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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5:8-21/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46:29 여기 사도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한다. 나는 방송을 통하여 간단한 신앙 상담의 시간을 가지는데 때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받는다. “성령 충만은 어떤 것입니까?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성령을 한 번 받으면 두 번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아마 우리 가운데도 이런 의문을 가지신 이가 계신지도 모르겠다. 이 시간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란다. Ⅰ. 먼저, 우리 신자와 성령의 관계를 생각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신의 하나님이시다. 이 삼위의 하시는 일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성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며 또한 인간의 역사를 다스리신다. 그러나 성자는 특별히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크신 역사를 이루시고 부활하시므로 인간이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 속에 오셔서 감화 감동으로 예수를 믿게도 하시고, 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이렇게 신자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먼저 간단히 기억하자. ⑴ 요한복음 3장에 있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인간 스스로 중생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 처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 ⑵ 이렇게 중생한 신자의 마음 속에는 성령께서 또한 계속하여 같이 계신다. 곧 동거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신자의 몸은 성령의 전 혹은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도 하였다. ⑶ 이렇게 성령은 신자의 마음 속에 계셔서 진리로 가르쳐 주신다. 우리가 신앙의 깊은 진리를 내 스스로 다 깨달을 수 없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꼭 필요한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또 지혜와 총명을 주신다. ⑷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지적으로만 돕지 않으시고 실제 생활과 사업에도 항상 인도하여 주시며 도우신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보면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전도할 때에 성령의 인도로 가사로 가는 길로 갔으며, 또 가까이 나가라는 인도로 병거에 가까이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였으나 성령께서 막으시고 드로아로 인도하셨는데, 그날 밤에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 가운데 마게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을 듣고 구라파(유럽)로 건너간 것이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전도자들을 친히 인도하셨다. 또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내보낼 때에도 성령의 인도로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마음 속에 계셔서 개인의 생활과 사업을 인도하실 뿐더러 교회 안에 계셔서 또한 교회의 모든 일을 인도하신다. ⑸ 이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까지 주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⑹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분명히 기록한 대로 이렇게 같이 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과 성품에서 여러 가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 곧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떠나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고, 그리고 보람 있는 귀한 주의 일을 할 수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하였다고 하면 또 현재에 한다고 하면 이것은 다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Ⅱ. ⑴ 그런데 성경은 우리 신자에게 이렇게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성령께 대하여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였다. 주의하라.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뜻은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하였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성령의 소욕대로 하지 아니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성령께서는 근심할 수밖에 없다. 성령께서는 어떤 일에나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애쓰신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는가? 자녀들 가운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녀, 그리고 반면에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자녀가 있다. 신자들 가운데도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신자, 그러나 반면에 성령을 슬프게 하는 신자가 있다. 우리는 어떠한 신자인가? ⑵ 그리고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있다. 초대교회에서 유무상통할 때에 이 가정에서도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에게 바치면서 얼마는 감추고 전부인 것처럼 가져왔다. 그때에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도 성령이 계셨다. 그러나 그들은 시험에 빠져, 말하자면 성령을 속인 것이다. 우리도 성령을 속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성령의 인도대로 무엇을 하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만 육신의 소욕으로 그대로 하지 아니한다. 결국 성령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성경은 이 점을 또한 경고한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하였다. 성령의 불을 아주 끄지 말라는 말이다. 성령의 시도를 끝까지 거부하고 계속하여 성령을 근심케 하면 마지막에는 성령이 떠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아주 꺼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사울왕의 생활에서 찾아본다. 성령이 그의 마음에서 떠나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기도하였다. 우리에게도 이 기도가 필요한 줄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않도록, 그를 속이지 않도록,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Ⅲ.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이상과 같은 나약한 생활을 하는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지만 충만히 받지 못하였다. 성령을 받는 것과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그 의미가 다소 다르다. 사도들의 생활을 보면 예수를 믿고 따를 때에 모두 성령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연약하였고 의심도 하였고 때로는 시험에도 빠졌다. 그러나 오순절에 그들은 성령을 충만히 받았다. 이렇게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는 큰 권능이 임하였고 용감히 새 힘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또 이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경험은 반복되었다. 이미 말한 대로 그들은 오순절 때에 성령을 충만히 받았을 뿐더러, 그 후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그들은 다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을 충만히 받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 성령을 충만히 받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과 생활의 전 영역을 주관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지적 생활만 아니고, 감정적 생활도 주관하시고 이상 두 가지뿐만 아니고 의지적 생활도 전부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혹은 우리의 생각뿐 아니고 우리의 말, 우리의 온갖 행동까지 성령의 소욕이 다스린다는 말이다. 우리의 마음을 혹은 생활을 집에 비하면 성령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셨으나, 한 작은 방에만 계시며 그 방만 다스리시고 다른 방들은 육신의 소욕이 다스릴 수 있다. 제가 일찍이 이북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아무 장로는 회개는 하였으나 아직 돈 주머니는 회개하지 못하였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성령께서 아무 마음의 방들 전부를 다스리게 된다. 생활 전부를 다스리게 된다. 돈 주머니까지 다스리게 된다. 혹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법적으로 우리 한국정부는 삼천리 강산 전부를 통치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권리는 남한에만 국한되었다. 왜? 이북지방은 공산당이 강점하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공산당들을 온전히 몰아내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전체를 다스리게 된다. 우리 믿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렇게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 성경은 우리에게 권한다. 그러면 그 길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믿음과 기도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 약속을 믿고 그대로 될 줄 기대하면서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개인으로도 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모여서도 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이 여름 동안 우리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수양회 또는 모임들이 있다. 내가 바라기는 이 모든 모임이 성령을 충만히 받는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물론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알고도 행치 못하는 데 실상은 더 큰 문제가 있다. 왜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가? 한마디로 신앙이 약한 까닭이다. 왜 신앙이 약한가? 한마디로 성령을 받았으되 충만히 받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믿기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근심케 하고 주를 위하여 봉사도 하지 못한다. 영락의 성도들이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오늘 본문에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다. 사실 술 취한 사람을 보면 술이 그 몸에 가득하다. 알코올이 눈에도 있어 그래서 눈이 뻘개지고, 알코올이 입에도 있어 고약한 냄새가 나고, 알코올이 다리와 발에도 충만하여 바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이렇게 죄악으로, 곧 정욕이나 탐심이나 증오나 시기나 교만이나 허영이나 욕심으로 가득한 생활을 버리고 그 대신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개인으로도, 교회로도, 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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