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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5:1-15/ 우리의 눈물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45:27   read : 16856

이미 읽은 창세기 45장에서 14절 다시 읽습니다.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애굽에서 여러 해 후에 자기 동생 베냐민을 만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목을 안고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지난 주간에 TV를 통해서 혹은 직접 여의도 광장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지난 주간이야말로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실로 감격적인 주간이었습니다. 여의도 광장은 문자 그대로 눈물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눈물은 몇몇 개인의 눈물이라기보다 사실 우리 민족 전체의 눈물이었습니다. 6?25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고, 그 아픔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메이게 합니다. 골육상쟁의 참화가 아직도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 민족은 아직도 이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의 깊은 정이요, 실로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한 혈통을 받은 우리 민족은 언제나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 공산당의 태도는 실로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북한에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에게 서로 만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우리 ‘대한적십자사’에서 회담을 제의하였으나 여전히 거부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목석(木石)이 아닐진대 누구나 인정과 눈물이 있는데,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공산주의 사상의 그 냉혹성과 그 인간성과 잔학성에 실로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인정과 천륜을 짓밟는 공산주의의 그 죄악성을 우리는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냉혹한 사실은 이 붉은 마수는 38선 이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월남과 세계 각처에 흩어진 월남 난민의 이산가족의 수가 얼마나 많을까? 상상만 하여도 실로 몸서리쳐집니다. 그들의 이산가족들은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실로 눈물 없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소련의 강점으로 국권을 잃어버린 아프카니스탄의 국민과 해외로 도피한 그 피난민들의 이산가족을 생각할 때에 또한 상상만 해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프리카 검은 대륙에도 공산 마수의 움직임으로 같은 운명을 당한 나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또 요사이에도 신문에 종종 나는 대로 중남미에도 이 붉은 마수의 준동으로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눈물을 뿌리는 국민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여 볼 때에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말하자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또한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창세기 45장에는 오래 흩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아마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이산가족 재회의 이야기인 듯합니다. 그것은 곧 야곱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야곱은 아들을 열두 형제나 둔 다복한 아버지였습니다. 그 열두 형제 중에 요셉은 열한 번째 아들로서 특별히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채색 옷도 지어 입혔고, 흔히 측근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또 여러분 아시는 대로 요셉은 천성이 착할 뿐더러 꿈의 소년으로서 이상한 꿈도 종종 꾸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추수의 꿈을 꾸었는데, 자기의 묶은 단은 일어섰고 형들의 묶은 단은 그 앞에 와서 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 앞에 나와 절하는 꿈도 꾸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자연히 어린 요셉은 이복형들의, 배다른 형들의 시기를 받게 되었는데, 여러분 아마 기억하시는 대로 한번은 그 형들이 멀리 세겜이란 곳에 가서 양을 칠 때에 요셉은 점심을 싸가지고 그들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그 형들은 요셉의 오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나서 처음에는 요셉을 아예 죽여 버리려고 깊은 구렁텅이에 잡아넣었다가 마침 애굽으로 장사하러 가는 미디안 대상을 만나 돈을 받고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채색 옷은 벗겨서 양을 잡아 그 피를 묻혀서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그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통곡하였고, 그 주름 잡힌 얼굴에 눈물이 마를 줄 몰랐습니다. 이것도 골육상쟁의 비극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 대로 요셉은 애굽에 끌려가 보디발이라고 하는 애굽 나라 시위대 장관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였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종의 몸이나 청결과 정직의 생활로써 주인의 신임을 받아 마침내 그 집의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또한 무서운 정욕의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곧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매일 유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청년 요셉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유혹을 담대히 물리쳤는데, 그 결과는 오히려 간악한 그 여자의 미움을 받아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험로임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오히려 이런 것들이 모두 합해서 전화위복이 되어 경건하고 지혜 있는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장차 올 흉년을 대비하여 많은 곡식을 비축하는 현명한 경제 정책으로써 당시 애굽을 가장 풍요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위로는 바로를 비롯해서 아래로는 모든 국민에게 가장 신임과 존경을 받는 명재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남아 있던 그 형들의 형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론 그들도 생활을 위해서 열심히 일도 했을 것이고, 양도 열심히 치고 농사도 부지런히 한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온 가나안 지방에 해마다 거듭되는 큰 가뭄으로 인하여 목장의 풀은 마르고, 밭에 심은 곡식은 결실을 못하게 되자 무서운 기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멀리 애굽 나라에는 곡식이 풍부하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 그 형들이 수천 리 길을 약대를 몰고 애굽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되어 이들은 멀리 애굽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자기 동생을 뜻밖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형들은 요셉임을 알게 되자 과거의 죄로 말미암아 벌벌 떤 것뿐입니다. 그러나 착하고 너그러운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였고, 대성통곡으로서 오히려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기의 동복(同腹) 동생인 베냐민과 서로 목을 안고 크게 울었다고 여기에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에 곧 수레를 보내어 자기의 늙은 아버지 야곱을 애굽에까지 모셔왔습니다. 당시 야곱은 연세가 130세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죽었던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오직 뜨거운 눈물이 그 주름 잡힌 얼굴을 적실 뿐이었습니다. 오래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나는 눈물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오늘날 여의도 광장에서 벌어지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옛날에 일어난 이 이야기와 이 시대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사건과는 실로 공통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첫째는, 다 같이 골육상쟁으로 이러한 가정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요셉을 죽이려 하였고, 마지막에는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똑같이 6?25 사변은 같은 형제로서 공산주의 사상을 품은 도당이 적화의 야욕을 가지고 같은 동포를 총과 칼로 살해하며,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을 쑥밭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38 이남의 우리 남한은 그러한 큰 재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정돈되고, 경제가 부흥하고 생활이 안정되며 문화를 다시 꽃피우기 시작합니다. 그 배후에는 물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있었고, 또한 교회를 통한 민족적 사기와 사회정화를 위한 모든 노력이 그러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상황은 어떠한가? 그들도 물론 경제 부흥을 위해 국민에게 밤낮 고역을 강요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신문에 보도되는 대로 그들은 외채를 갚지 못해서 국제적으로 부도를 내었다고 합니다. 소위 외교관들이 밀수를 하다가 추방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합니다. 아직도 국민은 헐벗고 굶주리며 대부분 옥수수의 배급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그곳에서 내려온 동포들이 증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연 축복하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필경 요셉의 형들처럼 우리 남한에 구걸하러 내려올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게 될 때에야 회담에도 응하게 될 것이고, 이산 형제도 만날 기회를 줄 것이고, 온 민족이 갈망하는 평화통일도 이루어질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 남한 동포들은 일치단결하여 과거도 그러하였지만, 앞으로 더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으로 우리 국력을 크게 길러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노력에 정신적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정신적인 기초가 튼튼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실제 생활에 다른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살아야 하며, 또 민족복음화를 완성키 위해서 우리의 힘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기독교회의 사명이 여기 있음을 우리는 일시라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이것만이 남북 대화와 종국적인 평화통일을 촉진케 할 것이 아닙니까?

깊이 생각하여 보면, 이 세상은 실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눈물로 오고, 세상을 이별할 때에 또한 눈물로 떠나갑니다. 또 그 중간에 이렇듯 많은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편 84편에 기록된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이 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참된 신앙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이들은 눈물의 골짜기라도 생명과 행복의 샘터로 변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의 생활을 잠깐 상기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난과 핍박을 그 삶에서 받았습니까? 그가 친히 기록한 대로 고린도후서 11장에 있는 말씀이올시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실제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모든 형제들에게 편지할 때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외쳤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사망의 골짜기를 생명과 행복과 기쁨의 샘터로 변케 하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눈물의 골짜기 같은 세상을 행복과 승리의 샘터로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적인 생활이 여기 있습니다.

다시 이산가족들을 생각하여 보세요. 우리 모두가 우리 정부를 비롯해서 방송국과 모든 사회단체가 어떻든지 이산가족이 다시 모이기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면, 아마 남한에 있는 흩어진 가족들은 대부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 가운데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온 민족을 비롯해서 정부와 우리 사회단체와 우리 모두 힘을 모아서 계속해서 노력하면 비록 더딜 터이지만,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모두 다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지 않을까 두려워요.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는 마십시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흩어진 가족들이 모두 만날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곧 우리가 늘 앙망하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우리 흩어졌던 모든 가족이 모두 다시 만납니다. 그때에는 눈물로 만날 것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찬송으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만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말씀을 들어보세요.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요한계시록 21장 4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눈물은 결국은 찬송과 할렐루야로 끝을 맺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시적 축복은 말할 것도 없고, 영원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또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임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6?25 사변으로 말미암아 30여 년간이나 소식을 모르고 살던 우리 많은 이산가족들이 지난 6?25를 계기로 해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이런 축복을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귀한 운동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앞으로 흩어졌던 가족이 어떻든지 다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시며, 아직까지 우리 사람의 생각에 언제 열릴지 모르지만 우리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들도 어서 속히 다시 만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해서 이 땅에 6?25의 상처를 온전히 씻겨 주시고 우리 5천만 민족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새 나라를 이곳에 세우고 다 같이 한 가족으로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러한 나라로 축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모든 말씀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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