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11:1-10/ 아침에 그리고 저녁 / 한경직 목사 2014-08-25 21:21:32 read : 16573
오늘 아침 전도서 11장을 읽었습니다. 전도서 11장 가운데서 세 절을 제가 다시 한 번 읽겠어요. 구약 가지신 분은 찾으시면 고맙겠습니다. 11장 첫절,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11장 4절,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않을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11장 6절,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상의 세 성경 구절은 그 내용과 표현이 다소 다르나, 그러나 또한 공통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거둘 때가 있다고 하는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일을 하면 언젠가는 거기에 대한 보응이 있으리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 동양에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적선지가에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해서 ‘선을 쌓는 집에 반드시 여경이 있다.’ 그런 말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인과응보의 원리를 여기에서 가르쳐 줍니다. 다만 전도서 11장에는 그 원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줍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이 구절들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첫절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여기에서 ‘식물’이란 말은 ‘먹을 것’이란 말입니다. 혹 양식, 떡이란 말입니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고, 그렇게 하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겠다고 말합니다. 얼른 듣기에 좀 이상하지만, 묵상할수록 의미가 심장합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에 문자 그대로 물 위에 종자를 뿌린다고 합니다. 그리하면 물이 점차로 줄어질 때에 싹이 나고 자라서 많은 곡식을 거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벼농사는 다 그러합니다. 물 위에 먹을 것, 종자를 뿌려서 가을에 많은 추수를 합니다. 벼농사를 전혀 보지 못한 사람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울 듯하나 우리는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사실 모든 농사에 이 원리가 통합니다. 무심한 듯한 땅에 종자를 뿌려서 많은 수확을 거둡니다. 요새 우리 한국에서도 ‘자연보호’란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왜 자연을 보호하여야 하는가? 그리해야 자연이 또한 우리를 보호하여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듭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찍기만 하고 심지 아니하면 홍수가 날 때에 산사태가 나서 인간이 해를 받습니다. 자연을 선대하여야 자연이 또한 우리를 선대합니다. 그래서 현대에는 모든 문명한 나라들은 특별히 자연을 보호하는 환경청을 두어서 자연을 여러 가지 면으로 보호하기로 애를 씁니다. 나무뿐 아니고, 새들과 들짐승과 바다의 어족까지 흐르는 강물까지 보호하도록 애를 씁니다. 여기에도 심는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여러분 잘 아는 이야기,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는 특별히 이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흥부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리가 상한 제비를 불쌍히 여겨 잘 싸매어 낫게 해주었더니 그 제비가 한 알의 박씨를 물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박씨를 땅에 심었더니 큰 박이 열렸는데, 그 박을 톱으로 켜보니 뜻밖에 금은보화가 많이 나와서 흥부가 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술궂은 놀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제비의 성한 다리를 일부러 꺾고 그 다음에 싸매어 주었다고 하지요. 그랬더니 이 제비 역시 박씨 종자 한 알을 물어 와서 들에 심어서 큰 박이 열렸습니다. 놀부는 너무 기뻐서 큰 기대를 가지고 그 박을 열어보니 무엇이 나왔다구요?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는 줄 압니다. 이 이상 자연보호에 대한 분명한 교훈이 어디 또 있습니까? 이렇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훈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민족이 자연보호를 게을리한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자연이 무심한 듯하지만, 자연을 선대하여야 자연이 또한 우리를 잘 대접합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 구절을 또 다른 의미로도 좀더 깊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곧 물처럼 무심한 인간, 은혜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한 인간들에게도 식물을 던지라고, 먹을 것을 주라고, 곧 도와주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이런 일에도 언젠가는 좋은 보응이 있으리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무심한 이들에게도 항상 선을 행하고 봉사하라는 뜻이 여기에 또한 있는 줄 생각합니다. 미리 어떤 모양으로 보응이 될는지 물론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보응이 올 것입니다. 왜? 모든 인간은 대자연과 같이 하나님의 지으신 바요,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약 한 달 전에 군대에 가서 순화교육을 받은, 우리 거리에 헤매던 청년들 약 200여 명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같이 드렸습니다. 그때 박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고,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들이 가나안 농군학교에 가서 열흘 동안 기독교 교육을 받고, 그 다음에는 기독교 실업인회, 우리 교계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많이 하는 그 실업인회에서 그들을 맡아서 각 공장과 교섭을 해서 그들에게 직장을 다 알선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권사님이 우리 교회서 점심 대접할 때의 얘기를 합디다. 우리 선교관 아래층에다 음식을 다 차려 놓고, 그들을 다 그리로 인도해서 다 상에 앉았는데, 그리고는 우리 교회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분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기도하고 “아멘” 하고 눈뜨고 보니 상에 있던 음식은 벌써 다 없어졌더랍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인사도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뭐 인사할 감이 없어서 인사 그만 두었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참 거 그저 음식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그런데 제가 며칠 전에 울산에서 어떤 분에게 편지를 한 장 받았습니다. 제가 이제 그 편지 내용을 여기 있는 대로 얼른 읽을 때에 여러분 들어보세요. “한경직 목사님 전상서, 목사님, 하나님의 은총 안에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이곳 순화교육을 마치고 목사님 계시는 영락교회에서 따뜻하니 저희들에게 대해 주시고, 또 박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서 맛있는 식사를 저희들은 배불리 먹고 9월 11일에 가나안 농군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10일 동안 교육이 끝난 뒤로 정동교회에 와서 예배를 보고, 기독실업인과 자매 결연을 맺고, 각 직장으로 분배가 되어서 저는 이곳 현대 중공업에 취업이 되어서 울산에 와서 취업한 지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저는 맡은 바 직장에서 충실히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6?25 때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을 거쳐서 구두닦이, 신문팔이, 소매치기를 직업으로 삼아오다가 교도소를 8번이나 들락날락하였습니다. 최종 마지막으로 강도 상해죄로 검사구형에 10년을 받아서 1심에 5년을 받아서 광주 교도소로 이송되어서 5년형을 받고, 78년 11월 4일에 출소하여 노동을 하다가 상가에서 경비 취업이 되어서 일을 하면서 79년 11월 27일에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받고, 옛 친구가 직장에 찾아와서 꼬이는 바람에 직장 그만두고, 나쁜 친구와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너무 불안해서 자수를 했더니 경찰서 수사 과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교육을 몇 주간 받으라고 하면서 대구 50사단으로 가서 교육을 3주간 받고, 목사님 계시는 영락교회에 갔더니 그렇게 저희들에게 친자식과 같이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이 악물고 돈 좀 벌어서 없는 사람 위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제 나이가 40세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내 목표가 어느 정도가 되면 저에게는 운전면허증도 있으니 차를 사서 운전을 하면서 교회에도 나가고, 없는 사람 편에서 일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과거는 남을 괴롭히면서 살아왔지만, 앞으로 남은 여생은 좋은 여자 만나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하길 목사님께 맹세하면서 끝으로 그곳에 계시는 여러 목사님 이하 교회에서 일하시는 여러 분들께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서종생 올림”
여러분, 그저 그 점심 대접한 다음에 그 기분은 물 위에 식물을 던지는 것 같았지만, 꼭 다 그런 건 아니란 말이오. 제가 믿는 것은 참 그 가운데 대부분은 앞으로 좋은 길을 걷지 않겠나, 또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로 이들을 도와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전도서 11장 4절을 제가 다시 또 읽습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본 구절의 뜻은 풍세(風勢)를 바라보지 말고, 구름이나 혹은 비가 오지 않을까 그런 것을 바라보지 말고, 풍세가 어떠하든지 구름이 아무리 많아도 개의하지 말고 씨를 뿌리라는 말입니다. 바람이 몹시 불든지 먹구름이 덮여서 빗방울이 떨어질지라도 상관하지 말고, 좋은 씨는 계속해서 뿌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후가 어떠하든지 환경이 아무리 어려울 때에도 좋은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거둘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역사 속에 삽니다. 역사란 평화로운 때도 있지만 불안과 공포의 시기도 있습니다. 심지어 무서운 전시, 전쟁의 시기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중동 일대에는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나 많은 인명과 재산이 파괴되는 참혹한 현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이 절대로 확대되지 아니하고 속히 종식되기를 갈망하고 또 기도하는 중입니다.
오늘 이 구절의 교훈은 우리의 사는 환경이 아무리 험악할지라도, 언제나 선의를 가지고 선한 씨를 뿌리라는 권면입니다. 20세기 초엽, 우리나라 정황은 실로 암담하였습니다. 구한국의 운명은 실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당시 많은 지도자들이 낙심하였습니다. 혹은 외국으로 도피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수는 적었지만, 당시의 크리스천들은,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 결과로 당시 작은 교회가 큰 은혜를 받아서 100만 명 전도운동이 그런 암흑한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 역사상 유명한 1907년 대부흥입니다. 곧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이 전국에 퍼져서 100만 명 구령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초대 교회는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암흑한 밤에 신앙과 소망의 횃불을 높이 든 것입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씨를 용감하게 뿌렸습니다. 소망의 씨를 도처에 뿌렸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암흑하여도 좋은 씨는 뿌려야 합니다.
바로 지난 주일 제가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 영락교회에서는 7억을 들여서 부산에서 제일 큰 예배당을 짓는 중인데, 수개월 이내로 완성될 것입니다. 제가 새로 짓는 예배당을 들어가 구경하면서 제 마음에 들어온 한 가지 느낌은 6?25때에 거기에 피난 간 그 가난한 교우들이 그러한 때에라도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큰 성전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오늘 벌어 내일 먹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이 푼푼이 모아 예배당 기지를 사고 몸에 지니고 있던 금붙이까지도 모두 바쳐서 작은 교회라도 세웠기에 오늘의 이 큰 교회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입니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좋은 일은 해야 합니다. 복음의 씨는 뿌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6절 제가 다시 읽어요.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하루에는 아침과 저녁이 있습니다. 여기의 교훈은 아침에 물론 씨를 뿌리고 그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좀 피곤하나 계속해서 좋은 씨를 뿌리라고 권면합니다. 하루의 생활도 그렇게 하여야지요.
그러나 여기는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인간의 일생을 하루로 본다면 인간의 일생에도 아침과 저녁이 있습니다. 젊을 때는 인생의 아침입니다. 늙을 때는 인생의 저녁입니다. 황혼기입니다. 젊었을 때에 물론 많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온 정력을 다 바쳐서 일해야지요.
그러나 여기의 교훈을 자세히 들으세요. 저녁에도, 인생의 저녁에도, 곧 점점 노쇠하여질 때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좋은 씨는 죽을 때까지 뿌려야 합니다. 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때는 아침과 같습니다. 그러나 병나고 약할 때는 저녁과 비슷합니다. 건강할 때뿐 아니고, 병으로 약하여질 때에도 좋은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할 때는 아침입니다. 그러나 사업이 기울어지고 실패에 가까워질 때에는 저녁과 같습니다. 성공의 아침에 물론 많은 씨를 뿌려야 하지요. 그러나 모든 것이 부진하는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기분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어떤 때에든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저녁에도 선한 씨를 뿌리라고 권면합니다.
뿌리는 씨에 대하여는 물론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씨, 복음의 씨를 우선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봉사의 씨, 언제나 선의를 가지고 사는 선의의 씨, 어디서나 화평의 씨, 그리고 빛나는 소망의 씨를 우리 크리스천들은 항상 뿌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많은 추수를 할 때가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십니다.
인간은 길을 가는 한 나그네입니다. 지나가는 길가에 꽃씨를 뿌리면 내가 지나간 후에 그 길은 꽃으로 덮일 것입니다. 그러나 찔레의 씨를, 가시 찔레의 씨를 뿌리면 내가 지나온 그 길에 찔레가 덮일 뿐입니다. 또 우리가 한 사회, 한 나라를 생각할 때에 꽃씨를 뿌리며 가는 이들이 많으면 그 사회와 나라는 명랑하고 번영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찔레의 씨를 뿌리는 이가 많으면 그 사회는 어둡고, 그 나라의 앞길은 대단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나는 무슨 씨를 뿌리며 인생길을 걸어가는가? 반성하여 볼 만한 일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진리의 씨, 복음의 씨, 언제나 사랑과 봉사의 씨, 화평의 씨, 소망의 씨를 어디서나 우리는 뿌리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아침에 물론 열심으로 뿌려야죠. 그러나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는 마십시다. 시편 126편 5절과 6절을 읽을 때에 들으세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대로 됩니다.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아침에 그리고 저녁에 계속해서 씨를 뿌리라고 하는 간절한 권면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명심해서 우리가 하루하루의 생활을 하여 나갈 때에 어떻든지 아름다운 씨를 뿌리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것은 내 마음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임재하실 때에 가능한 일이오니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 마음 속에 임재하셔서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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