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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10/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 한경직 목사 2014-08-23 07:22:36 read : 16061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이는 자명(自明)의 진리입니다. 또 이것은 자연계의 한 법칙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 도덕적 세계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둡니다.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체로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둡니다. 이것은 도덕의 법칙입니다. 이렇게 자연계에는 자연 법칙에 따라서 만상이 운행됩니다. 영계에는 도덕적 법칙이 있어서 만인의 운명을 지배합니다.
이 법칙 우주에 사는 인간이 그 일생을 바로 살려면 이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에 대하여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이 우주에 이런 법칙이 있다는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연의 법칙이 있고 도덕의 법칙이 있는 줄을 알고 하나하나 이 법칙을 찾아냄으로써 모든 것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가령 인력(引力) 혹은 중력(重力)의 법칙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뉴우톤이 이것을 분명히 발견한 데서부터 과학이 크게 발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법칙을 알지 못하고는 건축가가 될 수 없습니다.
비행기나 우주선의 고안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조정사가 될 수도 없습니다. 현대 문명의 모든 새로운 발명품들, 전신이나 전화를 비롯해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나 전자 계산기에 이르기까지 자연 법칙을 분명히 알고 그 원칙에 의지해서 제작이 되었고 그 법칙에 의지해서 운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칙을 잘 알고 그대로 사는 이가 과연 문화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에도 역시 도덕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법칙도 물론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특별히 인간의 양심에 계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칙들을 좀 더 분명히 발견해서 가르친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우리 동양에서는 흔히 성현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자(孔子)나 맹자(孟子)같은 이가 그러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동양에 있어서 이 도덕의 법칙을 먼저 깨닫고 오고 오는 세대에 가르친 사람들입니다. 옛날 서양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흔히 철학자라고 불렀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들이 다 그런 이들입니다. 이들은 서양에서 이런 법칙을 누구보다도 먼저 분명히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특별히 유대 나라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일들을 선지자들이 하였습니다.
가령 모세나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내신 도덕의 법칙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의 견지에서 이 도덕의 법칙을 깨달은 대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은 못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부분적으로 발견하고 부분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법칙을 가장 완전히 나타내시고 가르치신 이가 있습니다.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산상보훈을 비롯한 그 모든 교훈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도덕의 법칙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활을 통해서 가장 완전한 도덕적 생활을 직접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선 도덕의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또 이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옳게 생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의 법칙을 알아야 하고 또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현대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의 생활 모습이 큰 변혁을 일으킨 것이 사실입니다.
교통이나 통신이나 생산의 수단을 비롯해서 주택이나 의복에 이르기까지 큰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무조건 다 변화하는 줄로 오해하는 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이 세상에서는 변한다는 것 이외에는 다 변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관찰입니다.
아침과 저녁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치 아니합니다. 밤과 낮도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치 아니합니다. 춘하추동 사계의 순환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 법칙은 변치 않습니다. 꼭 마찬가지로 도덕의 법칙도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치 아니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육체를 따라 심으면 육체로 말미암아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정욕으로 심으면 음란과 가정의 파탄으로 거둘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악으로, 불의를 심으면 불의로, 미움을 심으면 미움으로, 거짓을 심으면 거짓으로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전에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더니 그 후 자기 아들에게 자신도 속았습니다. 전에 이세벨이 무고한 나붓의 피를 흘리더니 그 후 자기의 피가 또한 흘림을 받은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심으면 반드시 영생으로 거둡니다. 선으로 심으면 선으로 거둡니다. 덕으로 심으면 덕으로, 의로 심으면 의로, 사랑으로 심으면 사랑으로, 진실로 심으면 진실로 거둘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전에 요셉이 어디를 가나 덕으로 심더니 결국은 덕으로 거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양에도 유음덕이면 필유양보(有陰德必有讓步)란 말이 있습니다. 숨은 덕이 있는 곳에 양보가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적선지가에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도 있습니다. 선을 쌓는 집에 여경이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연의 법칙이나 도덕의 법칙은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생활 양식이 변한다고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릇된 시대 사조에 미혹되지 아니해야 합니다.
셋째로 반드시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대로 준행(遵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내가 나를 스스로 속이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작년에 일어난 와우 아파트 사건을 지금도 뼈저리게 기억합니다. 시멘트가 온전히 돌로 굳어지는데는 일정한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과 물의 배합이 꼭 이 자연 법칙대로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연 법칙을 순종치 않은 결과로 큰 참화를 우리 동포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 법칙을 속이지 못합니다. 자연 법칙을 속이려고 하면 결국 내게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끔찍한 교통 사고가 너무나 빈번히 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남영호 사건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이런 참혹한 사건도 결국은 인간이 자연 법칙을 무시한 데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배마다 정원 제도가 잇는 것은 일정한 톤 수의 배는 일정한 인원밖에 안전히 운행할 수 없다는 자연 법칙에 의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무관심, 부주의로 이 법칙을 무시하여 결국은 이러한 참화를 빚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자연 법칙을 어기는 것은 결국 자기가 손해를 받고 자기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수항의 질자호 사건, 혹은 충남에서 인천으로 오던 신흥호 사건 등을 보면 우리 국민이 아직도 이 자연 법칙을 순복해야 한다고 하는 인식이 얼마나 부족하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배들이 모두 승객의 정원을 초과해서 태웠습니다. 신흥호는 정원 三十명의 배인데 八十명을 태우고 오다가 기계 고장이 생겨서 다섯 시간이나 표류하면서 해안경비대에 구호를 청하지 못했습니다. 정원 초과가 탄로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여 줍니까? 국법이 무서운 것만 알고 자연 법칙을 어기는 것이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산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연 법칙이 무서운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국법보다 이것이 더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도덕 법칙 역시 그러합니다. 인간은 도덕 법칙을 속이지 못합니다. 도덕의 법칙을 속일 줄 알고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자기를 속인 것을 깨닫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의 일생을 인간 항로라고도 합니다. 인간 생활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바닷길을 바로 건너려고 하면 인생이라고 하는 배에 부여된 도덕의 법칙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칙을 지키지 않으므로 인생 항로에서 파선된 인간의 비참한 파편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서대문 교도소에는 수천 명의 죄수가 앉았습니다. 이들은 다 도덕의 법칙과 국법을 속일 수 있을 줄 알고 여러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들을 속인 것뿐입니다.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은 절대로 속이지 못합니다. 여기에 순종치 않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한가지 기억할 것은 이 법칙들과 자유와의 관계입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만 하는 것은 방종입니다. 자유는 마땅히 행동해야 할 그대로 하는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이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을 온전히 순종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 법칙들을 거스르는 자유는 결국 자신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가령 어떤 이가 높은 건물에서 내려오려고 하면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자연 법칙을 순종해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든지 혹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로는 자연 법칙을 거슬러서 곧장 뛰어내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물론 자유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다리는 부러질 것입니다.
자유는 언제나 법 아래에서의 자유입니다. 국민의 자유는 국법 아래에서 자유입니다. 기차는 언제나 레일이라고 하는 궤도 위에서만 최대의 자유가 있습니다. 자동차는 언제나 큰 길 위에서만 최대의 자유가 있습니다. 법을 떠나서 자유를 사용하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뿐입니다. 공의는 정치의 대 법칙입니다.
공의를 떠나서 정치를 하면 결국은 그 자신이 파괴를 당할 것입니다. 순결은 가정의 대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떠나서 살면 그 가정은 결국은 파괴될 것입니다. 신의는 상업을 비롯한 모든 인간 관계의 대 법칙입니다. 이 신의를 떠나서 살면 결국은 자신이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 드립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뜻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농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롱할 수 없고 하나님을 비웃을 수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지으시고 그 가운데 자연 법칙을 두어서 운행케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이 인간을 지으시고 도덕의 법칙을 두어서 그 아래서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이 법칙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조롱하는 결과가 됩니다. 인간이 과연 하나님을 조롱할 수 가 있겠습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스스로를 조롱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결국 내 자신에게 파괴와 멸망이 올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을 순종해서 살아야 내게도 행복이 오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새해에 이 진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이대로 삶으로써 금년 새해가 우리 개인과 모든 국민에게 행복과 번영과 장성과 열매 맺는 축복의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법칙의 우주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의미에서 다 씨를 뿌리는 농부들입니다. 이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이 움직이는 대우주 안에 살면서 씨를 뿌리는 농부들입니다. 매일의 생활은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언행(思言行)은 다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거둘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내 성품에서 거두게 됩니다. 내 가정에서도 거두게 됩니다. 내 교회에서도 거두게 됩니다. 내가 사는 사회에서, 내가 하는 사업에서, 내가 사는 국가에서, 여기에 대하여 거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심는 것을 내일 거둡니다.
현재에 심는 것을 미래에 거둡니다. 젊어서 심는 것을 노령에 거둡니다. 부모가 심은 것을 자손들이 거둡니다. 근세에 심는 것을 내세에 거둡니다. 반드시 거둡니다. 씨는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뿌리는 씨요 또 하나는 육체를 중심해서 뿌리는 씨입니다. 성령의 씨를 뿌리려면 먼저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계셔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임재(臨在)하여 계십니까? 우리는 이 새해를 당해서 어떠한 일 년을 살 것입니까? 모든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의 열매가 충만할 때에, 이것이 우리의 사언행으로 나타날 때에 우리는 가는 곳마다 금년 일 년 동안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씨를 뿌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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