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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2-4/ 좌절, 축복인가, 절망인가? /조용기 목사 2014-09-12 10:29:16 오늘 전 여러분과 '좌절, 축복인가 절망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은 머리가 태어날 때부터 강한 아집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대로 살고, 자기 생각대로 살고 자기 욕심대로 살겠다는 그 아집의 포로가 되어서 태어났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집, 자아가 바로 우상이 되어서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된 이후에도 인간은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부리고 이용하려고만 하지, 정말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바쳐서 하나님 섬기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이런 신앙의 자세에 들어오는 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입니다. 이 자아라는 우상이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하게 될 때, 그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는 하늘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자아가 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깊은 좌절과 시련을 체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애를 알아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대표로 세워 놓으시며, 표면으로 우리에게 언제나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크게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75세 때, 하나님께서 갈데아 우르에서 나타나서 불러내실 때, 그에게 찬란한 희망을 주었습니다. 넘치는 꿈을 주었습니다. 성경 창세기 12장 1-3절로 보면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 라고 말씀했었습니다. 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마음에 흥분이 되고 불타올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자기 아내의 손을 잡고, 조카를 데리고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일로 가나안 땅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나안 땅에 이르자 크게 그를 좌절시킨 사건이 있은 것입니다. 그가 흥분되고 소망이 넘쳐서 왔는데 가나안 땅에는 그를 흥분시키고 소망이 넘치는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처절한 기근이 다가와서 산천 초목이 다 불타버리고, 물은 없고, 짐승들은 먹을 것이 없어 다 굶주려 죽고, 자기가 같이 데려 온 일가 친척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헤어지고, 밥을 달라고 우는 조카의 손을 잡고 아브라함은 별도리 없이 그는 하나님이 명하지도 아니한 애굽 땅을 향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받은 그 거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왔지마는, 오자말자 가나안 땅에서 큰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그가 갈대아 우르 땅과 하란에서 얻은 재산 다 잃어 버렸습니다. 종들도 다 떠나갔습니다. 이제는 자기와 자기 처와 조카의 손만 잡고 그는 애굽땅에 내려가면서 얼마나 마음에 궁급했던지, 말하기를 "여보 애굽 땅에 내려가면 당신이 너무 아름다운지라 애굽 사람이 나를 쳐죽이고 당신을 빼앗을 것이니, 오늘 이 시간부터는 당신이 나를 여보라 하지 말고, 남편이라 하지 말고, 나를 오빠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럼 당신 덕분에 내가 목숨을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 이것이 아브라함이 거한 정말 막다른 좌절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도착하자 말자 아닌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라의 그 미모를 보고 전부다 감탄했었습니다. 그 소문이 바로 왕에게 들린지라 애굽의 바로 왕이 당장 아브라함과 그 처를 궁중에 불러들였는데, 누구냐고 물으니깐 여동생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오빠라고 말합니다. 얼씨구나 좋다고 애굽의 바로 왕이 사래를 취해서 아내로 삼아 버립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고향도 산천도 다 잃어버리고, 재산도 다 잃어버리고, 이제 애굽에 내려와서 아내조차 바로 왕에게 시집보내 버리고, 처참한 좌절 가운데 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마 사람이 좌절한다 좌절한다 해도 이 이상 더 좌절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누라 시집 보내고 사는 처지가 되면 좌절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크게 깨어지고 아브라함 자기를 그를 의지하던 모든 자만심도 버렸었습니다. 모든 자존심도 박살이 났습니다. 자아의 아집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는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마치 그릇을 들고 땅에 던져서 유리 그릇이 박살이 난 것처럼 그는 하나님 앞에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주님 뜻대로만 살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셔서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선 아브라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해 주셔서 그래서 바로에게 큰 형벌을 내리고 그 아내를 다시 찾게 해 주고 그리고 많은 종과 그 재물을 얻어서 그는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금 돌아올 때 아브라함은 완전히 변화된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옛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깨어지고 항복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섰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제 큰 일을 역사하기 위해서 그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17절로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라함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너희가 마음속에 바라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의 모든 땅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나이 85세 되어서, 자식이 없어 그는 고민하고 있을 때 또 다시 하나님께서는 그를 밤중에 불러내어서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리게 했습니다. 또 다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그에게 자손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로 6절로 보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매일 같이 바라봄의 법칙을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해 줄 것을 믿고서 지냈었습니다. 14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그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바꾸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그 아내의 이름은 사래에서 사라 '여주 '이름을 바꾸어서 바라봄의 법칙으로 마음속에 믿은 것을 입으로 강력하게 시인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말씀을 입으로 강력하고 시인하고 있을 때에 백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이삭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는 좌절하여 깨어져서 자기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된 아브라함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믿음을 얻게 하시고, 그 믿음을 강하게 입술로 시인함을 통해서 그의 꿈을 이루어 주시고 자손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고, 그는 아들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아 진실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은 믿음의 조상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좌절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가 자기 중심으로 서있을 때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이루어주지 않았었습니다. 그 아들 우리 이삭을 보십시다. 이삭이 이제 자라서 아버지의 손심부름을 다할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이삭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너무 귀하고 너무 아름다운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 아브라함아" "예" "너희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려가서 잡아서 나에게 불로 태워 제물로 드려라"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은 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집에서 서있지 않습니다. 두말하지 않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아들을 데리고 장작과 칼을 가지고 불을 준비해서 들고,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을 갔습니다. 그는 산정에 올라갈 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여기에 장작도 내가 걸머지고, 여기에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제물로 드릴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버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 아들을 제물로 지금 데리고 갑니다. 그 때 아버지가 말하기를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 산정에 올라가서 그 아들이 장작을 내려놓고 칼과 불을 내려놓고 , 아버지와 함께 제단을 쌓고, 장작을 그 위에 펼쳐놓고, 그 다음 아버지를 쳐다보니까 아버지가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내려다보더니만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합니다. "이삭아. 하나님이 너를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오늘 잡아야겠다. 네 손발을 내어주면 내가 너를 묶어서 장작 위에 얹어놓고 너를 칼로 죽여서 각을 떠서 불을 질러 제물로 드려야 되겠다. " 그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 이삭의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모시고 제사 드리러 왔는데 이제 아버지가 자기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겠다니 이게 왠 청천벽력입니까? 거기에서 마음속에 일어난 이삭의 갈등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 제일 큰 충동은 살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달아나야 되겠다.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종해야 되겠다. 그러한 심정이 안 생겨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마음의 갈등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느꼈는데 이삭이야 그 마음의 갈등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순식간에 이삭의 얼굴은 새빨갛게 상기되었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떠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버지 정말 올바른 계시 받았어요?" "올바른 계시를 받았다. " "정말 날 잡아 죽여야 돼요?" "그렇다" 이삭의 충동은 아버지를 밀어 제치고 그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길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거기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매일같이 아버지와 함께 예배 드리던 그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아버지가 대화하던 그 하나님. 아버지의 그 신실한 신앙이 잘못될 수 없다는 그것,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음속에 새로운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죽자! 내가 하나님 버리고 살아서 뭐하겠는가. 내 중심으로 살아서 뭐하겠는가. 내가 제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면 내가 죽어야지. 아버지! 내 수족을 묻으십시오. 수족을 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삭의 수족을 묻어서 장작에 얹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칼을 뽑았었습니다. 눈을 멀뚱멀뚱하게 떠서 아버지를 쳐다보는 그 아들을 향해서 그는 칼을 들어서 내리치고 달려들 때, 하늘에서 천사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칼을 중지하라. 네가 네 외독자 사랑하는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게 주었으니, 참으로 날 사랑하는 줄 알겠다. 이제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번창하며 번창케 하리라. 거기에서 바로 이삭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구사일생이 아니라 그냥 죽은 겁니다. 그러나 죽음 가운데서 살아서 거기에서 이삭은 아집이 다 깨어졌습니다. 이제는 자기 중심은 없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만 따라갑니다. 하나님 제단에 이미 죽어서 그날 일어난 제물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서 야훼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 야훼께서 이레가 되어 주셔서 이삭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이제는 책임지고 준비하십니다. 그 즉시로 양 한 마리가 나무에 얽혀 있는 것을 보고 잡아다가 이삭 대신에 제물을 드리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해서 예비하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중심으로 선 이삭을 위해서 일생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는 조금도 수고하지 아니하고 이삭의 사촌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얼마나 착하고 좋은 아내를 맞았던지 이삭은 상상할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아무런 수고없이 아브라함이 일생에 모은 그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상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따라다니면서 그에게 복을 주시는데 창세기 26장 12-15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파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깨어져서 하나님 중심으로 선 이삭을 위해서 모든 삶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는 앉으나 서나, 나아가나 물러가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에게 축복의 근원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야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금과 은이 풍성했고, 아브라함도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 이삭도 성경에 보는 것 같이 하나님 성령께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번창하고 부유한 말을 썼습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이상의 말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기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우리의 아집이 깨어지고 주님 그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본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아집을 쓰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탐욕으로 일을 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수대교도 무너지고, 백화점도 무너지지. 하나님 중심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찌 이러한 화가 임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아무리 집을 세워 놓아도 그 집에 들어가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 아무리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우회해서 적군이 들어와서 성을 점령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며, 저녁에 늦게 눕고 수고와 고생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잠을 주시고, 잠이라는 것은 평안해야 잠이 오지. 걱정, 근심이 있는데 잠이 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레가 되어 주셔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뒤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뒤 발꿈치를 잡았다. 빼앗았다. 사기꾼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름을 사기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대를 잇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음은 있었지만 그러나 육신적인 신자였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겠다는 오늘날 소위 말하는 육신에 속하는 신자였었습니다. 그래서 형이 장자가 되고 자기가 차자가 된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하루는 형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와서 배가 고픈데 야곱이 죽을 쑤고 있으니깐 형이 "그 죽 한 그릇 다오" 그러자 야곱은 툭 형을 쳐다보고 회심의 미소를 띄우고 하는 말이 " 형! 형이 나보다 불과 수 분 앞서서 태어났기 때문에 형이 됐지 않느냐. 장자가 되었지. 불공평해. 내 팥죽 한 그릇 줄 테니깐 장자의 명분을 내게 줘" 형이 가만히 생각하니깐 뭐 배가 고파 죽겠는데 장자고 차자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그래 좋다 장자 명분 너에게 주겠다. 그러므로 빨리 죽이나 다오" "형 맹세해 " 그러니깐 에서가 " 난 장자의 명분을 자네 야곱에게 주노라 " 그러고는 팥죽 한 그릇 얻어먹었습니다. 그 당시 옛날에 모든 장자의 명분은 아버지의 모든 축복을 상속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팥죽 한 그릇으로 상속권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때가 와서 세상을 뜨기 전에 장자에게 크게 축복하고 상속을 축복으로 줄텐데 그 때 아버지가 에서를 불러 가지고서 짐승을 잡아 좋은 별미를 만들어오너라. 내가 마음껏 먹고 너를 축복하리라. 그런데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당장 가서 야곱에게 그 사실을 말했었습니다. 에서는 짐승을 잘 잡아서 요리를 잘해오니 아버지가 좋아했지만, 야곱은 부엌에서 불때는데 어머니를 도와주고 요리 솜씨가 좋으니깐 어머니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버지와 친한 것보다는 어머니와 친해야 살아나요. 아버지가 에서에게 분명히 말했는데 그 어머니 리브가가 그 말을 듣고 야곱에게 와서 에서 옷을 입히고 에서처럼 온 몸에 양털로써 털을 붙여 가지고서 어머니가 또 요리를 했으니 아버지 입맛을 아니 얼마나 잘했습니까? 짐승은 집에 있는 짐승을 잡아 요리해서 미리 가서 아버지 내가 에서입니다. 아버지 대접하고 모든 장자의 축복을 다 받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에서가 와서 그 사실을 발견하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울면서 야곱을 죽이려고 하니깐 그 어머니가 자기의 친정으로 야곱을 빼돌려서 도망을 보냈습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크게 좌절을 느꼈습니다. 복을 받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화를 당해 가지고서 형이 죽이려고 하매, 어머니가 보내 주어서 외아저씨 댁으로 도망을 치고, 가다가 들에서 돌 베개하고 누워 자다가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그 돌 베개 위에 아침에 깨어서 기름을 붓고 하나님 내가 지금 외아저씨 댁으로 도망을 가는데 내가 가는 곳에 내가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시면 이곳에 돌기둥에 기름 부은 이 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겠나이다. 전부 십일조를 바치겠나이다. 그는 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야곱은 큰 좌절감을 가지고 사는데 외아저씨가 또 야곱을 속입니다. 그는 외아저씨의 집에 가서 사는데 외아저씨의 딸이.. 외사촌 형제죠. 그 라헬이 너무너무 예뻐서 외아저씨께 말했습니다. "아저씨 라헬을 내게 주세요" " 그래 7년 동안 무보수로 일해라" 그래서 7년 동안 뼈가 빠지도록 외아저씨를 위해서 일을 하는데 성경에 보니깐 라헬을 사랑하는 지라 7년을 하루같이 보냈다고 말했었습니다. 사랑을 하면 세월 지나는 것도 몰라요. 사랑을 안 해야 하루하루가 지겹지. 사랑을 하면 세월 가는 걸 몰라요. 그래서 7년만에 "이제는 7년이 되었으니깐 내 아내를 내게 주시옵소서." 하니깐 "그래 좋다" 하고서 잔치를 베풀고 첫날을 치루고 보니깐 자기가 원한 라헬이 아니라 자기가 원치 아니하고 시력이 나쁜 언니 레아를 떡 밤에 넣어 놨습니다. 외아저씨의 계교에 또 빠져서 크게 좌절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야곱이 외아저씨 앞에 와서 고함고함치고 "외아저씨 나를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동생을 내가 원했는데 왜 언니를 내 방에 넣어가지고서 내 신세 족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외아저씨 하는 말이 "앞으로 7년 또 무보수로 일해라. 그러면 또 라헬을 네게 주겠다." 그래서 또 7년 14년 뼈가 저리게 일을 해서 아내를 하나만 얻은 것이 아니라 둘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하루만에 당장 쉽게 장가가는데 야곱은 장가 한 번 가는데 14년 동안 중노동을 했습니다. 얼마나 큰 좌절입니다. 그리고 외아저씨 집에서 6년 동안 일을 했는데 외아저씨가 사사건건 속입니다. 월급은 얼마 주겠다고 했다가 또 속이고 또 얼마 주겠다고 했다가 또 속이고, 6년 동안 일했는데 아무 것도 모아 놓은 게 없이 빈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처지는 절망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많은 짐승을 선물로 얻은 그는 야간도주를 해서 외아저씨 집을 떠나 그는 일로 고향을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고향을 따라 오면서 사람을 보내서 형님에게 동생이 돌아온다고 말하니깐 형이 당장 그 동안에 칼을 갈고 있다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동생을 잡으러 출발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 야곱은 오금이 막 절여지고, 간장이 녹고, 정신이 막 아찔하고, 온 몸이 피가 다 밑으로 쏟아지고 어지럼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짐승을 두 떼로 나누어서 먼저 얍복 강을 넘게 하시고, 온 처자를 다 얍복 강을 넘게 하고, 그러한 자기는 얍복 강 위쪽 편에 쪼그리고 앉아있습니다. 처자가 말합니다. "아빠 왜 안건너와? 함께 가요. 함께 가요" "난 여기에 볼 일이 있다. 무슨 볼 일이냐? 너가 형님에게 얻어맞으면 나는 36계 놓는다." 그는 꾀가 많아서 처자까지 자기 목숨하고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형이 정말 자기를 죽일 의사가 있으면 자기 처자까지 쳐죽일 거다. 그러면 자기는 튼튼한 두 다리를 의지해서 도망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는 하나님을 믿으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잡힌 아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혼자 얍복 나룻터에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예수님일 것입니다. 나타나서 야곱을 부여잡았습니다. "건너가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라. 그러므로 처자가 있는 곳으로 건너가라." "안건너가요." "건너가라" "안건너가요" "건너가라니깐" "나는 처자가 죽어도 나는 살래요 안건너갈래요." 그래서 씨름이 붙은 것입니다. 아무런 할 일없이 달밤에 병신 체조한다고 하는 것처럼 씨름한다고 한 줄 알아요? 예수는 와서 처자들에게 건너가라고 하고 야곱은 안가겠다고 하고 그래서 밀고 땡기고 밤새도록 씨름을 했는데 얼마나 고집이 센지 예수님 조차 못 이겼었습니다. 새벽이 되니깐 이제 주님께서 안되어서 손을 들어서 야곱의 다리를 때려버렸었습니다. 왜? 그 튼튼한 두 다리 이용해서 도망치려고 하니깐 다리를 때려 버리니까 그가 쓰러져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야곱이 보니 도망칠 꿈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형이 400인 군대를 가져오면 이 절름발이가 되어서 어디로 도망칩니까? 그래서 그 천사를 붙잡고 "나를 복 주시옵소서. 내게 복주지 아니하면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이옵나이다." "이제부터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긴 자! 하나님의 왕자라고 하라." "당신이 누굽니까? 왜 내 이름을 묻느냐?" 그래서 그는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일어나니깐 다리가 절뚝절뚝 합니다. 그는 이제 깨어졌습니다.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아집이 살아지고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자. 처자가 있는 곳을 향해서 얍복 나룻터를 그는 절뚝 절뚝 그는 건너갑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깐 그가 얍복 나룻터를 건너갈 때 해가 떠올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31장에 "저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저가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가 깨어져서 절면서 갈 때 비로써 어둡고 깜깜한 세월은 지나고 그 인생에 태양이 떠오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깨어져야 태양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름발이가 되었어도 내 인생의 아집이 절름발이가 되면 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로 서면 언제나 어두운 밤에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절뚝거리고 나오니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질풍같이 동생을 죽이려고 나오는 형이 그만 그 동생을 보자 마음이 달라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에서 뛰어내려서 그 동생을 끌어안고 야 이놈아 형을 속이고 도망쳐서 20년 만에 돌아오는 너 신세가 절름발이가 돼서 돌아오느냐. 이놈아 너를 단칼에 베려고 했지만 너무 신세가 처량하니 내 너를 용서한다. 이제 내가 거느린 군대가 너를 호위할 테니깐 내 집으로, 나 있는 곳으로 오라. 그를 죽이려 온 군대가 호위군대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태양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사야 41장 14절로 15절에 말한 것처럼 깨어져 벧엘의 하나님께 나아간 이 야곱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했었습니까?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여러분! 지렁이가 뭐합니까? 꿈틀 꿈틀. 우리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는데 지렁이가 꿈틀 거려봤자 별 볼 일 있어요? 이빨도 없고 저항할 힘도 없습니다. 완전히 지렁이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너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말한 것입니다. 지렁이가 되면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옵시고, 오히려 그 지렁이를 이빨이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인본주의에 서서 자기의 수단과 방법과 능력을 의지해서 내가! 내가! 하고 나갈 때는 그는 버림받은 사람이 되고 말지만 오히려 하나님 앞에 좌절감을 체험하고 인생의 허물을 깨닫고, 완전히 깨어지고 회개하고 그래서 주님께만 의지하게 될 때는 지렁이를 주님 들어서 이가 날카로운 타작 기계를 만들어서 큰 산과 작은 산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병기로 삼아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동안 크고 작은 좌절이 끊임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좌절을 통해서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가서 그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갈 때, 그때는 하나님이 일어나 주셔서 하나님이 친히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붙들어 주셔서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성령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즉 네가 나를 건지리라. 네가 내 이름으로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환난 날에 내가 너와 함께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좌절에서 깨어져 하나님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중심으로 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전지 전능한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 속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좌절감, 실망과 낙심되는 일들 이런 일들이 우리의 고집을 깨뜨리고, 아집을 깨뜨리고, 인간 중심의 삶을 깨뜨리고 하나님 그 발 앞에 엎드려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주님 중심으로 서게 되고, 하나님 그 발 앞에 엎드리게 되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 만 섬기고 따라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줌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이럴 때 좌절은 우리에게 축복이 되지만, 아버지 하나님 좌절에도 깨어지지 아니하고 아집이 서고, 오히려 낙심하고 방탕하게 되면 이것은 절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개인이나 민족적인 좌절감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회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번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조차도 우리 민족들이 가슴을 치고 회개하고, 인간의 교만을 다 내버리고 인간의 자만을 다 내버리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들어오는 기회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눈물의 골짜기를 많은 소망의 샘이 되게 만들어 주실 줄 믿사옵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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