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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4:10/ 선한 청지기 / 한경직 목사 2014-08-23 17:05:17 read : 15813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四․十)
여기 청지기란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청지기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오 인간은 그의 것을 맡은 청지기라 하는 이 청지기 사상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 이론 혹은 생활 철학이올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선한 청지기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해서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깨달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청년들은 그 뜻을 잘 모르는 이들도 있을 줄 압니다. 창세기 十五장 二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집에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란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종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집에 있으면서 신용을 얻어서 그 전 재산을 관리하였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할 때 아브라함은 그를 불러서 멀리 메소포타미아에 보내서 아브라함의 혈족 가운데서 이삭의 아내 리부가를 데려 오게 하였습니다.
옛날 이런 사람을 청지기라 하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종이지만 그 가정의 청지기 책임이 이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三十장에 볼 것이면 야곱이 젊어서 자기 외삼촌 집에 가서 라반을 위해서 일할 때 신용을 얻어서 그 모든 소유를 관리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위로서 그 가정의 청지기 노릇을 한 것이올시다. 창세기 三十九장에 볼 것이면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애굽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갔었는데 모든 일을 신용 있게 하니까 그가 가정 총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역시 청지기란 말입니다.
여기에도 종으로서 청지기가 된 예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 누가복음 八장 三절에 보면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주님과 제자들의 쓸 것을 봉사하던 여러분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라 하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헤롯왕의 집에 청지기가 이었고 그 사람의 이름은 구사요 그 사람의 아내 요안나가 주님을 잘 믿고 주님을 도왔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보니 신약 시대에도 청지기 제도가 있는 모양입니다. 청지기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인가?
간단히 말하면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대신 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한국에도 옛날 부자들이 자기 집에 청지기를 두어서 대신 관리를 시킨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청지기란 말이 생긴 것입니다.
성경이 교훈 하는 청지기 사상이란 어떤 사상입니까? 그것은 깊은 의미에서 인간은 다 하나님의 청지기다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주인과 청지기와의 관계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은 사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인간이 잠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뿐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 뜻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오 그러므로 만민의 소유자이시오 그러므로 만물을 인간에게 주시는 수여자이신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 一장 一절을 기억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十九장 五절에 보면 "세계가 내게 속하였느니라" 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二十四편 一절에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시편 五十편 十절에는 "산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임이라"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학개 二장 八절에 볼 것이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겄이라" 고 하여 금은 보화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준 것입니다. 레위기 二十五장 二十三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것이란 말입니다.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寓居)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토지의 영원 방매를 금지한 것은 근본적으로 토지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十八장 四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든 영혼이 내게 속한다." 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자연계에 속한 모든 것과 토지, 재산, 우리의 생명 자체까지가 근본적으로 다 하나님께 속하고 인간은 이것을 잠깐 맡아서 사용하는 청지기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다 하나님의 것이요 나는 임시로 맡아 사용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상은 자연 신학의 견지에서 온 인류가 오직 청지기뿐이라고 하는 것을 지적한 교훈이올시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의 견지에서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곧 구속의 의미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고린도 전서 六장 十九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우리의 몸까지 십자가의 보혈로 값을 주고 산 바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의미에서도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속하고 구속의 의미에서도 이 몸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지기뿐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四장 七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내게 있는 재주, 지식, 기술, 지위, 물질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역대 상 十九장 十四절에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했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아 왔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때 실상 그것은 내 것이 아니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도로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드린 다음에 그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뿐이지 내가 내 이름을 얻으려 힘 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오, 인간은 그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첫째 청지기는 모든 일에 주인의 뜻을 살펴서 그 뜻에 순복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올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면 무엇이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맡긴 것을 바로 살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주도 기술도 지식도 지위도 재물도 모든 것을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령 여기에 장사하는 두 분이 있다고 합시다. 추석 대목에 장사를 잘해서 두 분이 十만 원씩 남겼다고 합시다. 한 분은 돈 十만 원을 앞에 놓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석을 기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十만 원을 새로 맡기셨고 성경에 보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했는데 내가 이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내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잘 생각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쓸 것을 작정하고 씁니다.
다른 한 분은 十만 원을 놓고서 생각하기를 "운이 좋아서 十만 원이 생겼구먼. 내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남은 텔레비전이 있는데 우리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텔레비전을 사야 되지 않겠나? 새로운 천이 많이 나오는데 새로운 양복을 해 입어야 되지 않겠나? 집사람이 옷을 해달라는데 새 치마 새 옷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딸은 매일 미니 스커트 해달라는데 그것도 한 벌 해주어야 되지 않겠는가?ꡕ 이렇게 다 쓰고 나니 돈이 한푼도 없습니다. 마침 그 다음에 주일날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봅니다. 헌금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 찾아보니 어디서 十원 짜리 구겨지고 찢어진 것 하나가 나왔단 말입니다. "옳다 됐다. 이것을 쥐고 있다가 얼른 집어넣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겠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가지 좋은 것은 헌금 주머니가 깊숙해서 얼른 넣으면 어느 누구도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못 보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어떤 때는 내 귀에도 "아무개 할머니는 부잣집 할머니인데 가만히 보니까 十원 짜리만 넣어요." 이런 이야기가 들립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보, 남은 얼마를 했든지 당신이나 하나님 앞에 헌금을 바로 하세요." 속담에 불견정식(不見淨食)이란 말이 있지요. 음식이란 보지 않으면 정한 음식이란 말입니다.
불견정성(不見精誠)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보지 않으면 다 정성으로 넣는 줄 알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남의 것을 보려고 합니까? 꼭 같이 十만 원을 남겼습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선한 청지기며 누가 악한 청지기입니까? 재물만 그런 거이 아닙니다. 재주도 그렇습니다.
꼭 같이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주를 가지고 거룩한 그림을 그립니다. 한번 보아서 사람의 심령을 높은 자리로 끌어올릴 만한 품위 높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꼭 같은 재주 가지고도 천한 그림이나 그립니다. 꼭 같이 좋은 성악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좋은 음성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그 음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한번 들으면 그 사람의 높은 자리로 승화시키는 귀한 노래를 부릅니다. 꼭 같은 음성을 받았지마는 어떤 사람은 천한 유행가밖에는 부를 줄 모릅니다.
선한 청직(廳直)이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가 되려고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내가 받은 선물을 쓸 줄 알아야 됩니다. 누가복음 十六장에 볼 것이면 불의 한 청지기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얼마나 불의 했던지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그 기미를 알고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더 큰 재주를 부렸습니다. 주인한데 빚진 자를 다 모아다 놓고 "당신은 주인한데 얼마나 빚 졌소?" 하고 물어서 "저는 기름 백 말을 졌어요" 하면 "그것을 지우고 五十말로 쓰시오." 이렇게 문서를 위조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졌소?"저는 밀 백 석을 졌어요." "그것을 지우고 八十 석 졌다고 쓰시오." 문서를 위조합니다. 불의하 청지기입니다. 이러한 불의한 청지기가 옛날만 있은 줄 압니까? 어제도 있고 오늘날도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청지기인데 조심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내 소욕(所欲)대로 내 뜻대로 잘못 쓰게 되면 우리도 불의 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쓸 때에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억할 것이 꼭 하나 더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四장 二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맡은 자란 말은 청지기란 말입니다. 청지기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란 말입니다. 충성되어야 선한 청지기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청지기가 되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충성된 청지기가 되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졸면 아니 됩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二十五장에 있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를 다 기억하시지요? 어떤 주인이 먼 여행을 갈 때에 종을 불러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각각 나누어 맡기면서 주인이 떠나 있는 동안에 장사를 하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얼마 후에 와서 회계할 때에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은 두 달란트 더 남겼습니다. 주인이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장사하지 아니하고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 그냥 가져다가 주인에게 바쳤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한 달란트를 도로 빼앗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라" 고 했습니다. 선한 청지기가 되려고 하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 책임을 바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모든 직분과 책임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셋째로 청지기는 남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인에게 돌아가서 어떻게 그것을 사용했는지 회계할 때가 꼭 돌아옵니다. 셈을 할 때가 옵니다. 이것을 심판이라고도 합니다. 부분적 셈과 심판은 이 세상에서도 종종 있습니다.
내세에 심판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리 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앞에서도 종종 심판을 내립니다. 셈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건강을 바로 쓰지 아니할 때 혹 하나님께서 건강을 거두실 때가 있습니다.
재물을 바로 쓰지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 그 재물을 거두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온전한 심판은 내세에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五장 十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니라." 행한 것을 따라 갚음을 받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四장을 읽어보면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으로서 앗수르를 정복하고 온 근동 일대를 통일한 세력을 가진 왕입니다. 이 왕은 내 능력과 내 지혜로 이렇게 큰 나라를 건설했다고 자랑하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이 채 끝나자마자 하나님께서 그 왕의 총명을 빼앗았다고 했습니다. 정신을 빼앗았습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정신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궁에서 뛰어나가서 들에서 살면서 소처럼 풀만 먹었습니다. 이렇게 七년 동안에 그 머리털 이 독수리 털처럼 되었다고 그랬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청지기 책임을 바로 하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께서 혹 이렇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총명, 우리의 이성, 우리의 정신, 우리의 권세, 이런 것도 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十二장에 볼 것이면 유명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농사가 너무 잘 되어서 곡식을 쌓아 둘 곳간이 작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곡간을 더 크게 짖고, 곡식을 가득히 쌓아 놓은 다음 "내 영혼아 잘먹고 잘 놀고 평안히 쉬어라." 이렇게 혼자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재산도 잠시 맡기신 것뿐입니다,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청지기올시다. 선한 청지기가 될 수도 있고 악한 청지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의로운 청지기가 될 수도 있고 불의 한 청지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충성된 청지기가 될 수도 있고 게으른 청지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청지기가 될 수도 있고 미련한 청지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청지기를 축복하십니다. 많은 것으로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소유라도 충성된 청지기에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청지기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더하여지는 것입니다. 여기 앉은 청년들은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올 것입니다.
여기 앉으신 여러 장년들도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책임이 중합니다. 여러분께서 청지기의 직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교회와 여러분의 국가가 꼭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앉으신 여러 노인님들도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만날 날이 멀지 아니합니다. 우리 모두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금생과 내생에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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