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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1-6/ 엡4:11-16/ 부름 받은 몸 / 한경직 목사
2014-08-27 09:48:24   read : 17732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키라”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쓰신 권면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 아래 4절에도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노라면, 이 ‘부름’이라고 하는 말씀을 종종 찾아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보면,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택한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명하여 부르신 까닭입니다. 로마서 1장 6절과 7절에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이런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여기의 로마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로마서 8장 30절에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예정에 의지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후에는 의롭다 하시고, 그 후에 영화롭게 하신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같은 장 28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렇게도 교훈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분명히 기억할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몸입니다. 우리뿐이 아니고, 옛날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으로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먼저 받음으로 모든 신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구주가 된 것입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모든 선지자들이 다 그러합니다. 부름을 받음으로 성도가 되고, 선지자들이 된 것입니다.

신약을 보아도 역시 그러합니다. 베드로도 부름을 받아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부름을 받아서 예수를 좇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도 부름을 받아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부름을 받아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부름을 받아서 성도가 될 뿐더러 사도까지 된 것입니다.

신약뿐이 아닙니다. 과거 근 2,000년간의 모든 신자 하나하나가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어거스틴 같은 이도 근본 죄인이었으나 부름을 받음으로 회개하고 성도가 될 뿐더러 위대한 신학자까지 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도 부름을 받았으므로 성도가 되었고, 종교개혁자가 된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러합니다. 부름을 받은 그 형식, 시기, 장소는 물론 각각 다르나 부름을 받은 사실은 꼭 동일합니다. 교회는 부름을 받은 이들의 모임, 단체입니다.

오늘 여기에 앉은 우리 하나하나도 부름을 받음으로 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문자 그대로 부름을 받은 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합니까? 그리고 감사할 줄 압니까? 이 사실을 깊이 느끼고 감격히 생각합니까? 깊은 감격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신자의 소명감이라고 합니다. 소명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큰 포도나무 곧 그리스도의 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천국의 한 시민이 되었습니다. 빛의 아들과 딸들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에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름을 받아 이러한 특권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 이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크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사람이 되며, 범사에 어떻게 행하게 하고자 하는 크신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읽은 본문 에베소서 4장 2절과 3절에,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행하여야 된다고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곧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키라” 권합니다.

첫째는, “모든 겸손과”라고 하였습니다. 부름을 받은 이들은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겸손은 모든 축복의 근본이 됩니다. 왜? 하나님은 언제나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이 되고, 겸손은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물은 낮은 땅에 고입니다. 부름을 받은 이의 첫째 특색은 겸손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위대한 사도이면서도 자기 자신은 항상, 자기는 모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사도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다고 하였으며, 사실 그 자신이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겸손은 자기 자신을 바로 살피는 데서 생깁니다. 스스로 속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여실히 보는 이는, 그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약하고 비겁하고 얼마나 부끄러운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할 것입니다.

또 이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살필 때에 더욱 자기 자신을 바로 깨닫고 겸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내 자신을 평가할 때에 누구나 자기 허물과 죄를 깨닫고 겸손하여질 것입니다. 부름을 받아 참으로 자기 자신을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펴본다면 자연히 겸손하여질 것입니다. 겸손은 부름을 받은 이의 마음의 특색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부름을 받은 이들은 “온유하게 행하라”고 권합니다. 이 온유도 겸손과 같이 그리스도의 성품의 특색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실 온유하셨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욕으로 욕을 갚지 아니하셨습니다.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한다”고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온유한 눈이 있습니다. 반면에 사나운 눈이 있습니다. 온유한 말이 있습니다. 반면에 거치른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는 ‘툭해서 다르고 탁해서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온유한 행동이 있습니다. 반면에 포악한 행동이 또한 있습니다.

온유는 약한 것을 의미함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유능승강(柔能勝剛)’이란 말이 있습니다. 온유가 능히 강한 것을 마지막에는 이깁니다. ‘태강즉절(太剛則折)’이란 말도 있습니다. 너무 강하면 스스로 꺾여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임이요” 라고 8복 가운데 하나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승리합니다.

온유는 언제나 분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꼭 옳을 때에만 노를 발합니다. 곧 의를 위하여, 다른 이를 위하여 의분을 발합니다. 그러나 자기 일을 위해서는 분노를 멀리합니다. 온유한 이는 자기의 마음, 자기의 감정, 자기의 행동, 자기의 말,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 아래서 온전히 자제할 줄 아는 분입니다. 부름을 받은 이는 온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부름을 받은 이는 “오래 참아야 한다”고 권합니다. 이 오래 참는다는 말은 두 가지 방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는 어떠한 환경, 어떠한 사물, 어떠한 경험에 있어서든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참고 견딘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고통, 어떠한 고난이 있을지라도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가지고,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기백을 가지고 끝까지 참고 견딘다는 뜻입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전쟁에 패할지라도 절대로 아주 패배하지는 아니하고 끝까지 싸워서 최후에는 승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꾸준히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다른 이가 나를 괴롭히고 부당한 대우를 하나, 또 내가 보복을 하려면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으나, 보복하지 아니하고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악한 무리들에게 무리한 모욕을 당하고, 조소를 당하고, 십자가에 고난까지 당하였으나, 주님은 보복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보복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는 하늘의 권세가 있으나 그는 참으셨습니다. 곧 오래 참으셨습니다. 부름을 받은 이들은 그들을 부른 주님의 본을 배워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오래 참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넷째는,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권합니다. 헬라 말에는 그 때에 ‘사랑’이란 말이 넷이 있었습니다. ‘에로스’라고 하는 말은 남녀간의 사랑, ‘필리아’라고 하는 말은 친구간의 사랑, ‘스톨게’라고 하는 말은 가족간의 사랑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아가페’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사랑은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뜻은 상대방의 여하를 불구하고, 언제나 최대의 선의를 가지고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이유가 그 대상에 있지 아니하고, 곧 사랑스러울 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사랑이 있으므로 누구나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도, 아무리 추한 사람이라도, 죄인일지라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으로 피차에 서로 용납하라고 권합니다.

이상과 같이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해서 주님의 부름을 받은 이들은 이 평안의 매는 줄로, 평화의 매는 줄로 곧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이는 언제나 이렇게 교회의 화평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힘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이상과 같이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의 사람이 될 뿐더러,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들이 또한 있습니다. “아들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일하기 위하여 우리를 그의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므로 추수하기 위해서 우리를 또한 부르신 것입니다. 악마의 권세가 팽배한 이러한 세상에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싸우라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몸입니다. 곧 전도, 교육, 봉사 모든 방면에 주를 위하여 일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특별히 5월은 전도의 달로 정하였습니다. 금년은 특별히 국가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추진시키는 중에도 있습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인이 된 이는 언제나 명령에 순복하며 용감히 나아가 싸울 의무가 있습니다. 부름을 받은 이는 후퇴할 수 없습니다. 중퇴할 수도 없습니다. 도피할 수 없습니다. 부름을 받은 이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지하여 언제나 전진이 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절 이하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야 합니다. 달음질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위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소명감이 철저해야 합니다. 소명감 없는 교역자는 참 교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소명감 없는 장로는 참 장로가 될 수 없습니다. 소명감 없는 집사도 참 집사가 될 수 없습니다. 소명감 없는 교인은 참 교인이 아닙니다. 참으로 부름을 받았으면 내가 부름을 받은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행할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나의 할 일을 마땅히 할 것입니다.

이 소명감이 있으면 범사에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것입니다. 힘써 일할 것입니다. 전도나 봉사나 교육이나 어떤 방면에서든지 주를 위하여,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우리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그 직장에서, 그 일터에서 힘써 일할 것입니다.

이 위대한 목적으로 우리 하나하나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부름을 받은 몸이올시다. 우리 가운데 처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이렇게 교회에 처음으로 나오시게 된 것도 우연히 된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나왔습니다. 이 시간 온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시고,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온전히 영접함으로 온전히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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