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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6:10-20/ 쇠사슬에 매인 사신 / 한경직 목사 2014-08-26 22:17:26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6장 20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 일’이라는 말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바울이 복음전파를 위해서 자기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을 지적합니다. 사신(使臣)이란 말은 지금은 보통 대사라는 말을 씁니다. 대사는 한 나라의 대표로서, 다른 나라에 파송하는 이를 대사 또는 사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신이라고 자칭합니다. 그러면 그는 어떤 나라에서 무슨 나라에 파송이 되었는가? 얼른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 나라에 파송된 사신이올시다. 곧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화해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파송된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습니다. 곧 그는 그 때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때에는 죄수가 한 손은 쇠사슬에 매이고, 그 다른 끝은 지키는 군사의 손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의 사신이나 그 현실은 쇠사슬에 매인 죄수였습니다. 이런 불행한 환경에서 바울이 어떻게 하였는가?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신의 역할을 하였는가? 우리는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의 많은 옥중서신에서 이것을 잘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런 불행한 환경 가운데서도 한 번도 불평이나 낙심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신으로 자유롭게 여행도 못하고, 회당과 거리에 나가 자유롭게 전도도 못하고, 이런 신세가 어디 있나, 이런 탄식하는 말을 한 번도 그 서신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경륜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불평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환경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신 노릇을 잘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또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또 다른 이들에게도 자기를 위하여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무슨 석방운동을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아니했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복음을 잘 전파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 기도는 곧 응답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그가 이렇게 기도하고 머리를 들자마자, 눈을 떠 보니 자기 옆에 젊은 로마 군인이 자기 손에 매인 쇠사슬을 잡고 서 있는 것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가만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는데, 복음전파의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히브리어로 그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몇 시간 있더니 그는 물러가고, 다른 군인이 교대로 와서 또 그 옆에 서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군인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가만히 앉아서도 여러 군인들에게 전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새 우리 군대 안에서 전군신자화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은 사도 바울이 벌써 오래 전에 로마에서 일으킨 군인신자화운동이올시다. 그뿐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 한 방에 갇힌 어떤 청년을 또한 보게 되었습니다. 또 이 청년에게 전도를 했더니 이 청년이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얘기 하다 보니 그 청년은 자기가 잘 아는, 멀리 소아시아에 사는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회개하고 자기 옛 주인에게 돌아가길 원하므로 바울이 편지를 써 주었는데, 그 편지가 곧 우리 성경에 있는 빌레몬서입니다. 그 글 가운데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하노라”는 글이 있는데, 갇힌 중에서 이 젊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낳은 것입니다. 그때 감방에서 전도를 받고 회개한 이들은 이 청년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12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에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군인들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느니라”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감방에 조용히 앉아서 생각해 보니 새로 믿는 이들로 조직된 여러 교회에 가르칠 말들이 많은 것이 기억됐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의 내용도 좀더 분명히 알려야 하겠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든 생활과 도덕에 대하여도 철저히 가르쳐 주어야 하겠고, 교회 안에서의 치리와 모든 사업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쇠사슬에 매여 있었으나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 여러 기타 옥중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고 오는 세대에 주옥 같은 기독교의 경전이 감옥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쇠사슬에 매였으나 얼마나 큰일을 하였습니까? 사슬에 매임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아 어떠한 사신이 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넓은 의미에서 다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우리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사신으로 보내신 것같이, 우리 주님도 우리를 이 세상에 그의 사신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믿는 자들 하나하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이올시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룰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로서의 이 존귀한 지위와 사명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어떤 의미에서 쇠사슬에 매인 사신들이 더러 있습니다. 똑같은 사슬은 아니지만, 우리를 말하자면 결박해서 자유로이 일을 못하게 하는 사슬이 더러 있습니다. 가령 질병의 사슬, 혹은 노년, 노쇠의 사슬, 기타 불행한 환경의 사슬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나이로 보나 신앙으로 보나 지식으로 보나 어디서나 주의 사신 노릇을 잘할 만한데, 그만 병마에 걸려서 사슬에 매인 이가 더러 있습니다. 어떤 이는 수년간이나 병석에 누워 있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불구의 몸으로 일생을 살 수밖에 없는 이도 있습니다. 이들은 말하자면 오늘에 있는 사슬에 매인 사신들입니다. 우리 가운데에 이런 이가 혹 계실 줄 압니다. 사실 우리 교우 가운데는 이 질병의 사실에 매여서 이 예배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이가 많습니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사도 바울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절대로 불평하지 아니했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할 수 있는 주의 일을 찾았습니다. 우리 교우 중에도 오랜 병석에 있으면서도 만나는 이마다 신앙을 간증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병석이 곧 그의 강단이올시다. 질병의 사슬에 매였으나, 복음을 전파하는 그런 자리에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사신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미 노쇠의 사슬에 매였습니다. 꼭 병석에 눕지는 않았으나 팔도 약해졌고 다리도 약해졌습니다. 전에처럼 심방도 할 수 없고, 어디 갈 수도 없습니다. 또 작년부터는 우리 총회 법에 의지해서, 말하자면 어떤 분들은 소위 은퇴의 사슬에 매인 모양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여러분들도 사슬에 매인 사신이올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여 보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한 일을 보세요. 그렇다고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사슬에 매여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늘 부르는 찬송가 한 구절의 말씀과 같이,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전에처럼 구역일은 볼 수 없고, 멀리 갈 수는 없으나 근처에 다니면서 건질 죄인은 많습니다. 사실 사신의 직분은 종신직이올시다. 이 직분에 대해서는 은퇴의 법이 없습니다. 노쇠의 사슬에 매였으나 그 자리에서 기도하고, 은혜 받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서 일하는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직업이란 사슬에 단단히 매인 모양입니다. 꼭 시간에 얽매이니 자유롭게 교회 봉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는 이들도 쇠사슬에 매인 바울이 한 일을 기억해 보세요. 멀리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도는 하지 못하나 혹 내 책상 옆에 앉은 이가 예수를 믿는가,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장이 한번은 자기 회사 사원에게 “내일 주일날인데, 자네 같이 교회가지 아니하려나?” 한번 말해 보니까 그 사원이 수줍은 얼굴로 하는 말이, “사장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믿을 마음은 좀 있었는데, 같이 가자는 말씀이 도무지 없는데 먼저 가겠다고 하기가 좀 무엇해서 그저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라고요. 사슬에 매인 그 자리에서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를 위해서 주를 기쁘시게 할 만한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여기 앉은 어떤 여러 자매들 가운데는 살림이란 사슬에 단단히 매인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돌보아야 하고, 남편도 돌보아야 하고, 그릇도 닦아야 하고, 시장도 보아야 하고, 방도 쓸어야 하고, 살림에 매이니 어떻게 주의 사신 노릇을 할 수가 있는가, 염려하는 자매들도 상당히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그렇다고 불평하지 말고, 사도 바울과 같이 기도하면서 은혜 받아서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주의 일을 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 좋은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은 아주 큰 주의 사신으로서 할 일입니다. ‘맷돼지 잡으러 가다가 집돼지 놓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너무 다른 것 많이 하려고 하다가 집안 아이들 등한히 하지 맙시다. 가정에서 좋은 주부가 되어서 가정에서 모든 할 일을 꼭 하고 주를 기쁘시게 하면, 아직 안 믿는 가족이나 여러 친척들까지도 다 감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매님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슬에 매인 주부들도 그 자리에서 충성된 주의 사신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골로새서 4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나의 쇠사슬에 매인 것을 생각하라. 그 뜻은 두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첫째는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만 아닌 줄 압니다. 둘째는 나는 이렇게 매였으니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너희들은 밖에서 더 힘써 일해 달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하는 것은, 이 시간 특별히 매여 있는 성도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슬에 매인 것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쇠사슬에 매인 북한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십시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공산당의 쇠사슬에 매여 임의로 찬송도 부르지 못하고, 기도도 드리지 못하고, 모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매인 가운데서도 사신 노릇을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밖에 무슨 사건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용천의 이만화 목사 사건, 박천의 어떤 주일학교 여교사 사건, 해주의 박 목사 사건 등등,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이들은 다 말하자면 지하교회에서 일하다가 혹은 숙청을 당하고, 행방불명이 되고, 또는 처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 성도들은 이렇게 굵은 쇠사슬에 매여서도 생명을 걸고 일하는데, 오늘 우리 남한에 있는, 이 자유 대한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북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더러,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대신하여 그의 손으로 할 수 없는 북한 선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작년도부터 우리 총회에서 북한 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북한선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자금만 있으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얼마든지 북한 동포들에게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또 7?4 성명 이후에 북한 선교의 문은 더욱 넓게 열리는 중입니다. 북한 선교에 궐기할 때입니다. 사슬에 매인 사신들도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데, 아무 사슬에도 매이지 아니한 우리들은 더욱더 힘써 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하나가 사슬에 매인 북한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일어날 때는 바로 이때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사도 바울이 비록 사슬에 매였으나 그 가운데서 기도하고 은혜 받아서 말할 수 없는 열매를 맺은 것을 지금 저희들이 다 바라보고, 우리가 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의 사슬에 매였으나 우리도 그런 가운데서 기도하고 은혜 받아서 주를 기쁘시게 하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북한에서 말할 수 없는 쇠사슬에 매인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대신해서 북한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깨닫고 이 일에 충성된 사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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