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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6-18/ 십자가의 자랑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20:35 read : 16949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六․十四)
오늘이 바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종려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수난주간은 오늘로 시작이 됩니다. 이 주간 목요일 밤에 주님께서 악한 무리에게 잡히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수난주간의 중심이 되는 십자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는 이단사상을 품은 이들이 있어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과 특별히 할례 받은 것을 자랑한 것입니다. 사도 바둘도 물론 그런 것들을 자랑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할례도 물론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안 후에는 그의 문별이나 학식이나 할례 같은 것을 배설물로 여기에 된 것입니다. 그리해서 그는『내게는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단언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의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자랑하는데 십자가는 그에게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찍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내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한 것을 우리가 읽어볼 수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에게 십자가만이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까? 여러분, 성경의 중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중심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중심은 그의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은 보통 세상 사람들의 전기와는 아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 세상사람들의 전기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슨 일을 했다고 하는 생활의 기록이 많고 마지막에 그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몇 줄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이 복음에 있는 그리스도의 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은 거의 三분의 一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가복음 역시 그렇습니다. 누가복음은 四부의 一쯤 이 그의 죽음의 기사입니다.
요한 복음은 절반이 예수 님의 죽음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리스도 전 생애의 중심은 그의 죽음입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어째서 그의 죽음이 이렇게 그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가장 중하게 취급이 되었습니까?
여러분, 이사야 五十三장을 읽어 보셨습니까? 여기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이런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찔림을 당한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을 입은 것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않았음이요,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리어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 예언에 응한 죽음입니다. 대속의 죽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성가대를 통해서도 들었지마는 세례 요한이 예수 님께서 요단강 가에 나타나실 때에 제일 먼저 부르짖은 말씀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어린양으로서의 죽음입니다. 만민의 죄를 대속해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로 드리신 죽음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올 때에 죄를 지으니 불 뱀이 일어나서 그 사람들을 해친 기사를 기억하시지요? 이 때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모세가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높은 장대 끝에 달고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은 구리 뱀을 쳐다보면 죽지 않고 산다고 하는 그 기사를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는 죽음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생애의 최고봉입니다. 복음의 중심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우리 구원의 기초가 되고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 소망의 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을 바울은 자랑하였습니다. 십자가만을 그는 전파한 것입니다. 이 뜻 깊은 성일 아침에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뜻을 잠깐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을 십자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공의는 죄를 반드시 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형벌 없이 거저 죄를 사하여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만민의 죄를 대신 진 그 아들을 형벌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경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하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자기 죄를 잊어버리기 원합니다. 그러나 죄는 그 죄인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네 죄가 너를 찾아 만나리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잊어버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벌하셨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값이 있습니다. 금생과 내생에 대가가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벌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십자가는 우리에게 말하여 줍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민이 죄의 형벌 아래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만인이 공의의 형벌 아래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말하자면 사형선고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님 자신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런 진리는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냉엄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이 사실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며 내 죄를 대속하신 구주를 믿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도『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주님 앞에 죄를 자복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 도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파울도『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죄를 자복한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고 예수를 믿는 길만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내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였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그냥 두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 엄숙한 사실을 먼저 우리에게 말하여 줍니다.
둘째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벌하셨습니다. 만인의 죄를 벌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벌하셨습니까? 자기의 아들 되시는 독생자를 벌하신 것입니다. 만민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죄 없는 자기의 아들을 대신 주셔서 벌하신 것입니다.
그리해서 의로운 이가 불의 한 이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확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확증하셨습니다.
예레미야 三十一장 三절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은 무궁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하시고 만민을 사랑하시고 만민을 가지에게 이끄십니다. 십자가의 수직선은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로부터 땅 밑까지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추악한 죄인에게라도 그 사랑은 외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수평선은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계를 둘러싸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 나라, 각 백성, 각 방언 할 것 없이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합니다.
누구나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찬송을 드립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어찌 그리 큽니까? 귀중하신 독생자 십자가에 달릴 때 이런 죄인 위하여 참고 견디셨도다.』『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도 십자가 대할 때 그 일을 고마와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뿌리도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어떻게 보십니까? 십자가는 하나님의 속죄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고린도 전서 一장 十八절에『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니라.』기록하였습니다.
혹은 로마서 一장 十六절에 사울 바울이『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니라.』 여기 복음이라는 말 대신 십자가를 대치해 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해 보세요.
악한 마귀는 그리스도를 미워해서 자기에게 속하는 모든 종들을 총동원해서 예수를 붙잡고 능욕하고, 침 뱉고, 때리고 갖은 모욕을 다하고, 마지막에는 골고다에 끌고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고 그를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승리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일만 해준 것뿐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다 이루었다』하고 외치신 것입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뜻입니까? 구원의 역사를, 속죄의 큰 사업을 이루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십자가로써 큰 구원의 사업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마귀의 가장 큰 죄악을 초월 통치하셔서 그의 만민을 위한 구속사업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세력을 온전히 이기시고 만민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로써 사단의 나라는 무너지고, 예수 님의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해서 십자가는 승리의 표로써 세계 어디서나 공중에 솟아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전에 콘스탄틴이 멘컨티오스와 밀비안 다리에서 큰 결전을 할 때에 십자가가 공중에 나타나 보이며 이 표시 아래서 승리하라고 하는 음성이 들여왔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그는 십자가가 그려있는 기치를 만들고 십자가 기치 아래에서 용감히 싸워서 원수를 쳐 물리치고 온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고 그 때부터 로마제국은 기독교왕국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 기치 아래서는 언제나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최대의 도덕적 세력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빛이 비치는 곳에서 죄인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도둑이 변해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음란한 사람이 변해서 깨끗한 사람이 되며 죄와 악한 습관의 종 되었던 사람이 해방을 받아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가는 곳에 노예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꽃은 피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은 오직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대변혁을 일으키는데 능력은 오직 십자가를 중심 한 복음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의 짐을 무겁게 진 온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로역정을 기억하시지요. 기독자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그의 등에 무겁게 지워졌던 죄의 짐이 자연히 벗어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 주님 앞에 나와서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부정과 부패의 무거운 짐으로 허덕이는 우리 민족의 죄의 짐이 자연히 벗어지고 자유로운 백성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 형제자매들이여! 십자가 앞에 나와 죄의 짐을 벗읍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죄인을 부르십니다.
내가 온 것은 ㅡ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무거운 죄의 짐을 진 사람들은 다 주님 앞에 나올 것입니다. 이 수난주간에 우리는 온전히 주님께 나와 내 죄를 잡고하고 죄의 짐을 온전히 벗어 놓고 자유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한 걸음 나가서 이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십자가를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이 수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립니다. 우리가 질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거늘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희생합니까? 우리는 내 동포를 구원하기 위하여 무엇을 바칩니까?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죄인은 안 질까? 십자가 각기 있으니 내게도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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