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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3:6-18/ 기독교 노동관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50:50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三․十二)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또는『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三월 둘째 주일은 우리 총회에서「노동 주일」로 정해서 지키는 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가 특별히 근로 대중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복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모든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어떻든지 우리 나라에 사회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 이 노동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우리가 상고해서 그 교훈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니 첫째로 일(노동)은 인간의 천직(天職)이올시다. 날 때부터 일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一장 二十七절, 二十八절을 읽으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에 고기와 공중에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습니다. 거기 땅을 정복하라, 모든 움직이는 것들을 다스리라 하는 말은 일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창세기 二장 十五절에『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하였습니다. 보통으로 에덴 동산에서는 아무 것도 안한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니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다스리며 지키는 것은 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에 일을 맡기셨습니다.「일하라」「일하고 먹으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올시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사람이 범죄하기 전에 이 일을 맡겼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는 물론 일이 더 수고롭게 되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서 더 수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해서『너는 종신(終身)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일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도 우리 사람에게 맡긴 것입니다. 일은 우리 인간의 천직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일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일은 우리 인간의 천부의 의무입니다. 따라서 일이 우리 생의 원칙이올시다. 일은 우리 육체의 발육과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일하지 아니하면 육체가 잘 발육될 수 없고 건강이 증진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은 심리적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심리가 건전합니다. 심지어 어떤 앓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일을 시키는, 즉 직업 요법도 있는 것입니다. 일을 하여야 사람의 마음이 건전해집니다. 일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병들기 쉽고, 일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의심이 들어오고 근심이 들어오고 여러 가지 고통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꼭 정당한 해석일는지 모르지만, 세례 요한 같은 이도 요단강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그 때 예수 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메시야를 증거 했습니다. 그 때는 일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만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게 붙잡혀서 감옥에 들어가서 오래 일하지 아니하고 감금되어 있을 때에 그만 예수님께 대한 확신이 떨어져서 의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서『오시겠다고 하시던 분이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되겠습니까?』물었습니다. 아마 일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이런 의심이 생기지 않았는가 생각이 됩니다. 일은 도덕적 생활에 있어서도 유익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건전한 도덕적 생활을 합니다. 일하지 아니하는 사람들 가운데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할 것 없으니까 극장에도 하고 화투도 하게 되고 댄스홀에도 가게 되고 말 장이 노릇도 합니다. 너무 분주한 사람은 딴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한가한 소위 유한 마담들 가운데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일은 도덕적 생활에도 필요합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 있는 카리브 바다의 발베이도스라고 하는 섬에 가서 그 지역 여러 섬에 있는 교역자들이 모여 목사 수양회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일이 있습니다. 발베이도스에 가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조그마한 섬인데 아마 한국 이수로 길이가 약 三十리, 넓이가 약 二十리로 비행기 타고 높이 올라가면 다 뵙니다. 이 섬은 참 좋습니다. 언제나 이른 여름 같습니다. 과히 덥지도 아니하고 물론 춥지도 아니하고 언제나 꽃 피고 정치 아름답고 아주 바닷물이 맑고 참 피서하기 좋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어떤 이가 여기 꽃도 많고 하니까 여기 꿀벌을 갖다 좋으면 많을 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꿀벌 통을 이 섬에다 갔다 놓았다고 합니다. 갖다 놓으니까 처음에 몇 달은 이 꿀벌들이 꿀을 잘 만들어 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부터는 꿀을 만들어 오지 않는단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저 사방에 꽃이요 언제나 벌들이 청밀(淸蜜)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꿀을 갖다 모아 놓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꿀벌들이 할 것이 없어서 그저 꽃에서 꿀을 먹고는 악착스럽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대로 쏘아주어서 큰 변이 났었다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일없는 사람은 이런 꿀벌 비슷해서 공연히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만 해칩니다. 일은 도덕적 생활에도 필요합니다. 일하는 가운데 만족을 얻고 천재가 다시 되고 내재의 능력이 다시 될 수가 있습니다. 일하는 가운데 향상이 있고 발전이 있고 새 문화가 창조됩니다. 오늘날 우주를 탐색하는 과학자들이 얼마나 밤과 낮을 쉬지 아니하고 일하는지 압니까? 일은 인간의 천직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일하고 살고 일하고 먹데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둘째로, 성경을 상고해 보니『모든 일은 신성하니라.』즉 꼭 같이 어떤 경우의 일이든지 필요한 일은 다 신성하니 존중해야 된다는 이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일은 대체(大體)로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적 노동, 하나는 육체적 노동. 사실은 이 두 가지 종류를 꼭 분간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아무리 정신적 노동이라고 할지라도 육체가 또 노력해야 됩니다. 또 아무리 육체적 노동이라고 할지라도 머리를 쓰면서 일을 해야 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능률이 납니다. 그러나 보통으로 우리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어떤 시대에서든지 정신적 노동은 존경했지마는 육체적 노동은 천시를 했습니다. 우리 동양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서양 문명 사회에서도 그 사회 내용을 볼 때에 일은 천시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지혜가 많다고 하는 플라톤(Pluton)같은 유명한 철학자, 로마의 유명한 학자 시세로(Cicero)같은 사람도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노예들이나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 노동도 전신 노동과 꼭 같이 신성하고 귀하다는 사상이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은 성경에서 왔습니다. 다른 사회, 다른 철학자의 문헌, 다른 어떤 사상가의 문헌 가운데서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펼쳐서 읽어보면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께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六장 二절에 보면 이런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놀라 가로되,『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예수는 나사렛 목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께서 육체 노동인 목수 일을 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요한 복음 十二장에 보니 예수께서 온 권세를 다 자기에게 맡기신 줄로 스스로 의식하면서도 실지 한 일은 옷을 동이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일이었습니다. 노예가 하는 노동을 한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부른 제자 대부분이 어부요, 농부였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전서 四장 十一절에는 이런 말로 교훈 했습니다.『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특별히 육체 노동을 하라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 다가 여러 가지로 권면할 때에 마지막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자기 손)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들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나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二十․三十四-三十五). 내 손으로 일했다고 하는 것을 자랑삼아 모든 장로들에게 부탁하면서 너희들도 이대로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신약에만 이와 같은 사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약에도 역시 이와 같은 사상이 있습니다. 잠언 三十一장에 보면 그 때에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으로 진주보다 귀한 현숙한 여인에 대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거기 가장 어진 여인이 어떠한 여인이냐를 기록할 때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가장 현숙한 여인들은 집안에서 길쌈을 하고 실지로 일하는 부인이라는 말입니다. 중고시대의 수도원 제도를 보면 수도사들이 깊은 산에 들어가서 그저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밭을 갈고 농사를 짓고 옷감을 짜고 자기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자작자급 했습니다. 기도하며 노동했습니다. 사실 모든 노동은 꼭 신성하다 하는 그 사상은 기독교의 유산이올시다. 그러기에 마르틴 루터(Martine Luther)는『다른 정직한 일은 성역(聖役)과 같이 거룩하다』고 말했습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 혹은 거리를 쓰는 일, 모든 필요한 정직한 일은 성역과 꼭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꼭 같이 거룩하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그르쳐 주는 사상이올시다. 셋째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의의 대우를 요구했습니다. 모든 근로 대중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의의 대우를 요구했습니다. 누가복음 十장 七절에 예수 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일꾼이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일꾼은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권리가 있다 그 말입니다. 받을 권리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도『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짐승을 위한 말이 아닙니다. 짐승도 일하는 짐승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거늘 하물며 일하는 사람에게 생활비를 보장해야 되지 않겠느냐? 일꾼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의의 대우를 요구한 것입니다. 말라기 三장 五절에 보면『내가 심판하기 위하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품꾼의 삯에 대해서 억울하게 하여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아니하는 고용주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지불할 대로 마땅히 지불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신명기 二十四장 十五절에『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하였습니다. 품삯을 정당하게 주되 줄 그 때에 꼭 주라고, 연기하지 말라고, 끌지 말라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겠다고 경고를 한 것입니다. 모든 일 시키는 사람들이 분명히 들을 말이올시다. 그러므로 야고보 五장 四절에 그 당시 옳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경고의 말을 하였습니다.『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사회의 불의 한 이 모든 일이 불의 한 사회제도 아래에서 불의 한 대우를 받는 이 모든 억울한 사람들의 호소하는 음성이 하나님께 들렸다고,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는 뜻이올시다. 그러므로 모든 근대 종로의 권리는 확실히 인정하고 정의의 대우를 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품삯을 주리만큼 주어야 하고 줄 때에 주라고. 만일 세계 각국에 있는 모든 자본주들이 이 성경의 교훈을 좀 더 일찍이 깨닫고 실행하였던들, 근로 대중에게 사회주의를 실현하며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던들 오늘과 같이 노동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이용하는 공산주의 운동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 우리 나라에서 이 근로 대중의 권리에 대한 보장, 사회정의의 실현은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될 것입니다. 넷째는 모든 일을 하나님과 동사(同事)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과 동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 전서 三장 九절에 사도 바울은『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 일할 때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이 골로새 사람들에게 편지할 때(三장 二十二절 이하)에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종들아(육체 노동하는 사람들은 종들이었습니다.)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그때에 믿는 사람들에게, 믿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한 말씀인데 간단히 말하면 세 가지로 부탁했습니다. 첫째는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를 두려워해서 성실한 마음으로 너희 맡은 일을 하라. 무슨 일이든지 눈가림으로 하지 말하고, 진실히 하라고.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러니까 공장에서 말들 든 지, 집안에서 뜰을 쓸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게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서 하는 자와 꼭 같이 하라고. 셋째로는 상을 주께 받으리니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니라. 네 맡은 일에 이와 같이 잘하는 것은 단순히 네 생활만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네 주인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실상은 네 맡은 일을 옳게,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바로 하는 것은 곧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가정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점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거기서 꼴 옳게 하고 바르게 하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예배당을 짓는 공사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돌을 깎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서 그 중 한 석수(石手)를 붙잡고『당신은 뭘 합니까?』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 석수가 얼른『나는 그저 하루에 백원 벌이합니다.』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석수에게『당신은 뭘 합니까?』하니까,『나는 돌을 깎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석수에게『당신은 뭘 합니까?』 이 사람은『나는 만류 주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습니다.』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보세요, 꼭 같이 돌 일을 하지요. 그러나 그 정신이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가 꼭 같이 무슨 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과 동사하는 것, 이것이 곧 기독교 노동 관이올시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일을 이렇게 봅니다. 무슨 일을 맡았든지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의 힘을 입고, 하나님과 같이 일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사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일한다는 이 신념, 이 사상이 곧 우리 믿는 사람이 노동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사상인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우리가 일할 때는 그 일이 참 기도요, 그 일이 참 예배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밀레(Millet, Jean Francois) 의 유명한 그림 가운데「만종」(晩鐘)이라는 그림을 다 아시지요. 어떤 젊은 부부가 밭에 나가 종일 일을 하다가 황혼이 될 때에 멀리 예배당에서 저녁 종을 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두 부부가 일하던 기구를 다 모아놓고 꼭 같이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그림이올시다. 하나님과 같이 일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일하는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일에 대한 올바른 태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문제를 생각할 때에 꼭 기억할 것 몇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각자 내 생활을 위한 직업이 물론 있습니다. 이 모든 직업을 이제 말한 이 정신에 의지해서 꼭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공통으로 내 직업 이외에 그보다 더 큰 일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주의 일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봉사하며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이 나의 생활을 위해서 일하는 어떤 일보다 첫째 되는 일이요 더욱 귀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노동 주일을 당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 근로 대중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예수 님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에게 그 일하는 직장에 가서 하나 하나 만나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일꾼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우리가 주의 일을 해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밤이 오게 되면 아무도 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옵니다. 환난의 밤이 오고, 질병의 밤이 오고, 노약(老弱)의 밤이 오고, 다시 말하면 죽음의 밤이 올 것입니다. 밤이 오게 되면 아무리 일하려고 애를 써도 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주실 때에 주를 위해서 우리가 일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에 실업자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과 동역 하는 꼭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할 일꾼을 찾으려고 하면 사실 드뭅니다. 이 황폐한 강산, 죄악으로 가득 찬 온 한국이 이와 같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꾼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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