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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3:6-18/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 한경직 목사 2014-08-25 16:14:47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간단한 말씀인데, 데살로니가후서 3장 13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거의 같은 교훈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있습니다. 제가 읽을 때에 들으세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이 권면은 잘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권면입니다. 선한 일, 좋은 일을 행하는 이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니까 열심 있는 이들에게 특별히 주시는 권면입니다. 인간은 약하여 잘 믿고 좋은 일을 하다가도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러한 이들에게 미리 경고와 권면을 주십니다. 낙심의 원인은 물론 다양합니다. 여러 가지입니다. 또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다가 낙심하는 이들이 혹 있습니다. 안 믿는 남편을 위하여, 혹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다가 빨리 이루어지지 아니하므로 혹 낙심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휴전선이 철폐되고 빨리 평화통일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다가 빨리 이루어지지 아니한다고 혹 낙심하는 이들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이들을 위하여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로써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고 격려하셨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봉사나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하다가 ‘나는 이렇게 수고하는데 다른 이들이, 특히 교회당국이 몰라 준다.’고 낙심하는 이가 혹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가 열심히 장학 사업을 하다가 그만 힘이 적어졌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도와주어도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그 후에 보면 감사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정성껏 봉사를 하는데 남이 몰라줄 때에 자연히 인간인지라 섭섭한 마음이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 동양의 공자님께서도 ‘사람이 몰라주어도 섭섭한 생각이 나지 아니해야 참 군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적어도 다 군자는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아시면 족한 줄 알고 일해야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잘 된다고 생각되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이들이 혹은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애국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시험에 빠져 낙심했었으나 해방된 후에야 깨닫고 후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편 73편은 이런 경험을 지낸 이가 지은 노래입니다. 그러나 그도 악한 이들은 결국 홀연히 멸망하는 것을 보고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도덕적 세계입니다. 악한 자들이 일시에 성하는 것 같으나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결국은 망합니다. 금생과 내생에 그러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남의 허물과 죄에 걸려서 넘어지고 낙심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누구와 담화할 적에 그에게 들으니 일찍이 이북에서 나온 어떤 친구를 만나 지금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으니 그의 말이, “나는 요새 아무 교회도 안 나갑니다. 요새 목사들과 장로들의 하는 행동을 보니 교회에 나갈 마음 다 없어졌어요.” 하더랍니다. 남의 죄와 허물에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목사, 장로를 바라보고 예수 믿으란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남의 죄에 걸려서 낙심하지 맙시다.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사실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 인간을 살피시고, 특별히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는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그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는 이들이 많을 줄 생각합니다. 개혁자 루터는 신앙이 독실하고 용기 있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사업을 추진하여 나가는 가운데 원수는 많고 너무 괴로워서 한번은 낙심하여 자리에 누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이상하게도 그 아침에 상복을 입고 침실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루터는 깜짝 놀라 “누가 세상을 떠나서 상복을 입었소?” 하고 물으니, 그 부인의 대답이 놀랍게도, “하나님이 죽었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루터는 펄쩍 뛰며, “하나님이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라며 책망할 때에 그 부인은 엄숙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당신이 낙심합니까?”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루터는 그 말에 새롭게 용기를 회복하여서 담대히 자신의 일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원수가 많고 좋은 일이 잘 되지 아니할 때에 언제나 살아 계신 이 하나님을 우러러보아야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둘째는, 히브리서 12장 1절로 3절까지에서 주시는 교훈과 같이, 한편에는 허다한 신앙의 증인들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가 읽을 때 여러분도 자세히 듣기만 하세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과거의 많은 신앙의 용사들도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였으나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였으나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의 반열에 참여해서 같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심으면 거두고, 심는 대로 거둔다고 하는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언제나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비록 더딘 듯하나 반드시 뿌린 것은 거둡니다. 오늘 못 거두면 내일 거둡니다. 이 세대에 못 거두면 후대에 거둡니다. 금생에 못 거두면 내생에 거둡니다. 그러므로 선한 씨를 뿌리다가 낙심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선을 행하다가 혹 낙심하는 이가 있습니까? 만일 그런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주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이제 곧 일어나세요. 지체하지 마세요. 아무리 과거에 교회를 잘 봉사하였다고 할지라도 낙심한다면 그전 공이 가석합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가나안 복지의 변경인 가데스에까지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모세는 정탐꾼 열둘을 택하여 먼저 가나안 복지를 정탐케 하였습니다. 몇 달 후에 그들이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과연 가나안 복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요, 아주 비옥한 땅입니다. 여기에 대한 보고는 일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떡해야 되겠느냐? 그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제 곧 우리가 들어가면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라고 진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인 열 족장들은 그 지방 사람들이 강하고 성이 튼튼하여 감히 들어가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대다수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 크게 낙심하여 밤새도록 울다가 결국은 가나안 점령을 포기하고 도로 광야 길로 돌아섰습니다. 이렇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간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애굽을 떠난 그 많은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오직 낙심하지 않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과 광야에서 새로 난 후대 청년들만 가나안 복지로 들어갔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곧 일어서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마귀가 약장사를 한번 하였다고 합니다. 그 가게에는 여러 가지 약이 있는데 가령 질투시키는 약, 싸움 붙이는 약, 거짓말하게 하는 약, 도둑질하는 약, 음란하게 하는 약, 심지어 살인 약, 자살케 하는 약까지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마귀 약장사가 다른 약들은 다 파는데 ‘비매품’이라 써 붙인 약병 하나는 팔지 않더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약일까 하고 보니 그 아래는 ‘낙심케 하는 약’이라고 써 붙였다고 합니다. “왜 그 낙심케 하는 약은 팔지 않느냐?”고 고객이 물으니, 마귀의 대답이 아주 유명합니다. “이 약은 잘 보존하였다가 다른 약들이 잘 듣지 않을 때에만 마지막으로 주는 약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은 아주 건강하고 열심히 믿는 이들에게만 주는 약입니다. 또 아무리 다른 약에는 걸리지 않던 좋은 사람도 이 약에는 걸리게 되며, 또 이 약에 한 번 걸리면 다른 나쁜 일들은 저절로 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깊이 들으세요. 아무리 열심이 있는 이라도 이 낙심하는 약에는 걸릴 수 있고, 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만 낙심하게 되면 자포자기하게 되어서 전에는 생각 못 하던 악한 일까지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시작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마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외쳤습니다.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다 놓고서 여러 가지 권면을 하는 말씀 가운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러한 증언을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은 마쳐야 합니다. 끝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수행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권합니다. “형제들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기도합시다. 전능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른 아침 형제들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하는 권면을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우리는 약해서 주님을 믿으며 주님을 섬기며 주의 일을 하고 여러 가지 사회를 위해서도 많은 봉사와 선한 일을 하다가도 그만 낙심하기 쉬운 연약한 인간들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이 시간 우리 하나하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우선 믿다가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고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고 교회를 봉사하다가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고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 선한 일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여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이 말씀을 우리 모두가 들을 만한 이러한 신앙의 생활로 오늘 아침 저희들을 일일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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