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6:11-18/ 내 몸에 예수의 흔적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53:54

당시에 바울을 괴롭게 한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교적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참 사도가 아니라고 공격하였으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참 복음이 아니라고 비난하고 할례까지 받으며 그 밖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유대 풍속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그릇된 지도자들에게 미혹되지 않기 위하여 흔히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하는 갈라디아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서신 가운데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큰 진리를 분명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기를 “이제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흔적’이란 말은 ‘화인이 찍힌 자리(stigmata)’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새 번역에는“예수의 낙인이 찍혔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노예제도가 성행되었을 때에는 종의 몸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찍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주인에게 속한다는 확실한 증거로써 어디를 가든지 종 된 표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의 뜻은 누가 무어라고 나를 비난하든지 나는 내 몸에 예수님의 화인이 찍힌 종이라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과연 그는 예수님의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몸에 사실 그가 예수를 믿고 복음을 증거하는 중에 그 몸에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러 번 태장(笞杖)을 맞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정신까지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많은 상처야말로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그 몸에 지닌 흔적, 곧 낙인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이 예수의 흔적, 혹 낙인을 잠깐 묵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사를 읽노라면 어떤 성자의 손과 발에는 문자 그대로 못 자국이 나타났고, 또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나타났다고 하는 전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성 프란시스는 오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그의 손과 발에 못 자국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 그 옆구리에도 창에 찔린 흔적이 보였다고 합니다.

또 시에나(Siena)의 성 캐더린도 오래 기도하고 성찬을 받은 후에 그런 자국이 보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전설뿐인지 사실인지 그 여부를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이들이 십자가를 오래 묵상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들도 고난의 체험을 하였고, 더욱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현대의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그 육체에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은 없으나 지금도 우리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소 받은 고생을 좀더 깊이 깨달아 우리 마음속에 이런 못 자국이 생기는 신령한 생활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 줄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격 가운데 살며 내게 붙은 정욕, 허영심, 욕심은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사람이 되어 나도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를 따르는 생활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한국의 성도들 가운데도 문자 그대로 그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이들이 더러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신자들 가운데는 옛날 사도 바울과 같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다 매를 맞고 몸에 상처를 가진 이들이 상당히 있는 줄 생각합니다.

옛날 일제 시대에 일본 관헌들에게 매를 맞아 이러한 상처를 입은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해방 후에는 악한 공산당에게 핍박을 받아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한 이들도 많고, 거기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매를 맞은 자리, 혹은 총에 맞은 자리를 몸에 지니고 사는 성도들이 남북한에 아직도 상당히 많은 수가 남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이 매 맞은 자리는 문자 그대로 예수의 흔적입니다. 예수의 종이 되었다는 확실한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은 이들은 옛날 바울과 같이 항상 감사히 생각할 것입니다. 또 이런 흔적이야말로 영광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자 그대로의 예수의 흔적을 그 몸에 누구나 지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로써의 예수의 흔적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 몸에 지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신자는 누구나 예수의 참된 종이 되어야 하며, 또 그 종 된 표적이 그 몸과 생활에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1. 우리 마음에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는 메고 나를 배우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이 온유와 겸손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셨습니다. 믿는 자의 성품에도 이러한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 신자들은 그 얼굴에도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어떤 곳에 높은 산 위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한 큰 사람의 얼굴과 같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 바위에 대하여 한 전설이 있습니다.

그 산 아래 사는 한 어린이가 항상 그 바위를 바라보며 언제나 그 바위에 나타난 얼굴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만나 보기를 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일생을 지내도록 그런 위대한 인물을 만나보지 못하여 결국은 실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실망 중에 그는 점점 늙어 어느덧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동네 사람들이 그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의 얼굴이 큰 바위에 나타나는 그 얼굴과 같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뜻은 이 노인이 일생토록 그 바위를 바라보는 중에 그 자신의 얼굴이 변화하였다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얼굴을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그때에는 사진술도 없었고, 또 직접 주님의 얼굴을 보고 그린 초상화도 없습니다. 지금 성화에 나타나는 주님의 얼굴은 모두 예술가들의 상상화입니다. 호프만(Hoffman)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의 얼굴을 흔히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록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였으나 우리가 오래 신앙생활을 하면 그의 얼굴에도 예수의 흔적이 남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얼굴에도 어딘가 모르게 그 성스러운, 고귀한, 경건한, 거룩한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어진 어머니가 매일 저녁 자기 전에 자기 어린 딸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읽어주고 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은 이 어린 딸이 깨어서 하는 말이 "엄마, 나는 어젯밤 꿈에 예수님을 보았어요. 그런데 그 얼굴이 꼭 어머니 얼굴과 같았어요." 하였다고 합니다.

3.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 신자는 그 눈에도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얼굴에 제일 중요한 것은 눈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눈은 비둘기의 눈과 같았다고 전하여 옵니다. 눈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백안, 냉안, 혈안 등등이 있습니다. 독사의 눈 같은 눈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시에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고 유리 하는 무리를 민망히 보셨다고 하였습니다. 벳새다 들에서 말씀을 사모하나 그러나 배고픈 대중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다니에 오니 모두 우는 것을 보시고 그도 같이 우셨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눈은 긍휼, 연민, 동정의 눈이었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자에 대하여 당시 바리새인들의 눈초리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돌아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는 예수의 눈을 상상하여 보세요!

우리 눈에도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며 특별히 불쌍한 대중을 어떻게 보는가? 바라기는 우리나라 지도층에 있는 이들의 눈가에도 이 예수의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4.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의 신자의 손에도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나사렛에서 손으로 물을 길어 어머님을 도우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나타나시기 전까지는 친히 손으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그 후 사방으로 다니시며 문둥병자도 손으로 어루만지시고, 친수(親手)로 떡을 떼어 나눠 5,000명도 먹이셨고, 친수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친수로 떡과 포도즙을 나누어 성찬식도 거행하셨고, 어린이들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하시고 다시 말하면 거룩하신 그 손으로 모든 봉사를 하셨습니다.

이미도 말하였지마는 어머니의 손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의사의 손, 간호원의 손에는 문자 그대로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도 어떤 상가에 가서 어떤 집사님이 입관을 마치고 땀을 흘리며 나오셔서 손을 씻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례부원들의 손에는 문자 그대로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손은 친교의 손이요, 봉사의 손이요, 축복의 손입니다. 우리 신자들의 손위에 이러한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그리고 또한 신자의 어깨와 등에도 신령한 의미에서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어깨에 메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는 만민의 죄, 슬픔, 고통, 질고를 모두 어깨에 지시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어깨에는 문자 그대로 예수의 흔적이 있은 줄 생각합니다. 그는 친히 주님의 십자가를 잠깐 대신 진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짐을 같이 져야 주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장로의 짐, 집사의 짐, 교사의 짐, 권찰의 짐, 교인으로서의 짐. 다시 말하면 나의 짐을 잘 질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아의 짐, 미망인의 짐, 환자들의 짐, 빈궁한 동포들의 짐, 불신자들을 인도하는 짐, 이 모든 짐을 지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더 가까이 모시게 됩니다. 우리 신자들은 누구나 그 어깨에 남의 짐을 지는 이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6. 마지막으로 우리 신자는 신령한 의미에서 그 무릎에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성화 중에 제일 유명한 그림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그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세례 받으신 직후에도 광야에서 40일간을 기도하셨고, 종일 일하신 후에도 밤에 홀로 산에서 기도하셨고, 변화산에서도 기도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무릎에 이 기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무릎에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택함을 받고 구원받은 이들에게는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악한 이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이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억하세요! 우리 몸에 예수의 흔적이 없으면 짐승의 흔적이 있습니다. 우리 신자 하나하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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