면서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길 충성의 길 순교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을 속삭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프게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품에 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과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부족한 전도와 목회와 선교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된 수 많은 성도들! 부족한 나에게 눈물과 기도와 사랑을 쏟아 바친 수 많은 성도들! 강변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구 곳 곳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 집으로 올라와서 다시 만나게 된 수 많은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 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2008년 8월 31일 밤).

    이것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영생도 의롭다 함도 천국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들의 삶과 운명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라고 주님께서 탄식을 하셨습니다(눅 18: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 이란 어떤 삶입니까? 첫째로, “회개” 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둘째로,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셋째로,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지니고 “사랑과 섬김”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넷째로,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함께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담대하게” 막 뚫고 나아가면서 멋지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다섯째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쁘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은 우리들이 스스로 지니는 것이고 우리들이 지키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복잡한 사람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단순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자 예수님에게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눅 17:5).

    우리도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여, 우리들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라고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믿음”을 더하시고 또 더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시는 가장 좋은 선물인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날마다 “회개” 하면서, 날마다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날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날마다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함께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그리고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신앙 오도의 귀중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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