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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5:1-11/ 겸 손 / 한경직 목사 2014-08-23 17:06:39 read : 15539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五ㆍ五)
여기에 간단한 세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 서로 겸손으로서 허리를 동이라. 둘째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이올시다.
먼저 첫째 권면을 생각하십시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겸손에 대한 권면이 많습니다. 야고보 四장 十절에도『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잠언 十六장 十九절『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은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 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했고
미가서 六장 八절에는『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냐?』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산상보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실 때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했고 마태복음 十一장 二十八절에는『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했습니다.
누가복음 四장 十一절에도『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했고,
사도 바울도 로마서 十二장 三절에, 로마는 十一장까지는 교리편이요 十二장 이후는 기독교 윤리편입니다. 여기에 제일 먼저 있는 말씀이 이 말씀이올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겸손한 생각을 품으란 말입니다.『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했습니다.
혹은 에베소 四장 첫 절에, 에베소서는 三장까지가 기독교 교리편이고 四장부터는 기독교 윤리에 대한 교훈인데,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함과 온유로 하고』했습니다.
주목하여 기억하십시다.
성경은 겸손을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은 겸손을 최고의 덕으로 가르쳐 줍니다.
우리 동양에는 옛날부터 삼덕(三德)을 말합니다. 지, 인, 용(知ㆍ仁ㆍ勇), 지혜, 어진 것, 용기입니다. 겸손이란 말은 별로 없습니다. 여기 서양, 특별히 헬라의 윤리사상을 보면 이 셋에다 하나를 더 가합니다. 절제를 가합니다. 사덕(四德)을 말합니다. 그러나 겸손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제일 먼저 겸손을 가장 귀한 덕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가르치신 것만 아니고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겸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에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친히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겸손의 도, 종의 도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지상 생활 전체가,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지상 생활 전체가 겸손에 대한 산 교훈입니다.
빌립보 五장 二절 이하를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서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낮추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겸손을 친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겸손을 최고의 덕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둘째 교훈을 생각하십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옛날 파사의 재상 하만이 교만해서 유대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인사를 잘 안 한다고 그 삶과 그 사람의 가족뿐 아니라 온 유대사람을 학살하려는 음모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자기가 모르드개를 매어 달려든 기둥에 매어 달려 죽은 얘기를 에스더에서 여러분이 다 읽어보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다니엘을 보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교만해서 자기 궁전 높은 꼭대기에 올라 가 궁중을 내려다보며 내 능력의 지혜로 이 모든 성을 건설한 것이 아니냐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 말을 한지 얼마 안 되어서 느브갓네살 왕의 정신이 나갔습니다. 미쳤습니다. 들로 나가서 소처럼 풀을 먹고 그 머리털이 독수리 머리털처럼 되었다 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전에 벨사살 왕이 교만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쓰던 거룩한 기명을 내다가 술을 마셨습니다. 천여 명의 고관대작들을 모아다가 연회를 합니다. 먹고 마십니다. 그 날 저녁으로 메데와 파사의 연합군이 들어와서 벨사살 왕은 죽고 온 나라는 망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리됐다고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사도행전 十二장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거기 처음에 보면 그 때의 왕 헤롯이 요한 의 형 야고보를 칼로 죽였단 말입니다. 마지막에 보면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거짓 영광을 받은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면 무슨 얘기가 있는지 압니까? 주님의 사자가 치니 『충 먹어 죽으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지금부터 약 백년 전에 독일에 니이체라는 사람, 초인간(超人間)의 사상을 선전하면서 기독교 사상은 노예 도덕이라고 기독교는 노예 종교라고 비웃었습니다. 후에 어떻게 됐는지 압니까? 니이체도 후에 정신이 빠져서 미쳐서 죽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바로 최근 二十세기에 들어와서 독일의 히틀러 같은 사람은 바로 니이체의 사상을 정치에 인용해서 독일 민족만은 초인간적 민족이라고 주장하며 유대 사람 六백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큰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어떻게 됐는지 여러분이 다 잘 아십니다. 왜 그렇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적게 교만한 자를 적게 대적하시고 크게 교만한 자는 크게 대적하십니다. 반드시 대적의 결과를 받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아닙니다. 사실 교만한 자는 사람들도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잠언 十六장 十八절에는『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 잽이니라』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사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만 죄의 어머니입니다. 교만함으로써 많은 다른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셋째의 교훈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낮은 곳에 물이 모입니다. 겸손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모입니다. 낮은 골짜기에 이슬이 많이 내립니다.
바람 많이 부는 산꼭대기에 이슬이 내리지 못합니다. 겸손한 마음에 은혜의 이슬이 내립니다. 병은 비어야 기름을 넣을 수가 있습니다. 겸손한 빈 마음에라야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五十七장 十五절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가 읽어봅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蘇醒)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 캐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겸손한 자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같이 해서 그 마음을 소성케 하십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으면 위대한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도 제일 위대한 인물이 누굴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마도 모세일 것입니다. 모세는 아주 겸손하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신약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일까요 혹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아마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자기는 죄인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교만한 자의 기도는 물리치십니다.
그래서 바리새교인이 성전에 들어가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한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한 과학자가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이자크 뉴우톤의 유명한 얘기를 여러분이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내가 이 우주에 대한 진리, 우주의 진리에 대한 나의 지식이란 저 바닷가에서 자갈돌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한 지식을 가진 것보다 더 적을 거라고, 혹 비슷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는 겸손합니다.
그러므로 유명한 교부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요, 어머니요, 기초이다.』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 생활에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
어떤 늙은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지식이 너무 적어서 성경을 그저 그대로 읽었다. 그러다가 대학과 신학에 가서, 철학을 배우고 비교 종교학을 배우고 성경 비판 학을 배우게 될 때에 지식이 너무 많아져서 성경을 그대로 못 믿었다. 그러다가 지금 와서는 내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아서 이제는 거저 성경 그대로 믿는다.』
전엔 아프리카의 유명한 선교 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처음으로 지을 때 손수 일을 하면서 병원을 지었습니다. 그 옆에 흑인 청년이 하나 거저 서 있습니다. 거저 서 있을 것이 아니라 나하고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다.
그 때 이 흑인이『나는 그런 일 안 합니다. 나는 공부한 사람인데 그런 일은 안 합니다. 일은 공부 안 한 사람이나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하는 말이 나도 학생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소 그러나 공부를 많이 한 다음에는 아무 일이나 다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여자는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소제하기도 싫어하고 그릇 씻기도 싫어한다는 얘기가 혹 들립니다
사실 어떤 분야 대학 출신인 까닭에 취직 못하는 이가 더러 있습니다. 대학 출신으로 막일이야 할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나 하실 수 있으리 만큼 공부를 더 하시오. 공부를 많이 할수록 겸손해집니다.
열매 하나도 없는 가라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습니다. 열매 많은 벼이삭은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가 숙여지리만큼 공부를 더해야 합니다.
단테의 신곡 가운데 단테가 한번은 연옥에 가서 구경을 합니다. 한 구석에 가보니 여러 사람들이 뒷등에다 무거운 돌을 가득 지고 서 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무거운 돌을 지고 서 있습니까?』
그 대답하는 말은『저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에 너무 교만해서 허리를 굽혀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낙원에 올라가는 문은 낮아서 허리를 굽혀야겠기에 그 연습을 하느라고 저 모양입니다.』 거, 미리 허리 좀 굽히는 것을 배웠다면 얼마나 좋을 법했습니까.
사실 어떤 분은 너무 교만해서 예수를 못 믿는 분도 있습니다. 아, 예배당에 가보니까 여자들도 오고 무식한 자들도 오고 아이들도 모이는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델 가서 앉았단 말이오. 박사들과 장관들이 혹 모였다면 또 모르지만 합니다.
교만해서 남의 공로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니, 내 공로로 구원을 얻어야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한 이의 특색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소극적으로 보면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겸손한 사람은 너무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습니다.
넷째로 겸손한 사람은 불평이나 원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나 사람에게 대해서나 불평을 안 합니다.
적극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순복을 잘 합니다. 겸손한 학생이 학교 규칙을 잘 지킵니다. 겸손한 교인이 교회의 법을 지킵니다.
겸손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어디를 가나 봉사합니다. 종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이것도 감사하지, 거저 감사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이 알아주던 몰라주던지 거저 마음이 늘 평안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색이 어떤지 압니까? 거저 이와 정반대입니다.
겸손의 첫걸음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내 교만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교만합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속담에『제 잘난 재미에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만합니다.
이걸 깨닫고『나는 교만합니다. 이 죄를 사해 주세요』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직면해서 나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전에 욥이 의인이지만 큰 환난 당할 때에 불평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면해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내가 잘못한 것이 많습니다 고 통회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예배하다가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환상 가운데 직면하게 될 때, 제일 먼저 나온 말이 무엇인지 압니까?
『화로다 나여, 나는 입술이 더러운 죄인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음이라』고 죄를 회개했습니다. 바울이 회개하기 이전에 다메섹으로 내려갈 때에는 아주 교만한 젊은이였습니다. 다메섹을 거의 가서 환상가운데 예수 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꿇어 엎디었습니다.『내가 무엇을 하오리까?』
그 다음부터는 겸손해졌습니다.
기억하십시다. 교만은 만 죄의 근본이요, 죄의 어머니올시다. 겸손은 모든 덕의, 만 덕의 어머니요, 근본이올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으로 우리의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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