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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11/ 우리를 벌거벗게 하는 것 /조용기 목사 2014-09-10 21:05:51 read : 11746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우리를 벌거벗게 하는 것" 이
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원래 벌거벗고 살도록 되어 있지 않았습
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
기 때문에 그들이 벌거벗은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
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탐욕의 노예가 되
자 즉시 그들 자신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갔고
벌거벗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수치와 곤욕
이 따르고 두려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결과 영광
의 옷만 벌거벗은 것이 아니라 에덴 낙원도 빼앗겨버리고
그리고 그 모든 예비한 축복도 다 벌거벗음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하나님께
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들을 감싸고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의 모든 삶 전체를 다
돌보시고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자 말자
그들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고 탐욕이 들어오자 말자
하나님을 보던 눈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게
이익이냐. 내게 손해냐. 내게 좋은 것이냐. 내게 나쁜 것이
냐. 자기 중심의 생각만 한 것입니다. 이래서 인간은 선악
과를 따먹자 말자 인본주의가 되고 그리고 자기를 위해 집
착하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게 되고 자기 이해상
관을 자기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자 말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은 수치를 느끼게 된 것
입니다. 그들의 양심이 벌거벗고 몸이 벌거벗고 생활이 벌
거벗고 황폐해지고 수치와 곤욕이 그들을 덮고 그 다음에
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들에게 생겨나고 만 것입니다. 이러
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탐욕이 들어와서 자기를 바
라보
게 된 인생은 모든 것이 다 벌거벗기고 마는 것입니다. 황
폐한 삶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
실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교훈으로 삼아야 합
니다.
첫째로, 탐욕은 우리를 벌거벗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탐
욕이 들어오기 전에 아담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들은 자
기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하나
님이 영광으로 옷 입혀주었으므로 그들이 아무리 서로 얼
굴을 맞대고 지내도 벌거벗은 수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다 예비해 놓았습니다. 에
덴 동산을 하나님께서는 극락의 세계로 예비해 놓으신 것
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모두다 예비해 놓으셨
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는 오직 믿음, 소망, 사랑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자 말자 탐욕이
들어와서 자기 스스로가 이것은 내게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 이익이 된다, 손해가 된다,
그러한 탐욕이 들어오자
하나님을 바라본 눈을 돌이켜서 자기를 바라보게 되고 이
기주의자가 되고 인본주의자가 되고 자기 중심의 사람이
되고 자기 이해상관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떠
나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영광도 떠나가고 하나님이 예비
하신 모든 축복도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총도 떠나가고 그
들은 영혼도 벌거벗고 마음도 벌거벗고 육신도 벌거벗고
생활도 벌거벗고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서 쫓겨 나와 맨손
들고 벌거벗은 인생들로 맨발 벗고서 가시밭 엉겅퀴를 걸
어가는 비극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우리
는 깊이 깨달아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 탐욕 때문에 왕위를 잃어버린 사울도 한 가지입
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친히 택해서 세운 이스라엘의 왕이
었습니다. 그는 미모의 남자요, 신장도 좋고 이스라엘에 지
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불러서 사무엘
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말렉의 죄를 기억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우리들을 대적해서 싸웠다.
그러므로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시켜라. 너는 가서 아말렉의 모든 사
람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고 짐승도 하나 남김없
이 다 죽이고 돌아오너라.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사울이 군
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아말렉을 치매 승승장구하여 아말렉
을 전멸했습니다. 그러나 그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
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왕이고 얼마나
능력 있다는 자기를 바라보고 탐욕이 생기자 자기 영광을
위해서 백성들한테 높임을 받으려고 아말렉의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고 그 다음에는 모든 짐승 떼 중에
서 살찐 소와 염소와 양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끌고 왔습
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사무엘을 보내서 사울왕을
만나니까 사울이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 뜻을 행하고 왔나
이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 뒤에 들리는
소와 양과 염소의 울음소리는 무엇입니까. 왜 저것을 살려
놓았느냐. 아 그건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자고 해서
살려놓았습니다.
변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를 더 바라보자 말자 자기의 탐욕에 잡혀서 탈취하기가 급
급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저 버렸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23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
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
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기 보십시오. 탐욕
이 들어오자 왕권도 빼앗겨 버리고 왕의 영광과 명예도 빼
앗겨 버렸습니다. 그는 벌거벗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탐욕은 우리를 벌거벗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저버
리면 저주가 와서 우리를 벌거벗게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왕권을 빼
앗기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는 죽음을 당하고 만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는 만성천자 다윗 왕도 한가지
입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따라왔을
때는 초립동을 일으켜서 만성천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는 전성기에 자기 군대들은 나가서 싸우는데 자기는 늦잠
을 자고 늦게 일어나서 지붕 위에 거느리다가 저 밑에 목
욕하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난 다음 신
하를 보내서 그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
의 신하 군인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자기 신하 군
인이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그를 취해서 동침을 했습니
다. 아기를 잉태하자 그 남편 우리야를 불렀습니다.
자기의
죄를 씻기 위해서 우리야를 그 아내와 동침을 시키려고 해
도 우리야가 안 합니다. 내 동료들이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데 내가 어찌하여 편안히 집에서 자겠습니까. 얼마나 충성
스러운 신하입니까. 그러니까 자기의 대장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시켰습니다.
이놈을 최일선에 보내어서 적군의 활이나
칼에 맞아 죽게 하라. 그래서 그 편지를 받은 요압 대장이
우리야를 최일선에 보내서 적의 칼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왕이 하는 말이 사람은 전쟁에 나가면 죽이기
도 하고 죽기도 하느니라. 후안무치하게. 그래서 밧세바를
데리고 와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러니까 선지자 나단이 와서 다윗을 경계했습니다. 물론
다윗이 그 말을 듣고 자기 죄지은 것을 알자 보좌에서 내
려와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회개해서
용서를 받았지만 선지자 나단이 하는 말이 너희 집에 수치
와 곤욕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네가 칼을 써서 우리
야를 죽였으므로 너희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때
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의 자손들 중에 서로 칼로써 싸워서
죽이고 나중에는 그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모반을 일으키매 다윗이 백발이 되어 맨발벗고
야밤에 도
망을 쳐야 했고 그리고 그 아들이 와서 아버지의 처첩들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수치와 곤욕을 당하게 하고 아버지
의 군대와 아들의 군대가 붙어서 싸워서 나중에는 압살롬
이 죽임을 당하는 다윗의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괴롭
고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다윗의 그 모든 영광이 벗
김을 당하고 다윗의 모든 즐거움이 벗김을 당했습니다. 탐
욕이 그로 하여금 그 개인과 가정과 자손들에게 비극적이
파탄을 가져오게 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욕심이 잉태하면 죄
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이러므로 여러분
탐욕은 언제나 우리를 벌거벗기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
고 멸망시키는 사망을 가져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소련이 하나님을 버리고 전통적인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하나님을 버리고 볼세비키 혁명 이후에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신은 죽었다고 말하고 그리고 완전히 유물주의
로 돌아서 70년만에 그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벌거
벗었습니다.
모스크바에 가도 벌거벗은 도시요, 베드그라드
에 가도 벌거벗은 도시요, 사할린에 가봐도 벌거벗은 도시
요, 하바로프스크에 가도 벌거벗은 도시요, 소련의 전 땅은
그렇게 기름진 자원이 많은 곳이지만 그들의 삶은 어디 가
나 벌거벗었습니다. 너무나 황폐하고 너무나 황무지 같아서
어디에 손을 대야 할지 모를 큰 비극입니다.
나는 소련에 가서 늘 외치는 것이 있습니다. 소련을 도울
자는 아무도 없다. 정치가 소련을 도울 수 없다. 여러분께
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성령
의 비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줘야 소련이 살아나지 소련
이 살아나는 길은 예수 믿는 길 밖에는 없다고 저는 늘 외
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눈을 돌이켜 하나
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의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그때로부터 벌거벗은 수
치가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둘째로, 이 성경에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
의 마음이라.
빌립보서 2장 5절 같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아무리 유익이 되든 손해가 되든 그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서 살았습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마귀는 예수
께서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성령충만 하자 그가 광
야에 가서 40주 40야 금식한 다음 찾아와서 어찌하든지 하
나님 바라보지 말고 자기를 바라보고 탐욕을 가지도록 유
혹을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에서 자기를
바라보도록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하는데 성공한 마귀는
예수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을 구주의 자리에서 전락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래서 40주 40야 금식한 예수에게 육신의 정욕을 가지
고 유혹을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배고
프지.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이용해서 이
돌들을 변하게 하여 떡을 만들어 먹어라. 사람은 구복을 채
우고 난 다음에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
력을 위해서 네 구복부터 먼저 채워라. 그것은 자기를 바라
보게 한 것입니다. 자기 배고픔을 먼저 하나님보다 자기를
바라보게 만들려고 마귀가 결사적으로 애를 썼습니다.
그러
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
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말씀만 중심으로 살지 나의
배고픔 같은 것은 문제로 삼지 않는다. 나는 나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고층탑 위에 데리고 갔습
니다. 유대인의 성전 높은 탑 위에 데리고 갔는데 모든 사
람들이 예배보려고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듭니다. 그때 마귀
가 하는 말이 뛰어 내려라.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천사
를 보내셔서 네 발을 받쳐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
겠다고 하였다.
사뿐이 내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고 갈채를 하고 너에게 영광을 돌리고 존귀를 돌리 것
아니냐. 그러면 너는 명예와 지위를 얻고 지도자가 될 것
아닌가. 그렇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이용
해서 네가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얻어라. 그것이 제일 좋은
길이다.
너희 욕심을 먼저 채워라. 그때 예수님께서 무엇이
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마귀
의 모든 안목의 정욕을 통해서 유혹하는 유혹을 뿌리쳐 버
렸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온 천하 만국이 보이는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세계의 모든 정치적 권세를 보이고 부귀와 영화를 다
보이며 하는 말이 내게 엎드려 절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
을 네게 주겠다. 세상 사람들은 부귀 영화 받으려고 무슨
짓을 못하느냐. 너 마귀에게 절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너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되려고 오지 않았느
냐. 네가 절하면 내가 너를 임금으로 만들어 주겠다. 예수
님께서는 그런 마귀의 유혹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
습니다. 이생의 자랑을 가지고 그를 유혹해도 예수님은 단
호하게 말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
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나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
성전에 왔지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이나 왕권을 얻으러 오
지 않았다. 마귀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해
도 탐욕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탐욕이 들어가면 하나님에게
서 눈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
혹을 해도 탐욕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마귀가 예수님을 붙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복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를 이기고 나와서 계
속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죄인을
용서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
리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불안에 떠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시고 사람들에게 천국을 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탐욕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
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은혜
가 그를 떠나지 않고 그는 하나님 영광으로 옷 입고 살았
지 벌거벗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11절에 이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
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
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
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
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
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
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따라가면 하나
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높여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희 환난 날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
씀하고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
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던지 죽
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우리는 하나님
을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 내게 이익이
되면 내가 하나님을 믿고 손해가 되면 안 믿겠다. 내게 선
하면 믿고 내게 악하면 안 믿겠다.
그런 짓을 하면 벌써 그
는 탐욕의 노예가 되고 그는 자기를 바라보게 되고 그런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고 서자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가고
그의 삶 속에 벌거벗은 수치가 다가옵니다.
오늘날 인생을 사는데 사람들마다 양심이 벌거벗지 않습
니까? 그들의 생활이 벌거벗지 않습니까? 믿음 소망 사랑
평안이 어디에 있습니까? 웃는 자는 속으로 울고 있습니다.
생활이 피투성이의 생존 경쟁이 아닙니까.
가시 엉겅퀴 아
닙니까. 축복이 다 떠나가고 벌거벗은 상태에서 맨손으로
맨발벗고 사람들은 뛰지 않습니까. 왜냐. 하나님을 저버리
고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를 바라보고 탐욕을 중심으로 사
는 사람들은 어디가나 계속 벌거벗습니다. 계속 수치와 곤
욕이 따르고 불안과 공포가 떠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셋째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우
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여러분과 나는 신분이 달라졌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하나님을 모를 때는 우리를 바라보고 살았으며 정욕의 노
예가 되어 살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옛 사람은 죽고 장사
지내 버리고 옛 사람을 벗어버렸습니다
. 이제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여러분과 나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옛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
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
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여러분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으로 지음
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내게 이익이 오느냐, 손해가 오느
냐, 그런 계산은 하지 않습니다.
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내 속에 선악과는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살아도 하나님 바라보고 살고 죽어도 하나님 바
라보고 살아갑니다. 흥해도 망해도 성해도 쇠해도 우리는
그런 것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
니다.
원래 탐욕의 종이었고 양심이 벌거벗고 생활이 벌거
벗고 이마에 땀을 흘리고 삶이 늘 불안에 떨던 우리들이
이제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이루었은 즉 그리스
도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 속에서 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
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과 자
기를 번갈아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 할렐루야.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교회 문밖에서는 마귀가 바이 바이. 하나님만 바라보
니 너하고 같이 못하겠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갈
때는 또 하나님을 뒤로 하고서 이야기합니다. 이제 나를 바
라보고 내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마귀가 또 오케
이 나하고 팔짱끼고 가자. 이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가
자기를 바라보았다가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했다가 마귀와
같이 했다가 이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늘 입었다가 벌
거벗었다가 입었다가 벌거벗었다가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
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일향 하나님을 바라보아야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기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
고 따르기는 하지만 또 자기를 바라보고 욕심이 생겨서 하
란에서 얻은 모든 재산을 수레에 싣고 일가 친척을 다 데
리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빈손으로 떠나라고 했는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나안에 들어오니 벌거벗었습니
다. 그곳에서는 한발이 다가와서 곡식이 없고 물이 다 마르
고 죽을 지경입니다. 벌거벗었습니다.
짐승들이 다 죽고 종
들은 도망치고 일가 친척은 다 떠나고 자기와 자기 아내와
롯만 남으니까 이제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제는 하나님 중
심으로 서지 않고 자기 탐욕을 바라보고 자기 생각대로 살
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서 이제 벌거벗은데 더 벌거벗었
습니다. 이제 마누라까지 벗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누라도
뺏기고 이제 혼자 되어서 완전히 영혼도 벌거벗고 마음도
벌거벗고 몸도 벌거벗고 생활도 벌거벗고 수치와 곤욕 속
에 들어앉아서 불안과 공포에 살 때 아브라함은 깨달은 것
입니다. 하나님이여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나
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 아브라함을 다시 돌이켜서 그를 일으켜 세우매 하나님
이 입혀주셨습니다. 영광으로 축복으로 아내로 물질로 입혀
주어서 아내를 데리고 금과 은을 많이 가지고 롯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그가 롯에게 우리 이제
갈라지자. 너무 오래 우리가 같이 살지 못한다. 롯은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나안의 저 구석으로 갔으면 좋았을텐
데. 롯은 자기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눈을 자
기 욕심을 중심으로 해서 탐욕을 바라보니 요단 들에 물이
많고 살기 좋은 것 같아서 그는 요단 들로 내려가서 소돔
과 고모라로 들어가고 만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
님만 바라봅니다. 살든지 죽든지 이제 하나님만 바라봅니
다. 아무리 여기가 메마르고 물이 없어도 하나님이 가나안
에 있으라고 했으니 나는 가나안 땅에 있지 요단으로 안
내려간다. 자기를 바라보고 탐욕을 따라서 요단으로 내려간
롯은 수치와 곤욕을 계속 당했습니다.
적군의 침략을 받아
온 가족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아브라함에 의해서 구출을
받았는가 하면 나중에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때 구사 일생으로 나오다가 그 아내는 그만 소금기둥이 되
어 죽고 굴 속에 숨었다가 자기의 딸들이 마시는 술을 마
시고 맏딸하고 동침을 하고 둘째 딸하고 동침을 해서 그래
서 수치스럽게 근친상간으로 자식을 낳았습니다.
모압과 암몬이라는 민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을 바
라보는 눈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고 탐욕의 노예가 된 롯
은 하나도 없이 다 벌거벗었습니다.
그는 영광도 벌거벗고
정의도 벌거벗고 그리고 가정도 벌거벗고 생활도 벌거벗고
완전히 수치를 면하지 못했지만 아브라함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가자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에
게 입혀주었습니다.
영광도 입혀주고 자손도 주고 은혜도
주고 축복도 주셨습니다. 그는 이제 살던지 죽던지 하나님
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섬기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백살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가 낳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라고 말할 때 그는 자기를 바라보았습니까. 안 바라보
았습니다.
자기 아내하고도 의논하지 아니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바라보았으면 자기 눈에 넣기도 아까운 아들을 왜
잡아서 죽여서 제물로 드리겠습니까. 자기를 바라보지 않았
습니다. 단호하게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식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가서 장작을 피워놓고 묶어서 눕히고 칼을 들
고 잡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마음을 다하
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만 바
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자손도
돌려주고 영혼이 잘 되며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
시리라. 자기의 전체를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
라보고 하나님만 섬기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으로 입혀주시고 영
광으로 입혀주시고 은혜로 입혀주시고 무엇을 입을까 무엇
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다 공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하나님이 버리겠나요?
야웨는 나
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
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가장 위험한 것이 자기
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을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이해상관으로 계산하고 타산적으로 하나님
을 믿는 것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면 믿고 이익이 안 되면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한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삶
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탐
욕적인 삶이요, 탐욕이 들어오면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벌거벗은 수치는 일생을 떠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옛 아담을 다 벗어버리
고 그 모든 선악과의 탐욕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으
니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마음을 다하
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만
섬기며 하나님을 따라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탐욕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것
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탐욕만이 우리에게서 하나님과
하나님 축복을 빼앗아 가고 우리를 벌거벗기고 마는 것입
니다. 우리는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옷 입고, 은혜로 옷 입고, 구원
으로 옷 입고, 축복으로 옷 입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바
라보고 그만 섬기는 삶을 살기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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