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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10/ 짐을 서로 지라 / 한경직 목사 2014-08-27 09:54:24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장 2절입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같은 장 5절입니다. 길을 갈 때에 우리가 흔히 짐을 지고 갑니다. 인생행로에도 우리가 다 짐이 있습니다. 이 짐을 지는 데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오늘 아침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가르칩니다. 우리 인간은 각각 자기가 꼭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군인은 누구나 배낭을 지고 행진하는 것처럼 인간도 누구나 자기가 지고 갈 짐이 있습니다. 곧 각 사람은 자기의 책임 혹은 의무가 있습니다. 국민은 국민으로서 꼭 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남자이면 병역의 의무입니다. 또 누구나 납세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교인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또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맡았으면 그 직분을 맡은 사람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이면 부모의 책임이 있고, 자녀이면 자녀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짐은 누구나 반드시 자기가 져야 합니다. 이러한 짐을 남에게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남한에서 기아(棄兒), 곧 버림을 받는 어린애기의 수가 매일 평균 19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그 책임을 저버리는 실례입니다. 어떤 자녀는 자기의 부모를 양로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녀로서의 마땅히 질 짐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선 내 책임을 내가 질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사도 바울과 같이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일생을 불구의 몸으로 혹은 허약한 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러한 짐도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가시를 없이 하여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였으나 그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그 짐을 잘 질 수 있게 하실 뿐더러, 오히려 그 가시로 말미암아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와 같은 짐을 진 이가 있으면 기도해서 사도 바울이 받은 은혜를 우리도 받아야 하겠습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십자가 각기 있으니 내게도 있도다 내 몫의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라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당 가겠네” 우리도 이렇게 찬송하면서 내가 질 짐을 잘 지고 용감히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짐을 지는 데 대한 성경의 첫째 교훈입니다. 둘째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권면합니다. 서로 질 짐이 또한 있습니다. 내 짐뿐 아니고 남의 짐도 질 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짐을 져 줄 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8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항상 눌리는 일 곧 교회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약한 이의 짐, 실족하는 이의 짐도 지고 애타한 것입니다. 사실 서로 짐을 지라는 이 권면을 하기 전에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 6장 첫절에도 그는 기록하기를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곧 영적으로 서로 짐을 져야 한다고 권합니다. 만일 어떤 믿던 친구가 그만 시험에 빠져서 죄를 범하였으면 그를 비난하기 전에 정죄하기 전에 그를 온유한 마음으로 권면해서 그 죄에서 다시 벗어나 회복하도록 바로잡도록 힘을 쓰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곧 영적으로 서로 짐을 지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청년 4, 5인이 강에 나가서 목욕을 하다가 그 중에 하나가 그만 실족해서 물에 빠져 들어가면 그 친구들이 같이 힘을 모아 그를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우리 친구 중에 하나가 그만 잘못하여서 죄에 빠졌으면 어떻든지 힘을 모아 그를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친구로서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영적으로 짐을 서로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방면뿐 아니고 모든 방면에 서로 짐을 질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어떤 친구가 그만 사업하다가 실수하여 그 사업에 실패를 하였다고 하면 모두 힘을 합해서 그가 다시 사업을 하고 갈 수 있도록 같이 짐을 지는 정신이 우리 기독교 사업가들 사이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슬픔의 짐도 서로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울라” 우는 자로 함께 울라고 하는 말은 곧 이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형제 중에 누가 슬픈 큰일을 당하였으면 반드시 가서 위로하고 동정하며 그를 격려하여 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독의 짐도 서로 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히 외로운 이들을 자주 돌아보아야 하고 방문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본 교회에서 보린원을 설립하여 고아를 돌아보고, 경로원을 설립하여 고독한 노인을 부양하며, 모자원을 설립하여 외로운 어머니와 아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이 고독의 짐을 서로 지기 위한 목적입니다. 며칠 전에 바로 우리 예배당에서 우리 장로교 신학대학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같은 날 기념관에서 한 청년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본래 고아인데 우리 보린원에서 자라나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과 신학을 마치고 또 그날 결혼까지 해서 좋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 살 수 있는 준비를 다하게 된 것입니다. 이 고아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우리 보린원이 있었고, 또 그 배후에는 그를 매달 재정적으로 후원한 한 미국인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군목인데 이 청년의 신학졸업식과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멀리 한국까지 나왔습니다. 나는 그를 만날 때에 실로 감격하였습니다. 왜? 그는 국경을 넘어서 이 고독의 짐을 서로 진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일을 하는 분은 그분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에서 크게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기독교 선명회(현 월드비전), 또는 아동복리회(현 어린이재단) 등 이런 단체의 배후에는 다 이런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후원자들이 수만 명이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 우리 보린원과 경로원 후원회에 든 분이 몇 분이나 되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은 내가 이런 사업을 후원하는 한 분자(分子)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이 고독의 짐에 참여하는 이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독의 짐뿐이 아니고 혹은 질고도, 혹은 재난, 모든 고통의 짐을 서로 지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짐을 같이 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깊이 동정하며 동정의 말로 위로할 줄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힘이 있는 대로 어깨를 같이하며 실지로 상부상조할 줄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무거운 짐으로 말미암아 쓰러진 인간이 다시 일어나서 같이 인생행로를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축복을 받은 그 의인들이 한 일들을 우리가 생각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라도 그들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에 입혔고, 병들었을 때 와서 도왔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갇혔을 때도 돌본 이들입니다. 곧 이와 같은 고통과 재난의 짐에 동참한 이들입니다. 또는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도 기억합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큰 재난을 당한 이가 그이를 만나서 그 재난의 짐에 동참해서 그를 도와준 분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서로 짐을 지면 자연히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됩니다. 왜? 그리스도가 곧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짐을 다 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예언자는 이사야 53장 4절 이하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을 받은 것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을 입은 것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인간의 질고의 짐, 슬픔의 짐, 죄악의 짐을 다 대신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하신 것도,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몇 번이나 쓰러지면서 골고다의 언덕길을 올라가신 것도,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의 마지막 방울까지 흘리심도 우리의 모든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운명하시기 전에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더러운 죄인의 짐을 대신 지고 일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까지 받은 것입니다. 과연 서로 짐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활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서로 남의 짐을 질 줄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짐을 질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곧 그가 나의 짐을 대신 졌으니 나도 힘 있는 대로 남의 짐을 져야 합니다. 또 이것이 사실 우리가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생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높은 산에 등산하는 이들이 위험한 봉우리를 올라갈 때에는 흔히 줄로 서로 매어 서로 연결하고 올라갑니다. 그 이유는 혹 그 가운데 하나가 실족할지라도 다른 이들이 든든히 서서 그를 떨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까닭입니다. 인생길을 걷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이 서로 짐을 지는 정신이 꼭 필요합니다. 영적으로도 그러하고, 육적으로도 그러하고, 경제적으로도 그러하고, 모든 방면에 서로 짐을 같이 져서 도와야 합니다. 그 목적으로 구역제도도 생긴 것이고, 심방부도 된 것이고, 봉사부도 있는 것이고, 봉사주일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이 봉사주일입니다. 인도의 한 성자 선다 싱이 이런 자기의 체험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한번은 눈으로 쌓인 히말라야의 어떤 산맥 한 고개를 넘어가는데 걸어가다 보니 어떤 분이 너무 추워서 걸음을 걷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그때에 자기보다 앞서 가던 한 분이 있었는데 그는 그를 보고도 그저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 선다 싱은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힘은 없지만 애를 쓰면서 그를 업고 가는 동안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하면서 그 고개를 겨우 거의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의 다 넘어가서 길가에 보니 어떤 한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넘어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앞서 혼자 간 그분이었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이를 업고 간 이는 그도 살고 업힌 이도 살았는데 혼자 가던 이는 그만 죽었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짐을 같이 지면 다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는 서로 짐을 지라고 권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이 원리대로 살지 아니하오리오마는, 특별히 사순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이러한 때에 이 진리를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못되어서 시험에 빠진 이들, 그만 신앙의 길을 잃은 양들을 어떻든지 우리는 이러한 때에 도로 찾도록, 도로 회복시키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보린원이나 경로원이나 모자원이나 이와 같은 봉사기관을 적극 원조하며 할 수만 있으면 후원회에 가입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월남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특별히 전쟁과 환난 중에 있는 나라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되겠고, 앞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돕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디서나 나의 짐을 먼저 내가 알뜰히 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 짐을 져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신 주님이시여, 저희들이 주님의 음성을 이 시간 다시 들었습니다.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우선 내가 질 짐을 꼭 질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의 짐까지 서로 지며 살 수 있는 이 그리스도의 법대로 살 수 있는 이 은총을 우리 하나하나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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