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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12-20/ 인간고와 기독교 신앙/ 한경직 목사
2014-08-23 07:19:05   read : 15967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갈 四․十三)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한 구절입니다. 내가 육체의 약함을 인해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아마 처음에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을 그냥 지나가려고 하다가 병으로 인하여 부득이 머무는 동안데 그 곳 사람들에게 전도한 것 같습니다. 괴로운 병이 오히려 갈라디아교회 설립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十二장 七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몸에는 자기를 아프게 하는 가시가 있는데 이것이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더니 주님의 대답은『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는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록하기를『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이런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질병, 궁핍, 곤란, 곧 인간고의 어떠한 영향을 주는 그 일면을 가히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인간고와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제목 아래에서 기독교 신앙이 인간고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들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생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고(苦)가 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고통은 없습니다. 산 사람에게는 고통과 고난이 때때로 있습니다.

여기에는 노소의 구별이 없고, 빈부의 구별도 없고, 문명 야만의 차이도 없고, 귀천의 구별도 없는 것입니다.

혹 어떤 이는 고통과 고난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혹 덜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육체적 고통만이 고통이 아니고, 깊은 심리적 고통을 겸해서 생각해 볼 때에는, 사실 누가 제일 많은 고통을 받는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고 다른 사람은 아마 모를 것입니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른바 인생의 사고(四苦)를 다 체험합니다. 날 때에 고통이 있고, 늙을 때에 고통이 있고, 병 있을 때에 고통을 받으며, 죽을 때에 또한 고통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고를 기초로 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다른 고난도 따라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기본적인 인간고에 있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이런 고난을 아주 없애 주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받으나』하시면서 환난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교훈 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불의한 사람들과 같이 자기가 잘못해서 오는 여러 가지 곤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들보다 어떻게 사는가 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내신 도덕적 법칙을 바로 배워서 그대로 살 때에 많은 불필요한 고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 믿는 사람들도 현세의 육신으로 사는 동안에는 모든 인류와 유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연결이 되었고 기본적인 인간고, 혹은 질병이나 큰 사고나, 실패나, 슬픔의 고난을 같이 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주의해서 볼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 참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고통과 고난을 받지마는 그 미치는 영향이나 그 결과는 다른 것입니다.

같은 풀무 불이지만 검불이나 나무가 들어가면 타서 없어집니다. 그러나 쇠뭉치가 들어가면 더욱 굳은 강철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같은 폭풍우지마는 까치나, 까마귀 같은 것은 바람에 밀려 떨어지지마는 독수리 같은 놈은 폭풍우를 타고 더 높이 올라가는 현상을 우리가 때로 보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사도 바울이 당한 병을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병에 걸리면 별로 일하지 못합니다. 몸에 가시같이 찌르는 어떤 병이 있다고 하면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하기 쉽고 낙심하기 쉽고, 무슨 일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약한 가운데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서 강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도 병석에 머무는 동안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병석이 강단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갈라디아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종종 심방 하여 보면 참된 신앙을 가진 이는, 병이 심히 위험한 지경에 있을지라도 큰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마음에는 평화와 즐거움이 깃들여서 오히려 자기의 신앙을 간증하면서 병석을 강단으로 삼는 참된 신자를 우리가 종종 만나게 됩니다.

또는 여러분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당한 경험을 회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를 할 때에, 불쌍한 계집종의 병을 고쳐준 죄로 억울하게 관청에 잡혀가서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힘을 당하고 발 착고에 채워져 부자유한 가운데 그날 저녁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보통으로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입니다. 실로 분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런 환경 가운데서 그런 기분에 쌓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 그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찬송을 소리 높이 불렀고 하나님께 크게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부서졌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성경의 기록을 주석으로 할 때에 이 바울과 실라가 높은 테너음으로 찬송을 부르니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통하여 베스음으로 화답을 하였다 하는 말로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여간 이런 가운데서, 자결하려고 하던 간수가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온 집안이 구원을 얻었고 따라서 빌립보교회의 기초가 튼튼히 서게 된 것입니다. 꼭 같은 고통, 꼭 같은 환난이지마는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는, 참된 신앙을 소유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결과가 맺힌 것입니다.

혹은 여러분께서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로마 옥중에서의 생활 결과도 아실 것입니다.

옥중생활은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나이 많을 때의 옥중생활은 실로 괴로운 자리였을 거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들을 보면, 내가 오히려 이렇게 매임으로 말미암아서 온 시위대와 가이사의 식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편지를 쓰면서도 보통 세상 사람들이 쓰는 편지와는 다른 편지를 썼습니다. 늙은 몸으로 깊은 감옥에 앉아서도 그는 빌립보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주안에서 즐거워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와 같이 하면 사람의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런 옥고 가운데서도 참된 신앙으로 사는 사도 바울에게는 이와 같은 기쁨이 있었고 이와 같은 불휴의 글을 써서 오늘날까지도 거룩한 성경으로, 우리가 읽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중해 바다 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났을 때의 모습을 회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二十七장을 여러분은 읽고 보시지요. 바울이 마지막 길로 로마로 향할 때에 본래는 그래데에서 떠나지 맙시다, 떠나면 큰 위험이 있다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의 말을 들어서 그냥 배를 띄워 갔습니다. 얼마 동안은 조용히 갔습니다.

큰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작은 배는 물결에 밀려서 미친 듯이 쫓겨갑니다. 해와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이 열 나흘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식량은 다 내어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선장이나 백부장이나, 선원들이 거의 다 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오직 정신을 똑똑히 차린 분은 사도 바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 배의 손해는 있겠으나 인명의 손해는 없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담대히, 정신없이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서 안심하라고 외쳤습니다. 생명에는 손해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먼저 떡을 떼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자기가 먼저 먹고 다른 사람에게 먹으라고 권하면서 그들을 영적으로, 육 적으로 사시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같은 풍랑을 만났습니다. 모든 다른 사람은 정신을 읽고 쓰러졌습니다. 오직 사도 바울만 똑똑한 정신으로 살아 있습니다. 무엇이?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된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같은 죽음이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 그야 말로 암흑이요, 절망이요, 그야 말로 말할 수 없는 슬픔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스테반의 죽음을 아시지요? 복음을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아서 돌에 맞아죽게 되었지마는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변해서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다고 하였습니다.

돌에 맞아 쓰러져 가는 가운데서 그의 신령한 눈은 열려서 하늘을 보았고 하나님의 보좌와 주님께서 보좌 옆에 서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자기를 미워해서 돌로 치는 무리를 행해서 이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이런 죄를 지으니, 이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조용히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같은 죽음이지만, 어떻게 스테반은 이러한 위대한 죽음을 마쳤습니까? 그에게는 위대한 신앙이 있은 까닭입니다.

이것은 바울이나 실라나 스테반의 경험만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모든 성도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같은 고통, 같은 고난을 받으나 신앙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과 고난을 이용해서 더 높이 비약합니다. 더 큰 일을 합니다.

청교도 가운데 하나인 유명한 문필가, 존 밀튼은 물론 어렸을 때부터 재주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행히 중년에 실명이 된 후에 신령한 눈은 더욱 열려서 낙원을 분명히 바라보고「실락원」이라고 하는 위대한 책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음악가 베토벤은 물론 재주 있고 신앙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분이 귀가 먹은 후에 오히려 신령한 귀가 열려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위대한 작품을 남기게 된 것도 우리가 기억합니다.

헨델 켈러 여사는 지금도 살아 계시지요. 눈 못 보고, 귀 못 듣고, 말 못하는 사람이지마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 가운데서 미국의 가장 위대한 十대 인물 중의 하나로 꼽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대의 수치,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인 십자가의 고통을 받고, 이 십자가가 변해서 만민을 구속하는 생명과 소망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그리스도를 믿는 십자가 신앙을 가진 이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 고난, 슬픔, 실패, 빈궁, 고독, 질병, 죽음까지도 신앙 있는 이는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간증하였습니다. 빌릴보 四장 十三절에『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로마서 八장 三十五절 이하에『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困苦)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스스로 간증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영혼의 각도를 위로 향하게 합니다. 이미 말한 대로 독수리는 폭풍우를 만날 때에 그 날개의 각도를 위로해서 오히려 폭풍우를 타고 더 위로 올라갑니다. 여기 비행기의 날개 각도를 조정하는 적은 날개가 있어서 위로하면 올라가고, 아래로 내릴 때는 각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영혼을 위로 향해 높은 각도로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같은 슬픈 일, 같은 병, 같은 실패라고 신앙 있는 사람은 이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비전을 얻고 새로운 용기를 얻고 새로운 능력을 받아서 실패를 승리로 바꾸고, 탄식을 찬송으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다른 이의 고통과 고난에 동참해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인간의 고통과 고난을 아시는가? 어떤 이들은 의심합니다. 왜, 의심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예수를 모르고 십자가를 모르는 까닭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영광을 내어놓으시고 육신을 입으시고 이 죄악 세상에 오셨습니까? 인간의 고통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고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여 인간을 그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같이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속량 해 주심으로 인간을 모든 고난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극치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으면 우리도 적은 의미에서, 다른 이들을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같이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 다미안 같은 사람은 자기의 평안한 집을 떠나서 문둥이만 모여 사는 모록코의 섬에 들어가서 일생을 그들을 위하여 지기의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도 고국을 떠나, 아프리카에 가서 병원을 차려놓고 지금까지 흑인들의 상처를 씻어주고 그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습니까? 그러면, 우리고 다른 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동참하여 남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적지마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아원도 설립하고 경영합니다. 고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자원과 경로 원도 경영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모자들과 노인들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다음 주일에 주재헌금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십자가의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 이런 때에 수재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는 그들의 고난에 동참해서 십자가를 같이 지는 정신을 우리가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많은 고통과 고난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이 고통과 고난, 그 자체는 물론 선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신앙을 갖고 이런 일을 당하면 이것들도 변해서 선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연단을 받습니다.

참된 신앙은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큰 축복으로 전환시킵니다. 참된 신앙은 모든 인간의 고난에 동참하여 사람들을 봉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고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과 십자가에 대한 참된 신앙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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