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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13-26/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 한경직 목사 2014-08-26 22:38:5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 5장 22절과 23절을 봉독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하나하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한 나무입니다. 시편 92편 12절 이하의 말씀과 같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궁정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 오순절 주일, 성령이 강림하심을 기념하는 날, 이 성령의 열매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열매를 맺는 비결입니다. 인간선언이니 뭐니, 뭐니 하지만, 인간은 죄인들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우리 인간은 좋은 나무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들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이 들포도나무 가지가 좋은 포도를 맺으려면 참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게, 말하자면 접붙임이 되어야 합니다. 이 경험을 성경의 말씀대로 하면, 회개와 신앙을 통하여 곧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으므로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큰 포도나무의 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포도나무로부터 올라오는 생명의 진액을 받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그 오순절 설교 후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인 큰 포도나무로부터 오는 생명의 진액입니다. 이러한 참 회개와 신앙을 통한 중생의 경험이 있은 후에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영으로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 그 역사가 성경에 표현되었습니다. 성령은 이슬과 같아서 우리 심령을 잘 자라게 하고 새롭게 만듭니다. 성령은 기름과 같아서 우리 심령 속에 신앙의 등불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은 비둘기 같아서 인간의 심령이 순결하고 온유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또한 불과 같아서 인간의 마음을 깨끗게 하고 뜨겁게 합니다. 성령은 또한 숨결과도 같아서 인간에게 생명을 줍니다. 성령은 또한 바람과도 같아서 인간에게 큰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역사하여 인간 심령 깊은 속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인간이 회개와 신앙을 통해서 이러한 성령의 새 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인간의 육체를 근본으로 하는 소욕이 곧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육체를 근본으로 하는 부패한 인간성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곧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이 육체의 소욕, 곧 옛 사람의 소욕과 싸워 이기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점점 거룩하게 화하여지는 이 성화의 계속적인 작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본문에 이 육체의 일들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기록하면서 이것들을 경계하며 싸워 이기라고 권합니다. 그래서 본문 5장 19절 이하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라고 하여 모든 성적으로 타락한 더러운 일들을 지적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이러한 온갖 형태의 우상숭배는 물론 하나님 대신에 물질을 숭배하는 근본적인 탐심을 또한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수’와, ‘마술’ 혹은 ‘요술’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다 사람들을 속이는 온갖 수단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을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 이런 것들은 다 가정이나 사회나 심지어 교회까지도 어지럽게 하는 육체의 모든 일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탐식과 방탕의 절제 없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주의하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육체의 일들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런 육체의 일에 대하여 용감히 싸워 이기라고 권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5장 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우리 신자에게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육의 행실은 죽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렇게 경고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하였습니다. 이래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주님도 산상보훈에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일은 당연히 끊어버려야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옛사람과 용감히 싸우는 동시에 우리가 언제나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릇에 맑은 물이 가득하면 더러운 물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건강한 몸에는 백병이 물러갑니다. 우리의 심령이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육체의 일은 스스로 사라집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전에는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고 원수들 앞에서 비겁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는 오직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물질의 유무를 상통하며 소리를 같이해서 높이 오직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단합하게 되었고, 용감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렇게 내 심령을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간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대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성령에 충만한 생활은, 오직 기도와 회개와 묵상과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읽으며 명상하는 가운데서만 가능한 축복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가? 본문 5장 22절, 23절에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성령의 열매라고, 곧 성령의 열매를 단수로 표시했습니다. 열매들이 아니고, 열매입니다. 곧 성령의 열매는 실상은 하나입니다. 이 하나인 성령의 열매가 형편에 따라서 여기 열거한 대로 아홉 가지로 표현이 됩니다. 제가 여러 해 전에, 태국 방콕에서 한 보석상점에 들어가니 그 주인이 한 보석을 보여주는데, 보석은 하나이지만 그 면에 따라서 혹은 분홍빛으로 보이고, 혹은 자줏빛으로 보이고, 또 다른 빛으로도 보였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하나인데 그 환경을 따라서 아홉 가지 방면으로 이 열매가 나타납니다. 또 이 아홉 가지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심령 속에 맺히는 성령의 열매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향하여 맺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어려운 환경을 당할 때에 맺히는 성령의 열매로, 각각 세 가지씩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심령 속에 맺히는 열매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입니다. 이 말들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자세히 설명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랑스러워도 사랑하고 그렇지 못해도 사랑합니다. 나와 의견이 같아도 사랑하고 그렇지 않아도 사랑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이의 마음 속에는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둘째는 희락 곧 기쁨이올시다. 이 기쁨도 보통 세상 사람이 가지는 종류의 기쁨이 아닙니다. 혹 무엇을 얻는다든가 반드시, 혹은 누구와 다투어서 이긴다든가 하는 이런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나의 기쁨을 너희에게 주노라” 곧 그리스도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셋째는 화평이올시다. 이 평화도 무슨 좋은 환경이나 외적 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화평입니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오직 성령이 충만한 사람만 체험할 수 있는 내적 화평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먼저 그 마음 속에 이 열매들이 있습니다. 사랑, 기쁨, 화평의 열매가 언제나 그 심령 속 깊은 곳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에게 대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가 또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대인 관계에 있어서 그 열매가 이렇게 나타납니다. 첫째는 인내로 나타납니다. 보통 인내가 아닙니다. 오래 참는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성나는 일이 있어도, 시끄러운 일이 있어도, 괴로운 일이 있어도, 무리한 대우를 받아도, 같이 성내지 아니하고 싸우지 아니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둘째는 자비입니다. 참을 뿐더러 죄인이라도 불쌍히 여기고 죄를 사하여 주는 마음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못 박는 자를 위하여 드린 기도는 곧 자비의 표현입니다. 오직 성령에 충만한 사람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집사였으므로, 그도 순교할 때에 이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양선이올시다. 그 뜻은 이러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길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행할 수만 있다면 이런 이들에게도 선을 행한다고 하는 이런 뜻입니다. 선한 자와 악한 자의 밭에 비를 같이 내리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대로 본받아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만 이렇게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마지막으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타나는 열매가 또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이는 어려운 때일수록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합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위기를 당할 때에 생명을 걸고 충성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온유합니다. 반항하지 아니합니다. 원망하지 아니합니다. 거칠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도 온유하여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합니다. 사회를 대하여도 온유하여 다른 이들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아니합니다. 이 온유는 결코 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유내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어 마지막에는 승리하여 땅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절제입니다. 절제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모든 방면에 성령을 받은 이는 절제합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정을 절제할 줄 압니다. 감정이 폭발되지 아니합니다. 말도 절제할 줄 압니다. 혀를 제어할 줄 압니다. 행동에도 절제가 있어서 도에 넘치는 그릇된 행동에 빠지지 아니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는 우선 마음 속에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을 대하여는 인내와 자비와 양선이 있게 하고,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일수록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무슨 일, 무슨 봉사, 혹 교회 활동을 한다고 하여도 우리 마음과 성품에 이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다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찍히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주님은 경고하였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만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여 줍니다. 우리 마음과 생활 속에 이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까? 스스로 살피십시다. 좋은 무화과를 우리 주님은 기대하는데, 과연 그것이 우리 마음 속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있습니까? 사실, 교회에 오래 출석한다고 해서 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 성경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믿기는 믿으면서도 항상 성령을 거슬러서 성령으로 근심하게 하며,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가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또한 성령을 소멸케 하지 말라는 엄숙한 경고도 있습니다. 전에 사울 왕이 말년에 성령이 그를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실 지금도 20년, 30년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 마지막에서는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는 이들을 혹 보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다가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우리가 마음만 열면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줄 자가 누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꼭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면 주십니다. 이 오순절 주일에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우리가 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마음 속에 사랑과 기쁨과 화평,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인내와 자비와 양선으로 대할 수 있고, 역경을 당할 때에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돌파할 수 있는, 이 열매를 우리가 맺어야 합니다. 이런 열매만 하늘나라에서까지 영원히 간직될 수 있는 열매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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